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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회장, 제5회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 "사회발전부문" 수상자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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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 회장, 제5회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 "사회발전부문" 수상자로 선정
  • 송호현 기자
  • 승인 2022.11.16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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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회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 시상식..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12월 12일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오후 2시 시상식
박상희 회장
박상희 회장

[KNS뉴스통신=송호현 기자] 제5회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 조직위원회가 미주종합건설 박상희 회장을 "사회발전부문" 사회발전공헌대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12월 12일 여의도 중앙보훈회관 오후 2시에 개최된다.

제5회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은 국내외 정치, 외교, 경제, 자치행정, 문화예술, 스포츠 등 사회 각 부문에서 활동하며 대한민국의 위상과 국격을 높인 인물들에게 수여한다. 

박상희 회장은 1951년 경상북도 달성군 구지면에서 태어났다. 대구상업고등학교, 건국대학교 정법대학 행정학과,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홍익대학교 세무대학원 경영학 석사, 숭실대학교 명예경영학 박사, 건국대학교 명예경제학 박사를 수여하고, 건국대경영대학원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

박 회장은 미주금속 회장을 지내며 제18회, 19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회장을 겸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원선거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특별영입으로 새천년민주당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 협의회에 속하였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박근혜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새누리당에 입당하였다. 새누리당에서 재정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15년 5월부터 2016년 3월까지 대한야구협회 회장을 지냈다.

박 회장 경력사항 ▲1978 미주철강 창업 ▲1992~2001 미주제강 대표이사 회장 ▲1992~ 미주종합건설(주) 회장 ▲1991~1995 한국철강공업협동조합 이사장 ▲1995~2000 국민은행 비상임이사 ▲1995~2000 제18.19대 중소기업중앙회 회장 ▲2000~2004 제16대 국회의원 (새천년민주당 비례대표) ▲1997~1998 금융개혁위원회 규제개혁추진회의 위원 ▲1998~2001 ㈜메디슨 (현 삼성메디슨) 사외이사 ▲1999~2000 2002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 ▲2006~중소기업중앙회 고문 ▲2008~대한주택건설협회 상임고문 ▲2012~2015 새누리당 재정위원장 ▲2013~2018 중소기업진흥회 회장 ▲2015~2016 대한야구협회 회장 ▲2018~한국영화방송제작협동조합 이사장 ▲2019~대구경영자총연합회 명예회장 ▲2019~대한민국헌정회 중소벤처기업위원회 위원장 ▲2022~세종로 국정포럼 상임고문 ▲2022~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무사법행정분과위원회 자문위원직을 역임했다.

박 회장 수상 경력 ▲1994 천만불 수출의 탑(대통령) ▲2007 중소기업CEO대상(국제경상교육학회) ▲1995 노사화합 우수상(노동부장관) ▲ 2009 글로벌CEO대상(아시아유럽미해학회) ▲1995 자랑스런 건국인상(건국대) ▲2010 삼천만불 수출의탑 (대통령) ▲1997 은탑 산업훈장(대통령) ▲2012 오천만불 수출의탑(대통령) ▲1998  98“ 한국경영자대상 (한국경영학회) 2013 자랑스런 서울대 국가정책인 대상 ▲2002 2002년 국정감사 우수국회의원상 ▲2014 자랑스런 대구상고인 대상 ▲2005 연세를 빛낸 행정인상 (연세대)를 수상했다.

박상희 회장이 살아온 생애의 업적을 살펴보면 대한민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스포츠에 기여한 기록은 젊은 세대들에게 희망과 꿈이 담겨져 있다. 대한민국을 빛낸 13인 대상 조직위원회는 박상희 회장의 "굴곡진 삶"과 사회에 기여한 공을 높이 평가하여 "사회발전부문" 사회발전공헌대상  수상자로 선정하였다.

박 회장은 1979년 영등포 문래동에서 직원 2명과 함께 미주철강을 창업해 10년 만에 철강, 건설, 자동차 부품 등으로 사세를 확장해 나갔다. IMF당시 미주실업은 10여개의 개열사를 두고, 도급순위 100위 안에 들 정도로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는 국회의원 시절, IMF가 터지면서 그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계열사들을 모조리 팔아야했다. 29세에 창업해 꼭 20여년 만에 회사는 반 토막의 반 토막이 됐다. 채권단의 요구대로 건설과 철강 계열사 등 알짜기업을 파는 등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해 ‘미주종합건설’을 살려냈다. 당시 계열사를 매각해 1000억원을 쏟아 부었다. 결국 미주종합건설과 대현엘리베이터 등 2~3개 기업만 살려냈다. 중견기업에서 하루아침에 중소기업으로 전락한 것이다.

그는 약관 43세(1995년)에 중소기업중앙회장에 당선됐고 여세를 몰아 국회에 입성했지만 IMF라는 복병을 만나 여의도 사옥을 비롯해 알짜배기 사업장을 처분해야 하는 쓴 맛을 보기도 했다. 그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며 "국회의원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었다”고 회고했다.

IMF이전 ‘미주’는 무서운 기세로 국내 주택시장을 점유해 나갔다. 수도권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대략 5만여 세대가 미주의 브랜드로 분양됐다. 경기 송탄과 수원 영통을 비롯해 수락산 입구, 안산, 부산 영도, 대구 성서지구 등 ‘미주’는 말 그대로 주택업계의 ‘다크호스’로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IMF를 맞아 주택시장에서 ‘미주’는 사라지는 듯 했다. 지금까지 미주는 ‘청석종합건설’이라는 상호로 20여년간 건설업의 명맥을 이어왔다.

박 회장은 지난해 청석종합건설을 ‘미주종합건설’로 상호를 변경하고 직접 대표를 맡아 ‘건설명가’ 부활을 목표로 재도전의 길에 나섰다. 옛 ‘미주’의 ‘영광’을 반드시 되찾겠다는 각오로 일선에서 관급공사 위주의 ‘몸 풀기’를 끝내고 앞으로 민수 및 주택사업으로 눈을 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송호현 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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