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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 칼럼] 바다와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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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호 칼럼] 바다와 노인  
  • 박세호 기자
  • 승인 2022.09.29 09: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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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여름 해변에 조금씩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업무 차 차를 몰아 몇 개의 도시와 마을을 방문했다. 그중 외지로부터 방문객이 엄청나게 증가하여, 지역경제가 발전하고 부동산 가격이 솟구치는 등으로 인해 화제가 된 지역이 있었다. 그곳을 묘사한 한 언론 기사의 서두가 눈에 확 들어왔다. “바다와 노인 밖에는 없던 이 마을이 오늘날 이와 같이 발전 ....”

이렇게 좋은 결과를 이뤘으니, 노인을 포함한 주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다. 

파도가 치는바다 Ⓒ 박세호
파도가 치는바다 Ⓒ 박세호

‘바다와 노인 밖에는 없었다’고 하는 구절은 처음 듣는 참신한 표현이라고 감탄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노인이 처하였었던 쓸쓸한 광경을 떠올리니, 마음 한 구석에 슬픔이 느껴졌다.

 대부분의 농촌과 어촌에서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떠나고 아이들도 따라가서 고향에 남은 이들은 노인뿐이고, 학교와 분교들이 문을 닫았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인과 바다』를 썼을 때는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엄청난 바다와 일대일로 대결하며, 용기 있게 자기의 철학대로 살아가는 멋진 한 노인의 낭만이 있었다. 그러나 바다와 노인 밖에 없었다는 이 시대의 바다와 노인은 어딘가 외롭고 불안하다.

1500만 명의 고령화사회를 넘어서 2040년대가 되면 노령인구가 1/3을 차지하는 초 고령화사회가 된다고 한다. 연금 수령 대상자를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 노후 준비가 없고, 또 많은 가구가 아파트 한 두 채 등 부동산에 주로 의지한다. 앞서가는 일본의 경우 지금 안 팔리는 빈 집이 늘어나는 등 부동산 자산에만 의지하는 것에 대한 우려를 안겨준다. 그리고 백세시대가 되면서 수명은 늘어났지만, 노인성 질환으로 정신과 신체의 불안정성이 고조되고 있다.

내가 아는 한 분은 은퇴 후 노인이 되면서, 비슷한 시기에 외부 충격으로 신체의 장애를 입었다. 동시에 노인과 장애인이 되면서 겪어본 체험을 통하여, 이 두 경우의 처지가 비슷한 고충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휠체어를 탄다는 정도를 넘어선 근본적인 공통점이었다.

그것은 당장 자신의 신체를 부추겨주는 주위의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국가의 법적, 경제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사실이었다.

보호용 지정석 Ⓒ 박세호

그러나 두 개의 카테고리 사이에는 조건과 형편이 다른 점이 훨씬 더 많았을 뿐 아니라, 완전히 별개의 문제이기도 했다.

우선 두 부류의 사람들은 각자의 활동공간이 달라서 서로 만날 기회조차 별로 없었고, 다른 어떤 분야에서도 거의 접점이나 공통 과제가 없었다. 노인 문제만 해도 그 분야와 원인이 방대한데, 장애인의 경우는 그야말로 각자의 처한 장애의 내용이 천차만별이고 그 정도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건강한 사람도 신체의 장애인이 될 수는 있지만, 누구나 장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장애인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 언젠가는 노인이 된다.

그래서 노인도 되고 장애인도 되어본 그 분이 제시하는 바는 이렇다. 노인과 장애인은 (어차피 다르기는 하지만) 서로의 처지를 잘 이해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 결과 노인과 장애인이 닥쳐올 어려운 문제들을 풀어가는 가운데 노력을 함께 주고받을 우군(友軍)으로 삼았으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전통사회에 비하여 노인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연장자의 덕스러운 한 마디는 큰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 한국사회이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 노인 세대들이 한 마디 씩이라도 응원의 말씀을 던져준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힘이 되지만 노인들 스스로도 마을의 어른 노릇을 되찾는 한 일환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장애인이나 그 가족들도 주변의 노인 세대들을 존경하고 그 생애를 통하여 이룬 지혜로운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노인이나 장애인들은 많은 경우 처음 대화를 시작하기에 조금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그런 단계만 넘어선다면,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며 조금씩이라도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독거노인으로 호칭되는 많은 도시 거주 노인들의 경우, 청장년 시대에 힘든 세파에 밀려 미래대책을 세울만한 여유도 없었지만 더욱 큰 이유는 그 당시만 해도 노후 대책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한 탓이었다. 자식들이 부양해주는 일은 이제 많이 어려워졌다. 장애인들도 가족들도 누구나 노인이 된다. 지금 아무리 급하고 어려운 현실 가운데 처하여있다고 하더라도, 내일의 계획과 미래의 대책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가정책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검토되었으면 좋겠다. 이런 면에서 시니어 세대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들려주는 조언에 귀 기울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활동가들이 장애인교통권 권리를 주장해오면서 전철역마다 엘리베이터가 편리한 장소에 설치될 수 있었다. 그 혜택을 지금 노인세대들과 유모차를 끄는 젊은 부부들도 함께 보고 있다는 사실은, 이와 같이 서로 다른 입장에 있는 여러 사회적 약자들이 서로 돕고 이해하며 살 수 있는 좋은 사례로 제시될 수도 있을 것이다.

편의시설  Ⓒ 박세호

과거 전통사회에서는 각 가정과 문중에서 장애인들을 뒷바라지 했다고 한다면, 이제는 소가족제도가 된 각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이들을 돌봐야한다는 복지국가 체제로 변모하고 있다. 그런데 장애인들에게 그들만의 일정한 테두리를 정해놓고, 그 공간 내에서의 생활에 편리함을 마련해주려는 것이 현실이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이 부분이 아픈 부분이다. 이러한 공간을 조금씩 더 확대하는 데에도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의 교류가 도움이 될 것이다.

돌아보니 내 주변에도 사례들이 꽤 있었다. 은사 중 한 분인 모 대학교교수는 은퇴 후 사회복지학과에 등록을 하여 실무적인 공부를 한 후 그 분야의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있다. 후배의 부친은 조그마한 조립형 제조공장을 하면서 꼭 장애인 직원을 채용한다. 대기업체 중역으로 알던 분은 은퇴 후 소규모 문학강좌를 하는데, 시각장애인 창작반을 따로 만들어 벌써 8기를 배출하였고 그들은 동인지도 낼 계획인 듯하다.

한 후배는 편집회사를 경영하면서 휠체어로 이동하는 문사와 사장과 직원의 관계로 오랫동안 일하고 있다. 한 여자선배는 이런저런 명목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일이라면 밥 짓는 일에서 방문 봉사에 이르기까지 가리지를 않는다. 내가 회고록 출판을 도와드린 모 회장님은 복지관 두세 군데를 지정하여 자신이 이끄는 모임에서 공적으로, 혹은 개인적으로 오랜 기간 기부금을 보내고 행사시에는 직접 참석도 했다.

아름다운 코스모스의 계절 Ⓒ 박세호

젊은이들이 박력과 도전으로 강점을 드러낸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배려심이 많고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살아간다는 어떤 특징이 있다. 개인차는 많지만 말이다.

장애인단체나 활동가들도 자기 지역의 노인회나 복지관 등과 교류를 하면 좋을 것이다. 내부행사나 교육의 기회가 있을 때, 유명인사가 아니라도 좋은 뜻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들을 초빙하여 말씀도 듣고 공경심도 보여주는 그런 쉬운 일부터 고려해보면 좋겠다. 이럴 때 전문가의 컨설팅을 거치면 일처리가 쉬워질 것이다.

장애인보호를 포함한 모든 복지문제가 선진국이라고 해서 다 잘 돼있는 것은 아니다. 거기도 더 꾸준히 발전이 되어야 한다. 갈 길은 멀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둘이 가라는 말도 있다. 노인과 장애인들이 각자 여유롭고 선한 동기에서 출발하여 서로 바라보며 조금씩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한다면, 그런 소통이 가능한 작은 한 모퉁이를 발견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나눌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박세호 기자 bc45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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