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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실력을 쌓은 다음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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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실력을 쌓은 다음 도전하라”
  • 박봉민 기자
  • 승인 2012.12.20 1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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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석호 미국 캘리포니아州 어바인市長

[KNS뉴스통신=박봉민 기자] 지난 11월6일(현지시각) 치러진 미국 지방선거에서 캘리포니아주 어바인 시장으로 한국인이 연속적으로 당선됐다. 전임 강석희 시장에 이어 당선된 사람은 한인 1세대인 최석호 씨다.

교육의 도시로 알려진 어바인 시에서 교육사업으로 자리를 잡고 교육의원과 시의원을 거쳐 이제 어바인 시의 행정을 총괄하는 수장이 된 최석호 시장. <KNS뉴스통신>은 서면인터뷰를 통해 이민 1세대로서 가져야 했던 애환과 어바인 시장으로서의 포부를 들어봤다.

▲ 미국 캘리포니아州 어바인市 최석호 시장 <사진제공=최석호 시장>
다음은 최석호 어바인 시장과 일문일답이다.

- 당선을 축하드린다.

► 물론 기쁘다. 저의 기쁨은 개인 차원을 넘어서 미국에 있는 한인 교포 사회가 기뻐하고 조국 한국에서까지 저의 당선을 기뻐해 주시니 동포애를 더욱 느끼고 책임감도 느낀다.

한인 1세로서 미국에 와서 공부하고 정착하고 가정을 꾸미고 좋은 직장을 넘어서 미국에서도 가장 살기 좋고 가장 안전한 도시 또 교육의 도시로 이름난 도시, 어바인시에서 교육위원으로 선출되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만 해도 미국 국민에게 참으로 고맙게 생각했다. 그런데 시의원으로 저를 두 번씩이나 뽑아주고, 이번에는 시장까지 뽑아준 어바인시의 주민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한인 출신이라는 것을 유권자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봉사해서 한인에 대한 위상과 신임을 더 하도록 노력하겠다.

-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와 이유는.

► 군대 생활을 마치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 가을에 있을 신문사 입사 시험을 볼까 하고 기다리고 있던 상태에서 미국에 있는 직장에 취직하게 된 것이 미국에 온 계기다. 미국 평화봉사단의 한국어 강사로 시험을 거쳐 뽑혀 온 것이다.

우연히 어느 날 아침 라디오 방송을 듣고 있는데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강사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오면서 시청에 가서 원서를 받으라는 안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미국 평화 봉사단에서 한국에서 봉사 할 자원 봉사자들에게 예비 한국 교육시키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인데 미국 하와이에 있는 직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 기억으로 800여 명이 몰려 온 지원자들이 필기시험을 거쳐서 25명이 1차로 뽑히고 한 달 간의 한국어 교습법을 명도원이라는 곳에서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한 언어학자로부터 강습 받았다.

2차 면접을 거쳐서 18명이 최종 합격이 됐는데 우연히 2년 3개월 동안의 군대 생활 하면서 머리 속에 아무 것도 남은 것이 없었을 법한 제가 뽑혀 있었다.

그런데 미국정부에서 편도 비행기 표만 주고 한국에 돌아가는 비행기 표를 주지 않아서 지금도 여기에 남아 있다. 이것은 제가 미국인들에게 유머로 자주 쓰는 말이면서도 편도 비행기 표 이야기는 맞는 말이다.

▲ 사진제공=최석호 시장
- 정치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는.

► 1998년 처음 교육위원으로 출마해서 당선된 것이 저의 첫 정치 입문이었다. 당시 출마하게 된 동기는 저의 뜻이 아니었고 주변 사람 권고로 출마하게 됐다.

원래 USC와 UCI 등 대학에서 교수직을 지냈고 마침 어바인 시에 초·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두 가지의 학원을 경영하고 있었는데, 저를 교육 전문가로 보면서 교육위원에 적임자라고 하면서 미국 친구들이 강력히 권고하고 나섰다.

그 때마다 사양하고 웃어넘기곤 했다. 한 번은 한 교육위원 자리가 비게 되어서 남은 기간을 선거가 아닌 임명으로 하게 되니 원서를 내 보라는 또 한 번의 유혹이 있었다.

그 자리를 지내고 당시 시의원에 당선되어 가는 사람에게 전화를 해서 교육위원으로 봉직을 하려면 한 주에 몇 시간의 시간을 할애를 해야 되는지 물었더니 20시간은 족히 할애해야 한다는 대답이다. 그래서 당시 마침 학원이 번창하고 바쁜 상황에서 그러한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는 판단이 나와 포기하고 말았다.

또 일 년 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학원에서 일하는 미국인 여 선생님이 "어바인 교육부에 두 자리의 교육위원 자리가 나왔는데 아무도 원서를 내지 않고 있으니 원서만 내면 무투표 당선이 될 수도 있겠다"며 또 성화를 부리는 바람에 선거국에 달려가서 알아보니 과연 아무도 지원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무투표에 큰 희망을 걸고 원서를 썼다. 그러나 원서 마감일이 되고 보니 10명의 후보가 등록을 했다. 그 중 한명은 12년 동안 교육위원을 하고 있는 현직위원이 재선을 노리는 사람이었고 나머지 한 자리 공석을 놓고 아홉 명이 경합이 붙은 셈이다.

그런 상태가 되고 보니 저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가 백인 후보로서 소수 민족으로는 나 하나 뿐인 후보가 어떻게 당선이 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처도 무리한 짓 하지 말고 또 돈 낭비 하지 말고 어서 등록 취소를 하라는 독촉을 했다. “가정 평화를 위해서” 다시 선거국으로 쫒아가서 후보를 소개하는 후보 소개 책자에 들어가는 소개서를 취소하고, 그 경비로 낸 약 1200 달러 가량 되는 등록비를 환불 받아 왔다.

그랬더니 처는 후보 등록을 취소하라고 했는데 엉뚱한 짓만 하고 왔다며 핀잔을 주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름이 알려 지지 않은 상태에서 특히 처음 출마하는 사람은 후보 소개 책자에 이름을 넣지 않고 출마한다는 것은 바보의 짓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결국 당선됐고 결과적으로 돈도 절약하고 당선까지 된 셈이다.

열 명 중 아홉명의 후보가 공석 중인 한자리를 놓고 싸웠는데 그 후보들 중에는 내가 가르치고 있던 대학의 부총장도 포함되어 있었다. 현직으로 있던 교육위원은 본인 자리를 찾아서 당선이 됐고 공석 한 자리에 내가 당선이 된 것이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것은 기적이었다.

출마했던 1998년은 어바인 시로 이사 온지 5년밖에 안된 상태에서 어떤 단체나 사친회 같은 데도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던 상태에서 어떻게 내가 당선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저는 저의 하나님의 뜻이 계신 것이라고 말한다.

4년 임기가 끝나고 재선도 쉽게 됐다.

두 번째의 임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사람들은 저에게 이제는 시의원에 출마를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고를 했다. 그 때가 2004년이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다른 한국 사람이 나타나서 그 분도 시의원 출마를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본인의 실망이 많았고 나아가서는 한인 커뮤니티에서 두 명의 한국 사람이 같이 싸우면 다 죽게 되는 처사이니 후보 통합을 하라는 화살이 많이 날아 왔다.

두 후보가 나란히 앉아서 서로 포기하라고 권고를 했지만 아무도 물러나지 않았다. 나는 이미 6년간의 교육위원의 경력을 통해 이름이 알려 질 만큼 알려진 상태에서 당선의 가망성을 따질 때 상대방의 심산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모두 8명의 후보가 두 자리를 놓고 출마를 하게 된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두 사람의 한국 출신 후보가 모두 당선이 되어서 이 도시는 물론 오렌지카운티와 미국 전역 한인 커뮤니티와 심지어 한국까지 ‘동반 당선’이라는 큰 뉴스거리가 됐다.

나는 4년 정식 임기 자리에 당선이 되고 다른 한인 후보는 시장 후보인 당시 현 시의원이 시장에 당선되면서 남겨 놓은 2년 기간을 메우는 자리에 당선이 된 것이다.

다시 2008년에 시의원 자리에 무난히 재선이 되었고 올 2012년에는 시장에 출마를 하던가 아니면 두 번의 임기 제한으로 더 이상 출마를 못 하는 상황에 있었다.

어바인 시에서 30년 가까이 시장자리와 시의원 자리를 오가면서 일생을 시정부에서만 일 해온 만만찮은 상대가 저와 맞붙게 된 상대 후보였지만 무난하게 당선이 됐다.

▲ 최석호 시장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최석호 시장>
- 임기 중 역점 두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 어바인의 특별한 강점들을 유지하는데 주력하면서 오렌지카운티 대공원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어바인의 중앙도서관을 건립하는데 기초 작업과 자금 확보 하는데 신경을 쓸 것이다.

어바인시가 자랑하는 장점은 좋은 학교들과 최상의 치안과 그리고 아름다운 주거 환경에 있다. 이러한 좋은 업적들을 계속 유지하려 한다.

- 선거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무엇이었나.

► 선거를 치르는 데는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역시 선거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일이다.

어바인 시에서는 길 가에 붙이는 팻말 제작과 설치하는 것과 유권자 가정에 전단지를 우송하는 것, TV에 광고를 하는 등이 허용된다. 이러한 선거운동을 하려면 기타비용까지 포함해 엄청난 경비가 필요하다.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후원의 밤’이라는 행사를 주기적으로 여러 곳에서 치러야 하는데 그 준비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실제로 유권자를 만나는 선거운동을 해야 하는데 득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모금 행사에 시간과 정력을 쏟는 일이 힘이 들었다.

한 예를 들어서 상대 후보는 처음부터 비방하는 흑색선전과 허위 광고를 하며, 하루에도 서너 장씩 광고지를 통해 집집마다 우송 하고 나섰다.

그러나 저는 충분치 않은 선거 자금 때문에 일일이 대꾸를 못하고 당하고 있는 상태에서 유권자들은 속사정도 모르고 왜 그렇게 조용히만 있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어바인 시의 유권자들은 지적 수준이 높기 때문에 그런 흑색선전에 넘어 가지 않았다. 도리어 역 효과가 났다고 많은 유권자가 전해 주었다. 

- 어바인 시에 대해 자랑한다면.

► 한국에서도 어바인 시는 이미 살기 좋고 학교가 좋은 동네라고 소문이 나 있다고 들었다.

이곳의 시장 당선자로서 다소 편견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바인시는 자랑거리가 참으로 많은 곳이다.

미국에서도 계획도시로써 가장 성공한 도시라고 평판을 받고 있다. 우선 주거 환경이 쾌적하고 인구가 23만 명이나 되는 결코 작지 않은 도시지만 다른 도시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전원도시와 같은 곳이다.

이제 41년 된 비교적 신도시로써 주거지와 상가가 완전히 분리되도록 처음부터 계획이 되어 있어서 함부로 아무 것이나 들어서지 못 하도록 기획이 잘 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학교들이 좋아서 교육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님의 선호 대상이 되고 미국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평판이 알려져서 한국 이 외에도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학생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그래서 조사에 의하면 최소 65개 이상의 외국어가 학생들 가정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와 있을 정도리다.

그리고 가주대학교의 어바인 분교(UCI) 또한 종합대학으로써 미국 대학 서열에서도 급성장을 하고 있는 대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사실은 이 지방의 전체 땅을 소유하고 있던 어바인 컴퍼니라는 회사가 1000 에이커의 땅을 주 정부에 기증하고 대학을 유치하는 것을 기초로 해서 어바인 도시 형성을 시작했다고 한다.

2013년이면 대학 창설 50주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또한 어바인 시는 올해로 8년 째 미국에서 인구 10만 명 이상 되는 큰 도시 계열에서 볼 때 가장 안전한 도시라는 FBI 통계를 받고 있다.

통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시민의 안전이야 말로 어느 도시를 막론하고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이다. 다행히 어바인 시 경찰은 시의회의 지시에 따라서 치안 조직을 잘 짜고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미리 범죄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치안 유지가 잘 된 것 같다.

물론 시민 정신도 중요하다. Neighborhood Watch System을 구성하고 서로 이웃 주변을 감시하고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하는 정신이 효과가 있다.

▲ 최석호 시장은 학원 경영과 함께 교육자로서 미국에서의 본격적인 삶을 시작했다.  교육도시 어바인시의 교육위원을 거쳐 시장까지 올랐다. <사진제공=최석호 시장>
- 미국 내 한인 청년들을 위해 한 말씀 해주신다면.

► 미국에 이미 살고 있는 한인 청년들이라 하면 세 부류가 있겠다.

한국에서 이민 온 1세대, 어려서 이민 온 1.5세대, 그리고 미국에서 태어난 2세대다. 저는 한국에서 이미 대학까지 마치고 군대까지 마치고 온 순수한 1세대로서 언어 장벽은 물론 문화 장벽과 아시아 사람이면 다 겪게 되는 눈에 보이는 인종 장벽(Visual Minority)을 겪은 이민자다.

이러한 수많은 장벽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노력한 결과 대학 교수를 거쳐서 이제는 시민들이 뽑아줘야 하는 당선직까지 도전해서 교육위원, 시의원을 거쳐 올해에는 시장에 당선됐다.

이민 1세대가 다음 세대에 보여 줄 수 있는 교훈은 노력 한다면 미국은 아직도 기회의 나라이며 꿈을 실현 할 수 있는 터전이라는 반증이다. 그래서 이민 1세대라고 자포자기하지 말고 실력을 닦은 다음 도전을 해 보라는 권고를 드리고 싶다.

남은 1.5세와 2세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언어와 풍습에 지장을 받지 않는 조건에서 시작하는 만큼 그 기회는 완전히 더 크다고 본다. 다만 1세들이 갖고 있는 도전 정신과 비전을 본받아 도전해 나갈 때 이미 1세들이 이룬 업적의 수준을 훨씬 더 넘으리라고 본다. 먼저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은 다음 도전해 보시라.

▲ “먼저 열심히 공부해서 실력을 쌓은 다음 도전해 보시라” <사진제공=최석호 시장>

박봉민 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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