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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박테리아’ 와 질병의 자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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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박테리아’ 와 질병의 자연사
  • 정건작 논설위원
  • 승인 2011.06.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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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건작 논설위원
질병이 왜 발생하는가? 하는 질문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다. 역사적으로 질병은 한 나라의 존망을 좌우하거나 더 크게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세계문명의 모습과 역사의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도 하였다.
따라서 인류를 끊임없이 괴롭혀온 질병의 원인을 규명하는 시도는 인간생활의 시작과 더불어 지속되었으니, 인류의 역사를 질병과의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러한 노력이 곧 보건의료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요즈음 독일에서 발생한 장출혈성 대장균(Escherichia coli)은 기존의 항생제에도 잘 낫지 않는 다제내성 균으로서 최근까지 2,300여명이 감염되고 그중 640여명은 용혈성요독증후군(HUS) 증세를 나타냈으며, 23명이 사망함으로써 유럽대륙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더군다나 그 감염 원인에 대한 확실한 역학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에서, 스페인산 오이가 이 질병의 감염원이라는 독일 보건당국의 섣부른 발표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본 스페인 농민들이 보상문제까지 들고 나와서 독일과 스페인 양국간에 외교적 마찰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강력한 항생제에도 잘 듣지 않는 세균, 즉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세균을 통칭하는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라고 하는 세균이 우리 몸에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키면 임상적으로 치료가 잘 되지않고 전파되기 때문에 방역관리상 어려움이 따른다. 금번 독일의 유행균이 이에 해당하는 지는 아직 확실치 않으며, 경우가 조금 다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O-157 장출혈성 대장균(E-coli)이 크게 유행하여 문제가 된바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방역당국의 신속한 조치와 국민들의 높아진 보건위생의식 덕에 비교적 큰 인명피해 없이 사태를 종결하고, 지금은 발생 즉시 격리가 필요한 법정 제1군 전염병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 질병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가 일상에서 먹는 날 음식이나 식재료들이 이 병원균에 노출되기 쉬우며 사람 간에 전염력이 강하고, 또한 인류가 개발한 기존의 항생제도 잘 듣지 않는 내성을 가지는 변종의 세균 형태로 유행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박테리아 (바이러스 포함) 병원균은 자기 종의 존속을 위해 끊임없이 세포분열을 하면서 때로는 돌연변이로 다른 DNA 유전자와 합성 복제하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이 개발한 항생제가 알아보지 못하게 모양을 바꾸거나, 약물이 세균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벽을 치거나, 이미 들어온 항생물질을 퇴출시키거나 또는 항생제를 녹이는 효소를 분비하는 방법으로 변신함으로써 기존의 치료약인 항생제나 특정한 백신이 잘 듣지 않게 변이를 반복한다.

그러면 우리 인간도 그에 대항해서 더욱 강력하고 광범위한 살균력을 가지는 항생제나 병원체에 면역이 되는 바이러스 백신을 개발 해가는 질병과의 싸움을 끝없이 이어간다. 다시 말해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고 뇌도 없는 세균이 인간보다 더 똑똑하게 진화 하면서 생존하는 셈인 데, 이는 항생제의 맛을 많이 경험한 세균일 수록 이를 견디는 내성균도 잘 만들어 내는 것이니, 결국 인간이 약을 남용함으로써 ‘슈퍼 박테리아’ 의 출현을 유도한 꼴이 됐다고 보아도 무방할 듯 하다.

우리 인류와 질병과의 관계는 이렇듯 오랜 역사를 가지고 공생하며 지속되어 왔다. 고대 원시인류는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러서 신의 노여움으로 악령이나 귀신이 우리 몸에 들어와 병을 일으킨다는 천벌설을 믿었고, 인지의 발달과 함께 별자리의 변화나 계절, 기후가 질병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는 점성설 시대를 거쳐, Hippocrates가 주장하는 오염된 공기가 우리 몸에 침입하면 질병이 발생한다는 장기설등 자연발생적 질병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17세기에 이르러 Leeuwenhoek가 현미경을 발명함에 따라 19세기에는 R. Koch 와 L. Pasteur가 콜레라균과 결핵균 및 탄저균을 잇따라 발견함으로써 질병의 자연 발생설은 소멸하고, 작은 미생물이 질병을 일으킨다는 세균설이 확립되어 공중보건사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고, 그 후 과학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세균보다 더 작은 바이러스 까지 발견함으로써 이로 연유하는 질병에 대비하는 인류의 노력과 치료방법 또한 크게 발전 하게 되었다.

1928년에 Alexander Fleming이 푸른 곰팡이로부터 페니실린을 발명한 이래, 세균질병을 치료하는 항생물질도 세균의 변이에 맞춰 꾸준하게 개발되어 왔다. 당시의 푸른 곰팡이에서 얻어진 원래 구조에 유도체를 붙여 처음에 발명한 항생물질은 항균범위가 제한된 일부 그람양성균에 만 유효하였고, 산(酸)에 불안정한 상태의 초기의 항생제였다. 이를 제1세대 항생제라고 하는 데, 초기의 천연 페니실린(G)은 酸에 불안정한 탓에 경구투여할 때 위를 통과하면서 대부분 분해되어 약효가 반감 되므로 주로 근육주사로 사용하는 불편이 있었다.
이러한 酸의 불안정을 개선해서 경구투여가 가능토록 보완하고 살균범위도 그람음성균까지 확대 작용하며, 뿐만 아니라 페니실린 내성 황색포도구균을 치료하는 제2세대 메티실린계 항생제까지 개발하게 되었고 이후 다양한 종류의 세균에 작용하는 많은 항생제가 출현하였다.

그리고 여러 종류의 항생제를 중첩 사용함으로써, 인간과 동물의 면역체계가 약화되어 발생하는 질병으로서 1,2세대 항생제로도 치료가 잘 되지않는 녹농균(중이염, 방광염 화농)과 그람음성 살모넬라균에 강력한 효과가 있는 제3세대 카바페넴 항생제가 개발되어 지금까지 가장 광범위한 항균작용을 하는 항생제 시대를 열었다. 이러한 제3세대 (특히 큐놀론 및 세파계) 항생제는 세균의 조직세포에 침투해서 세포의 복제, 전사에 필요한 효소를 차단함으로써 세균의 DNA합성을 억제하는 강력한 항균작용을 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뒷 따르므로 대개 균 배양검사후 사용토록 권장하고 있다. 그런데 금번에 거론되고 있는 ‘슈퍼박테리아’는 소위 제3세대 의 강력한 항생물질에도 내성이 있다니, 세균의 저항이 인간의 두뇌와 개발능력을 뛰어 넘어 어느 경지에까지 다다를지 종잡을 수 없다.

결론적으로, 세균과 항생제의 관계는 상호 변이와 대응을 교차하면서 의학기술의 발전을 견인하는 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질병과 자연의 도전에 대처하는 우리 인류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우리가 ‘세균과의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질병의 매개 숙주인 인간개체가 병원체에 노출되지 않도록 개인위생에 철저해야 함은 물론, 의료공급자인 의료인들은 온갖 병원균을 가진 환자를 다루는 만큼, 병원 내 감염이 문제되지 않도록 감염을 예방하는 진료절차 준수와 시설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하며, 정부당국자는 의료기관에 대한 의료의 질 관리 나 서비스평가 인증사업에 있어서 감염관리에 역점을 둔 평가를 유도하여야 한다.
 

정건작 논설위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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