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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연해주 항일단체인 ‘권업회’ 주도 이종호·김학만·최봉준 선생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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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독립운동가 연해주 항일단체인 ‘권업회’ 주도 이종호·김학만·최봉준 선생 선정
  • 김유인 기자
  • 승인 2021.11.30 11: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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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연해주 지역서 한인단체인 권업회 결성 조국의 자주독립 위해 항일운동 펼쳐
자료=보훈처
자료=보훈처

[KNS뉴스통신=김유인 기자] 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이종호·김학만·최봉준 선생을 ‘2021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세 명의 선생은 러시아 연해주 지역에서 한인단체인 권업회(勸業會)를 결성해 조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항일운동을 펼쳤다.

권업회는 일제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한인에게 실업을 장려한다’는 뜻의 경제단체로 창립됐으나 실제로는 한인들을 결집해 ‘조국독립’을 최고의 이념으로 하는 항일구국단체이다.

이 단체는 러시아 지역의 한인들을 결집했고 러시아 당국의 지지도 얻었다.

특히, 기관지인 ‘권업신문’은 항일 민족언론으로, 권업회 지회와 분사무소를 통해 연해주 구석구석의 한인마을까지 보급되어 연해주 거주 동포의 애국정신과 민족의식 고취에 큰 역할을 했다.

권업회의 창립과 권업신문 발간에 공헌한 이종호 선생은 고종의 측근인 이용익의 손자이다. 선생은 1906년 10월 서울에서 애국계몽단체인 한북흥학회를 조직했으며 서북학회의 서북협성학교 설립 초기 재정을 전담했다. 교장을 맡아 항일운동에 참여한 사실이 일제감시망에 포착돼 위험인물로 분류됐다.

1909년 10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 일어나자 배후 인물로 지목, 원산에서 체포돼 3개월 넘게 수감조사를 받고 석방됐으며, 이후 무관학교 설립과 독립군 기지의 창건 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 망명길에 올랐다.

그 당시 권업회는 막 태동하고 있었으며, 선생은 창립총회에서 부의장에 선임돼 권업회의 조직과 ‘권업신문’ 발간에 가장 중요한 재정적 후원자 역할을 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권업회가 해산되면서 선생은 상해에서 일본 경찰에 체포, 조선으로 압송돼 1년을 감금되었으며, 이후 서울에서 셋방을 전전하며 어렵게 생활하다가 중구 산림동(현재) 단칸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권업회 초대 총재로 기반을 다진 김학만 선생은 초기 연해주 한인사회의 주요 지도자로 활동했으며 학교설립에 노력했던 선생은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에 최초의 한인 학교인 ‘계동학교’를 설립, 초대 교장을 맡았다.

선생은 1910년 블라디보스토크 한인거류민회 회장으로 활동했으며, 그해 8월 경술국치 소식이 전해지자 이상설 등과 성명회를 조직해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성명회 선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또한, 선생은 독립군 기지 개척을 위해 연해주·중국 한인들의 주요 요충지인 중국 흑룡강성 일대에 한인 정착촌인 ‘한흥동’ 건설사업도 적극 추진했다.

권업회 창립과 ‘권업신문’ 발간을 후원한 최봉준 선생은 부모를 따라 8세에 한인 최초 이주지인 연해주 일대의 ‘지신허(地新墟)’에 정착하였고, 이후 두만강변 근처 촌락을 개척하고 마을 대표로 추대됐다.

선생은 함경도 일대의 소를 러시아 군대에 수출하는 무역으로 자본가로 성장해 많은 재산을 모아 조국독립에 재정적 후원을 할 수 있었다.

1908년 2월 선생은 러시아 한인사회에 간행된 최초 신문인 ‘해조신문’ 창간을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블라디보스토크 개척리 최초 한인학교인 ‘계동학교’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재정적인 지원을 하기도 했다.

선생은 권업회 창립총회에서 총재로 선출되어 권업회 기관지인 ‘권업신문’ 창간에 재정적 지원을 했으며,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연해주 한인 자치기관인 고려중앙총회를 조직하고, 기관지인 ‘청구신보’를 창간하는데 힘을 보탰다.

선생들의 이러한 권업회 조직을 통한 활동으로 이역만리(異域萬里) 러시아에서 한인사회 교육과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항일 투쟁의 밀알이 됐다.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종호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김학만 선생에게 2012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최봉준 선생에게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김유인 기자 yan205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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