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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스카우트운동 도입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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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 스카우트운동 도입 배경
  • KNS뉴스통신
  • 승인 2020.12.03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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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일 한국스카우트연맹 사무총장(명지대 법무행정학과 객원교수)

갑오경장 이후 문호가 개방되면서 전통적인 유교관에 억눌려 있던 소년들에 대한 인식이 점진적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선각자들은 서구식 교육기관을 설립하여 소년들에게 신문물을 교육하는 등 유능한 인재양성을 통해 기울어가고 있는 국운을 바로잡고자 하였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의해 강제합방이 되면서 교육은 일제에 의해 식민지교육으로 둔갑하고 이에 대항한 우리 선배들은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국내외에서 대대적인 항일 무장독립운동을 전개하기에 이른다.

이는 우리 선배들이 일제강점기에 국권회복이라는 공동체적인 운명을 짊어지고 반드시 대한독립을 이루어야 한다는 필연의 목표 하나로 계층 간의 구별과 이해를 초월한 전 국민적인 독립정신으로 발현됐다.이러한 시대적인 상황에 따라 1919년 2월 8일 일본에서는 유학생들이 주축이 돼 독립을 선언한 운동이 일어났다. 이를 2․8 독립선언이라 불리는데 3·1운동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독립선언운동으로서 일제의 심장부인 동경에서 일어난 민족해방운동이었다.국내서도 3월 1일에 손병희 선생 등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게 이르렀고 전국에서 시민과 학생들이 독립만세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임으로써 독립운동의 기폭제가 돼 국민들에게 한층 더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3.1운동을 계기로 일제는 종전의 무단정치를 소위 문화정치라는 보여주기식 겉모습으로 탈바꿈하였다. 이를 계기로 우리 선배들은 무장 독립운동과 병행하여 진취적인 소년 양성을 통한 새로운 양상의 항일 독립운동을 시작하기에 이른다.이렇듯 우리 선배들은 사회적 통합과 오랫동안 이어온 찬란한 문화융성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기 위해 일제와 맞서 조국의 안위를 수호하고자 헌신함으로써 애국심과 민족정신의 고양으로 승화돼 왔다.이러한 정신은 일제강점기시대에 소년운동으로 발현됐다. 우리나라의 근대적 소년운동에 대한 기록은 1919년 3월 ‘한국남녀소년단’이 파리 강화회의에 독립 청원서를 제출했다는 기록이 보이나 확실한 내용을 확인할 수 없음이 유감스럽다.

1919년 7월엔 ‘원산소년단’이 조직됐고 1920년 ‘진주소년회’, 1921년엔 경성, 안성, 인천, 고창, 정주 등 각지에서 소년운동단체가 조직됐다. 이에 당황한 일제는 1921년 26만원의 공사비를 들여‘조선유년감옥’을 설치하고 소년들의 항일운동에 대비했지만 소년운동단체는 매년 증가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당시의 소년운동은 일제의 감시와 산발적인 활동으로 인해 체계와 결속이 부진하고 활동도 미약하여 조직이 쉽게 와해되는 등 본래의 목적달성이 어려웠으며 소수단체를 제외하곤 명맥만 유지할 뿐이었다.

종래의 산발적인 방법으론 효과적인 항일 소년운동을 전개하기가 어렵다고 여긴 일부 소년 운동가들은 좀 더 시야를 넓혀 국제적으로 공인된 스카우트운동 도입이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통해 확인이 되는데 이돈화는 개벽지(1921년12월호)에‘신조선의 건립과 아동문제’라는 글을 기고했다.

이돈화는 기고문을 통해 “(중략)문명한 각국에 있어서는 소년단체라는 것이 많이 있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다. 그러기에 영국에서는 소년의용군(Boy Scout)이라는 대장부적 명패를 가진 단체가 있습니다.(중략)”라며 1907년 영국에서 시작돼 전 세계에 전파된 스카우트운동을 도입할 것을 역설하는 등 사회일반에선 스카우트운동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이 표명됐다.

일제도 1921년 스카우트운동을 도입하기에 이른다. 우리 선배들은 일제가 스카우트운동을 도입한 이상 저지할 명분이 없고 국제적인 친선과 우애를 표방하는 스카우트운동이야말로 국제적인 여론과 조직력을 통해 일제의 간섭과 탄압을 피할 수 있다는 인식아래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선배들이 스카우트운동을 도입한 취지는 국제적인 단체를 조직하여 국제사회서 우리나라와 일본이 대등한 위치에 있음을 부각시킴은 물론 스카우트운동이 대부분 야외에서 활동하는 까닭에 소년들에게 독립사상을 용이하게 고취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철호 선생이 재직한 중앙고보는 민족주의 학생운동의 중심지였고 정성채 선생이 재직하던 중앙기독교청년회(YMCA)는 서구의 영향을 받은 선각자들이 모인 곳이었기에 스카우트운동을 도입하기엔 한층 용이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로 창립 98주년을 맞은 한국스카우트연맹은 1922년 조철호 선생이 조직한 조선소년군과 정성채 선생이 조직한 소년척후단을 모태로 하는데 당시 청소년들에게 조국애와 민족혼을 심어주고 심신을 단련시켜 장래 조국광복의 역군 등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조직돼 스카우트운동 역사의 첫 장을 열었다.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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