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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 경주 신라 고분서 금동 신발 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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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년 만 경주 신라 고분서 금동 신발 출토
  • 안승환 기자
  • 승인 2020.05.27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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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남동 120호분에서 신라시대 금동 신발, 허리띠 은판, 금동 말안장 등 쏟아져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금동 신발 노출상태. [사진=경주시]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금동 신발 노출상태. [사진=경주시]

[KNS뉴스통신=안승환 기자] 경주시(시장 주낙영)와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이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경주 황남동 120호’조사에서 43만에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아직은 발굴 초기이지만 금동 신발 등 출토된 유물의 중요성을 고려해 27일은 발굴 현장을 공개한다.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에 위치한 황남동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됐으나 민가 조성 등으로 훼손되면서 고분의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경주시와 문화재청이 2018년 5월부터 120호분 잔존 유무와 범위 등을 파악해 발굴조사를 시작했으며, 2019년 120호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0호분의 북쪽에 위치한 120-1호분과 120호분의 남쪽에 위치한 120-2호분을 추가로 확인했다.

발굴조사 결과, 120호분 봉분은 양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밝혀졌으며, 마사토(화강암이 풍화해 생긴 모래)를 사용해 북서-남동 26.1m, 북동-남서 23.6m 규모로 봉분을 축조했는데, 경주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묘) 가운데 마사토로 봉분을 축조한 사례가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20-1호분과 120-2호분은 120호분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조성돼 있어 120호분보다 후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120-1호분에서는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됐으며, 120-2호분의 매장주체부에서는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15일에는 120-2호분에 묻힌 피장자 발치에서 금동 신발(飾履) 한 쌍을 확인했다. 신발은 표면에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모양의 금동 달개(瓔珞, 영락)가 달려 있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으며,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이번이 43년만의 일이다.

발굴조사단은 앞으로 120-1‧2호분의 조사를 완료한 후 아직 내부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120호분의 매장주체부도 본격적으로 발굴할 예정이며, 120호분은 120-1‧2호분에 비해 봉분의 규모가 훨씬 크기 때문에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보다 위계가 더 높은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된다.

안승환 기자 no1new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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