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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레디-고에서 한예종 레디-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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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 레디-고에서 한예종 레디-고를!!
  • 김근한 선임기자
  • 승인 2012.09.26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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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KNS뉴스통신=김근한 선임기자]  격동의 1980~90년대 우리의 최대 이슈는 '독재타도와 노조운동' 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금기시됐던 민중의식 자각과 대우조선 골리앗 투쟁을 모티브로 한 '구로아리랑', 권력의 속성을 밑바닥까지 파헤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연출한 박종원 감독은 이단아였을까?

이후 제도 혁신을 빙자한 정조의 세상개혁을 정치 권력 헤게머니로 분석한 '영원한 제국'으로 우리 사극 영화의 새 지평을 개척한 박 감독은 대종상, 청룡영화제상, 백상예술대상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석권한 영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곤 지난 1993년 '창의적 전문예술가를 양성한다'는 개교이념을 앞세워 설립된 국립예술대학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영상원 교수로 자리를 옮겨 현장과 교단을 오가며 후진을 양성하는데 몰두했다.

지난 2009년 8월 13일, 제 6대 총장으로 취임한 이후 줄곧 '세계속의 우리 예술교육'을 고민하고 있는 그를 만나 교육자적 작가정신을 들어봤다.

 

▲ 예술가의 예술가 교육을 이념으로 하는 박종원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사회성 짙은 '구로 아리랑'으로 감독 데뷔했는데 그 배경은?

▲ 대학 야학 봉사활동으로 노동자 권리를 알게 됐다. 나는 대학 시절 현장속의 학생 운동권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노조 활동의 진통 초기 대우조선의 플리앗 투쟁에서 강렬한 모티브를 받았다.

당시 언론이나 대중들은 가해자인 사용자와 피해자인 노동자의 대립을 바라보는 시선은 노동자의 피해와 아픔을 다루는 것에 국한돼 있었다. 그러나 ‘구로아리랑’은 기존에 퍼져 있던 생각과 달리 '노사가 동등한 인간이다'라는 의식 속에 서로의 인식의 꺼풀을 벗겨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즉 인간의 대등한 모습을 강조하며 누가 가해자이고 누가 피해자인지 영화를 통해 다시 묻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시대 상황을 너무 앞서 나갔다는 평가 속에 낮은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데뷔작으로서 긍지를 느끼고 있으며 이경영, 옥소리, 최민식, 신은경 등 많은 스타를 배출한 작품이었다.

- 1992년 개봉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국내는 물론 해외영화제 최다 수상을 기록했는데 어떤 부분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보는가?

▲ 이문열 작가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군사정권이 한창이던 1986년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던 작품이다. 독재에 항거하며 민주주의에 목말라 했던 국민들의 감정 이입이 빠르게 진행됐기 때문일 거라고 본다.

그러나 나는 독재자는 스스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민중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을 통해 민중의 깨어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역설하고자 했다. 그래서 원작을 보면 독재자의 상징인 주인공 엄석대를 벌하는 ‘권선징악’으로 끝이 나지만 영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는 3명 이상이 모인 공간에서는 언제나 권력구조가 형성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곳에는 늘 ‘일그러진 영웅’이 존재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것을 잊지 않는 것이 시민정신이다. 바로 사회를 형성하는데 힘의 논리를 경계할 줄 아는 시민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다.

 

▲ 구로아리랑(1989), 영원한 제국(1992),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95)

- 한국 사극 영화의 새 지평을 연 '영원한 제국'에 대해?

▲ 1993년 문민정부가 시작됐고 국민 다수는 '금융실명제’ 실시가 민주화 시대 산물이라고 착각했다. 그러나 ‘금융실명제’는 이미 선진 민주화 국가에서는 시행된 제도였다.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을 읽으면서 스토리의 묘미에 빠졌고 정치인들의 이면적 속성인 권력 장악을 숨긴 채 세상 개혁을 내거는 정치인들의 정적 복수와 권력 장악을 추구했던 정조와 영의정 심환지의 이중성을 파헤친 작품이다.

당시 고증 위주의 틀에 박힌 사극에서 벗어나 붉은 색 의상으로 왕권을, 푸른색 의상으로 신권을 상징하는 등 색감과 표현에서 기존 방식의 탈피와 파괴를 시도해 새로운 형식을 재창조한 첫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극 미스터리로서 대단한 주목을 받았으며 평론가들로부터도 호평이 쏟아졌다. 지금도 과분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 갑자기 영상물 등급위원회 위원으로 작품 검열을 한 이유는?

▲ 대학 졸업과 동시에 한국영화아카데미 1기로 입학했다.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는 대학원을 능가하는 커리큘럼을 들으며 1학기 6개 작품 워크숍을 찍는 행운을 누렸다. 졸업 후 이두용 감독의 조수를 지내고 ‘구로아리랑’을 첫 작품으로 찍게 됐는데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경직된 검열제도에 의해 21곳이 가위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대사 중 “부자놈”에서 “놈”까지 잘리고 군화발로 영정을 밟는 장면이 삭제되는 등 시대적 모멸을 경험한 것이다.

이에 잠깐 영화를 떠나 CF계에 있다가 다시 돌아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찍었다. 그러던 어느날 영상물등급위원회(구 한국공연예술진흥협의회)로부터 심의위원 제의가 들어와 수락했다. 그 이유는 영화도 많이 볼 수 있고 우리 학교(석관동캠퍼스) 바로 앞에 협의회 사무실이 위치해 지리적으로 아주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심의위원으로 활동하며 당시 이슈가 됐던 임상수 감독의 '처녀들의 저녁식사',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 등 문제작을 새로운 각도에서 심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그 때 이미 소위 ‘가위질’ 풍습은 없어져야 한다는 신념아래 지금 시행되는 완전 등급제 전환을 주장했었다.

 

▲ 완전등급제 심의제도를 주장했던 시절의 대해 설명하는 박종원 감독

- 영화 이야기에서 학교 이야기로 들어가보겠다. 2009년 8월 13일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취임 이후 변화는?

▲ 2009년 3월 한예종 영상원장으로 부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총장 선거에 출마해 그 해 8월 제 6대 총장이 됐다. 취임 후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예술가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학생 스스로 자각과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예술은 그 과정이 혹독하고 고통스럽지만 불행하기 위해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실기 중심의 전문 예술가 교육에 자기 전공에만 함몰되는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나 타 예술전공과도 교류하는 다양한 교육을 시도했다. 지금 우리는 '스스로의 자각과 행복감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인 배출'을 목표로 매진하고 있다.

1993년 개교 이후 세계 유명 콩쿠르, 영화제, 비엔날레에서 566명이 1위 수상하고, 2,018명이 수상하는 뛰어난 성과를 보여온 한예종의 새로운 비전이다. (박종원 총장 취임 후 2012년 입시 부정을 방지하기 위한 클린 입시 신고센터 개설, 2009년 이후 등록금 동결 및 5% 인하, 올 8월 기준 교수 충원율 95.8% 달성, 전체 재학생 45% 장학금 지급, 세계 35개국 95개 대학과 국제교류 체결 등이 추진됐다.)

 

▲ 예술로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가를 배출하고 있는 한국종합예술학교(왼쪽 석관동 캠퍼스, 오른쪽 서초동 캠퍼스)

- 올해 개교 20주년, 한예종이 성년식을 맞았다. 숫자로만 보더라도 세계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예종 출신 예술가들이 많아졌다. 그 비결이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 나는 감히 우리나라 예술교육의 역사는 한예종 설립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본다. 무엇보다 21세기 문화콘텐츠로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는 정부의 확고한 의지 속에 국가 차원에서 ‘실기 중심의 예술교육’을 모토로 1992년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설립한 것이 주효했다. 1993년 음악원 개원을 시작으로 학교의 틀을 마련한 한예종의 힘은 뜻을 같이한 최고의 교수진, 타고난 학생의 재능, 이들의 열정을 지난 20년간 담금질해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특히 해외 무대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실력파 현장 예술인들이 예술학교 교수로 전환해 들어와 학생들을 직접 가르쳤다. 학생들이 순수 국내파인데도 질좋은 교육을 받으며 ‘1만 시간의 몰입’을 통해 뛰어난 성과를 거둔 가장 큰 이유다. 

그 다음은 아무래도 풍부한 예술적 감성을 지닌 우리 학생들의 역량이다. 세계 무대에서 발군의 기량을 발휘하는 한예종출신 젊은 예술가들은 기량은 물론 표현력에서도 아주 뛰어났다는 평가를 심사위원들로부터 받는다. 한마디로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과 이를 뛰어넘는 예술적 사고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 올해 개교 20주년을 맞아 유럽 예술기관연맹과 국제예술교육 심포지엄을 개최하는 것으로 안다.

▲ 그렇다. 세계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미래의 예술이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왔다. 우리 학교 역시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2010년 당시 유럽예술기관연맹(ELIA/ European League of Institutes of the Arts) 회장인 크리스 웨인라이트 런던예술대학장과 의견을 같이 하게 됐고, 그 고민을 해결하는 차원에서 유럽과 아시아가 처음 손을 잡기로 한 것이다.

ELIA-ASIA 국제예술교육 심포지엄은 10월 4일(목)부터 10월 6일(토)까지 3일간 한예종에서 ‘보다 나은 세계를 위하여 예술과 문화는 어떠한 역할을 할 것인가?(the role of the arts for a better world)’를 주제로 열린다.

특히 이번에 아시아 예술대학간 교류협력기구인 ‘아시아예술교육협의체’를 창립할 예정이다. 배순훈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자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세계 예술대학 네트워크 창립의 의미와 역할’을 주제로 기조발제한다. 나도 이번 심포지엄에서 ‘아시아예술교육협의체’ 창립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설명하는 발제자로 나선다.

- 앞서 말씀 중 ‘아시아 예술교육협의체’를 창립한다고 하셨는데 한예종이 주도하는 것인가. 자세한 설명 부탁드린다.

▲ 아시아 국가간 국제교류확대에 따른 예술교류의 확대 필요성은 증대되고 있다. 그러나 아시아 예술대학간 교류기구는 전무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이번 심포지엄 행사 중 주요 프로그램으로 아시아예술교육협의체 구축을 추진한 것이다.

우리 학교는 지난 2005년도부터 개발도상국 아시아의 우수한 예술인재들을 국비장학생으로 유치해서 현재까지 250여명이 넘는 예술가들을 지원 양성중인데, 이번에 창립되는 아시아예술교육협의체를 통해 우수 교과 과정을 공유하고 교류 사업을 확대하는 발판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회원국은 일본, 중국 동아시아지역 뿐만 아니라 베트남, 미얀마,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지역, 그리고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의 예술 대학까지 포함된다. 이번 행사에는 아시아 19개국 37명의 문화예술계 대표들이 참석한다.

- 한예종의 비전을 말한다면?

▲ 크게 두 가지다. 한 축은 지금까지 잘 해왔던 전문예술가 양성의 측면이고, 다른 축은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가 교육이다.

먼저 실기와 현장 중심의 심화된 예술가 교육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장르간, 학문간의 융복합을 통해 이 시대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예술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확장해 사회에 기여하는 예술가로서 예술로 삶의 아름다운 가치를 나누는 일에 앞장서자는 의미다.

앞으로 교과과정 및 학교의 주력사업으로도 더 확장시켜 나갈 생각이다. 혹자는 두 가지 지향점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이 둘은 평행선이 아닌 결국 하나의 지향점으로 수렴된다. 스스로 행복한 예술가가 세상을 행복하게 하지 않겠는가?

- 예술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한다.

▲ 우리 학교 입시는 워낙 예측할 수 없어서 입시생들에게 유명하다. 미술원 개원 초기 염소 2마리를 고사장에 풀어 그리도록 한 것이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처럼 자신의 창의성을 예술의 도구로 키워나갈 만만의 준비가 됐다면 한예종에 도전하라. 음악, 연극, 영상, 무용, 미술, 전통예술 등 6개원의 특성을 살려 국내에서 가장 수준높은 융합 예술 교육을 실천하는 한예종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특히 올해 처음으로 사회적 약자 대상 정원 외 특별전형을 통해 장애인 7명이 입학했다. 학생들의 학업만족도가 아주 높다. 예술적 재주가 있으나 사교육 소외 대상의 예비 예술가를 위한 제도도 마련돼 있으니 도전해 보길 바란다. 헌법상에 보장된 교육받을 기회와 행복 추구권을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 음악, 연극, 영상, 무영, 미술, 전통예술 등 6개 장르의 복합 예술교육을 지향하는 한예종

한예종은 젊은 예술가들에게 ‘천상의 유토피아’ 같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된 조선 왕릉 ‘의릉’을 옆에 끼고, 도심 속 허파같은 천장산이 묵묵히 내려다보는 캠퍼스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와의 교류 활동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의 에너지가 증폭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16호 태풍 산바의 폭우속에도 한예종 캠퍼스에는 우리들의 젊고 즐거운 예술 영웅들의 이야기가 쉼없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들이 빚어내는 이야기를 오롯이 담아낼 박총장의 다음 연출작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 : 김근한 선임기자
자료제공 : 대외협력과 정명숙
편집 : 김하늘

김근한 선임기자 worldcenter2@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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