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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게임이 아니라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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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게임이 아니라 예술이다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8.06.0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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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은 예술이다

히틀러는 체코의 국경가까이에 군을 주둔시켰다. 체코를 굴복시키기 위해 군사위협을 비롯한 최대한의 압박을 가했다. 결국 체코는 히틀러가 내민 협정에 서명했다. 한 글자의 협정문구도 고치지 못했다. 만약 체코가 협정에 동의하지 않았다면 히틀러는 군을 동원해서 체코를 점령했을 것이다.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억지로 양보하게 만든다면 이는 진정한 협상이 아니다. 협상(negotiation)의 어원은 ‘쉽지 않다(not easy)’이다. 서로의 협력을 통해 공동의 결정을 이뤄내는 것이지 전쟁이나 폭력, 중재, 법률로 해결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협상은 쉽지 않다.

협상은 일단 입으로 하는 전쟁이다. 투지와 책략,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만큼 협상은 어렵다. 오히려 전쟁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협상보다 더 간단하다는 점이다. 협상은 바둑에 비견된다. 상대가 한 수를 두면 다른 상대도 한 수를 둔다.치열한 수 싸움과 수 읽기를 통해 진행되는 지적게임이다. 하지만 게임에는 규칙이 있지만, 협상은 일정한 규칙이 없다. 각자가 규칙과 순서를 정해놓고 길등과 충돌을 해결하지는 않는다. 이런 점에서 협상은 게임이 아니라 오히려 예술에 가깝다.

협상의 과정에는 두 갈래의 역량이 영향을 미친다. 한 갈래는 제한적 역량이다. 협상달성을 방해하는 힘이다. 이익의 충돌, 국내정치의 한계, 내부의 반대역량이 작용한다. 다른 한 갈래는 추진의 역량이다. 충돌이 지속해서 이어지기를 원하지 않거나 제삼자의 중재, 알선 등 쌍방의 타협을 고무함으로써 협상에 탄력을 주는 역량이다. 현재까지는 북미협상에서 추진의 역량이 더 강해 보인다. 하지만 북미협상, 남북한 협상은 양면협상(two-level negotiation)임을 알아야 한다. 단지 북한만 상대하는 것이 아니다. 국내집단의 이해도 고려해야 한다. 국가 간의 협상 결과는 국내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협상자는 항상 두 개의 전선을 가지고 있다. 협상 상대도 이겨야 하지만 심사 비준권을 가진 구성원들의 지지도 끌어내야 한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북한 핵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와 그 맞은편인 북한을 위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안전보장 (CVIG, 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Guarantee)’을 고려하고 있다. 조약의 형태로 미국 상원의 비준을 받을 수 있다고도 밝혔다. 남북한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판문점 선언에 서명했다. 소위 ‘한반도 비핵화’에 서명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북쪽의 비핵화와 남쪽의 비핵화를 의미한다. 그러나 한국은 핵이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주한미군의 핵우산, 핵을 운반할 수 있는 전략자산 무기들이다. 그러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주한미군과 관계될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은 북한을 상대하는 것 보다 국내의 선거유권자, 이익집단, 이익사회, 국회 설득이 더 우려된다.

협상 승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상대방의 시간, 정보, 배트나(BATNA, Best Alternative To Negotiated Agreement)를 아는 일이다. 배트나는 협상이 결렬되었을 때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다. 시간은 누구의 편에 더 유리한지는 알 수 없다. 도청하지 않는 한 상대방의 협상의도, 전략, 협상의 마지노선에 대한 정보를 모른다. 북한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협상이 완전히 결렬된다면 북한과 미국이 어떠한 태도를 취할지에 대해서도 모르고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 협상을 가장 중시한 대통령은 도널드 트럼프(Donald John Trump)다. 협상에 관한 책을 썼으니 말이다. 그는 미국 정부가 최고의 협상가라면 미국이 안고 있는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많은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지도 않을 것이며, 경제쇠퇴도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그런 그이기에 미국의 협상대표에 대해서도 비판의 잣대를 들이대며 협상이 공평하지 못했다고 성토한다. 더구나 그가 생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기존에 동의하고 서명까지 했던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파리기후협약, 이란핵협정도 일방적으로 파기해 버렸다. 그는 협상이야말로 국가이익을 촉진하는 중대한 도구이자 기능이라 여긴다.

북미가 핵 문제를 가지고 협상테이블에 나선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트럼프의 개성이 큰 몫을 하였다. 트럼프니까 가능한 것들이 많다. 보편적으로 볼 때, 협상에 관한 실질적 권력자는 가능한 한 막후에 있다. 무엇보다도 최고결정권자는 최후에 등장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충분한 연구와 분석도, 준비도 없이 정상회담을 수락했다. 일상적인 협상의 틀과 룰에서 상당히 벗어난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부동산 거래를 통해 치부했고, 리얼리티 TV 쇼 어프렌티스(The Apprentice)의 진행자였으며, 정치 경험은 케네디보다도 더 짧다. 자신의 공을 스스로 뽐내기를 좋아하고, 좌충우돌의 성격이며, 주요지지자들도 미국 백인의 중하층이다. 무엇보다도 최고지도자인 자신의 말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뒤엎는다. 예측 불가능성을 협상의 전략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는 최고의 협상가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협상은 정복이 아니다. 오만하게 상대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다. 한쪽이 모두 가지는 절대적인 승리란 없다. 완전한 성공과 철저한 실패의 극단적인 선택은 한반도의 평화과정을 도박으로 보는 것이다. 국력이 더 강하다고 해서 반드시 협상에 이기는 것은 아니다. 소국이 대국과 협상하여 이긴 사례는 너무나 많다.

트럼프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두고 보자(We'll see what happens)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협상의 모호성을 이용하여, 게임을 극으로 끌어가면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트럼프식 협상전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북미회담의 결과에 따라 한반도 및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가져오게 될 것은 자명하다. 특히 우리에게는 트럼프의 말처럼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가 바라는 일이 일어나도록 국가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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