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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 "3.17 정신 되살려 4.19 역사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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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 "3.17 정신 되살려 4.19 역사를 완성합니다"
  • 오성환 기자
  • 승인 2020.08.19 2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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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MOCRACY /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 -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민주화 불씨를 기억하십니까

 

성남고 학생의 민주화 투쟁의 당시 상황을 취재진에게 설명하는 이종석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장

[KNS뉴스통신=오성환 기자]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4.19 혁명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4.19혁명의 시발점으로서 수도 서울에서 일어났던 3.17민주의거를 기억하는 국민은 그리 많지 않다. 이미 4.19혁명이 일어나기 전부터, 대구 2.28민주의거,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민주의거와 같은 사건들이 있었다. 이들 모두는 자유당 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우리나라 민주화 역사의 중요한 징검다리였다. 그러나 서울에서 일어난 3.17민주의거에는 보다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의에 살고 의에 죽자'는 슬로건으로 의로운 민주화 투쟁에 나선 성남중고생들

서울3.17민주의거, 최초의 학생 궐기

우리 역사는 1960년 3월 15일의 선거를 부정선거로 명시하고 있다. 조병옥 대통령 후보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이승만 대통령의 연임이 확실시되던 상황에서 새로운 후보를 세울 겨를도 없이 선거는 강행되었고, 이기붕 후보가 부정선거의 결과를 통해 장면 후보를 누르고 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것이다. 선거 개표 직후 선거관리위원회가 이승만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의 당선을 발표하자, 이미 결정된 권력 앞에서 온 나라는 쥐죽은 듯 조용했다. 당시 국회에게도 이러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을 능력이 없었다. 바로 그 때에, 부정선거가 있은 지 불과 이틀 후인 17일 성남고등학교의 1~2학년 400여 명이 궐기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당시에는 4월에 새 학기가 시작되는지라 3학년은 이미 졸업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성남고 학생 전체가 들고 일어난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사건은 서울에서 최초로 벌어진 단체 궐기였고, 이전의 민주의거들과는 달리 부정선거 직후에 벌어진 최초의 의거였다는 의의가 있다.

성남고 학생들이 내세운 슬로건은 “부정선거 다시 하라!”, “의에 살고 의에 죽자”였다. 앞선 민주의거들 역시 자유당의 독재에 항거하는 운동들이었지만, 3.17민주의거에서는 부정선거를 규탄하고 선거를 다시 해야 한다는 명확한 혁명 의지를 밝혔다는 점이 이 사건의 가치를 더욱 드높인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학생들은 이들을 진압하려는 경찰ㆍ폭력배와 충돌했고, 100여 명의 학생들이 붙잡혀가 고초를 당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4월 18일 고려대학교 학생 3천 명의 학생의거를 촉발한 시발점이 되었으며, 이는 다시금 4월 19일 전국의 대학생들이 들고 일어난 4·19민주혁명으로 이어졌다.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자는 플래카드를 들고 서울각 대학교수들이 이에 합세하면서, 4.19혁명은 결국 제1공화국을 무너뜨리는 역사적 성과를 낳았다.

3.17민주의거에 참여했던 주역들이 대담과 기념사업회의 전국민 홍보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3.17은 학교의 역사가 아닌 나라의 역사

올해는 3.17민주의거가 있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다. 지금도 성남고등학교에서는 이 사건을 기념하고 있다.

60년 전 선배들이 내세웠던 “의에 살고 의에 죽자”는 슬로건은 후배들의 살아있는 교훈이 되어 있다. 성남고 학생들이 이러한 역사적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학교의 남다른 교육도 한몫을 했다. 한국전쟁을 이끌었던 장군 출신 교장 선생의 지도 아래, 성남고 학생들에게는 애국애족의 강한 신념이 심어져 있었던 것이다. 검도와 유도가 학생들이 꼭 배워야 할 정규 교과목으로 개설되어 있다는 점도 이 학교가 가지는 남다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3.17민주의거가 일어난 학교에서는 이를 기념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서울시와 정부는 이러한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는커녕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발족하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3.17은 4.19를 향한 중요한 징검다리

대구, 대전, 마산과 같은 지방의 민주의거들은 저마다 모두 기념사업회를 결성해 오래 전부터 활동하고 있었고, 정부에서도 깊은 관심을 가져왔다. 반면에 지방 도시보다 응집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서울에서는 4.19혁명의 직접적인 기폭제이자 서울에서 벌어진 최초의 민주의거인 3.17민주의거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다. 여태껏 역사적으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3.17민주의거와 그 중요성이 역사 속에서 잊혀지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2014년부터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가 창립되어 활동을 시작했다. 사업회는 이종석 회장을 중심으로 의거에 참여했던 의거동지들은 물론 뜻을 같이하는 많은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고, 이들 중에는 성남고 출신뿐만 아니라 3·15 선거를 전후하여 부정선거 항거에 나섰던 중동고, 선린상고, 중앙고 등 당시 고등학교 학생들도 포함되어 있다. 3.17민주의거기념사업회의 활동이 시작되면서 서울시에서도 비로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사업예산을 지원받아 3.17서울민주의거 사료집이 발행되는 성과도 거두었다. 그러나 기념사업회가 아직 이루지 못한 가장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에 3.17서울민주의거가 민주화운동임을 명시하는 법(제2조 정의)을 개정해 달라는 입법 활동이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법 제2조에는 대구 2.28민주의거, 대전 3.8민주의거, 마산 3.15민주의거가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서울 3.17민주의거는 누락되어 있어요. 이것은 4.19혁명을 향한 역사적 길목에서 아주 중요한 징검다리 하나가 빠진 것과 마찬가집니다.” 이종석 회장의 말이다.

이미 2017년에 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어 제출되었지만, 국회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3년 동안 계류되면서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이에 개정안은 21대 국회에서 다시금 발의를 준비해야만 하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이종석 회장은 힘주어 말했다.        

“영국의 명예혁명, 프랑스대혁명, 미국독립혁명을 세계 3대 혁명이라고 하는데, 우리 4.19혁명도 세계 4대 혁명에 충분히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는 혁명입니다. 60년 전 한국과 같은 후진국에서 민주적 혁명이 일어난다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는 기적만큼이나 불가능하다고 비웃었던 세계가 이제는 도리어 한국의 혁명 역사를 배우려 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자긍심을 가지고, 4.19혁명을 완성하기 위한 중요한 가교였던 3.17민주의거에 서울시민들과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높아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성환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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