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3-29 20:11 (일)
[초대석] 박용래 광주시전문건설협회장 "광주를 경기동부 전문건설 으뜸으로 이끌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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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박용래 광주시전문건설협회장 "광주를 경기동부 전문건설 으뜸으로 이끌 터"
  • 박동웅 기자
  • 승인 2020.03.06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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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 /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광주시협의회
광주 사람보다 더 광주를 위해 일하는 전문 건설인

 

광주지역 업체가 우선적으로 참여하는 산지산소 운동을 펴고 있는 박용래 광주시전문건설협회장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현재 광주에는 350개의 전문건설사가 있다. 이들 중 240개 정도가 전문건설협회에 가입되어 있다고 한다. 포장, 도장, 상하수도 등 무려 24개의 업종들이 포함되어 있어서 각 업체들이 업종에 따라 나누어 맡고 있다. 이러한 거대한 규모의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광주시협의회를 이끌고 있는 용성산업개발(주)의 박용래 대표이사를 만나보았다.

반목에서 화합으로 거듭나는 ‘광주시협의회’

박 회장이 광주시전문건설협회장으로 취임한 지가 이제 15년차다. 업체의 성격상, 같은 건설협회 회원이라도 서로가 치열한 경쟁관계일 수밖에 없고 돌아서면 적과 마찬가지라는 어려움이 있었다. 다른 업체 거래처를 빼앗아야 내 업체가 살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호화합을 위한 협회의 노력은 과거에는 전무한 실정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박 회장은 각 업체 대표를 일대일로 만나 협회의 소통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매년 야유회도 가고, 체육대회도 열면서, 조금씩 화합의 장이 열리기 시작했다. 자금이 모이기 시작했고, 매달 모임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서로 적이었던 업체들이 상호돕기 시작했다. 박 협회장이 협회를 맡으면서 생겨난 변화다. 화합만이 문제는 아니었다.

지역 건설 경제의 활성화도 시급했다. 그는 광주시장과 만나 지역경제를 살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었다. 광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이나 건설 수요에 대해 광주지역 업체가 우선적으로 참여하는 산지산소운동을 제안했다. 행사 때마다 매일 피켓을 들고 서 있던 노력의 성과였을까, 무엇이든 정신 운동이 먼저 되어야 다른 것도 바뀌는 법인데, 박 협회장의 노력의 열매가 조금씩 보이고 있는 중이다.

타지인에서 지역의 주인으로 자리매김

“제가 늘상 말씀드리지만 살아있는 자가 역사를 쓰는 거거든요.”

박 회장은 건설업에 종사한 지 35년이나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말 못할 어려움도 많았다. 강원도 원주 출신이었던 박 회장은 광주 본토 건설업자들로부터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다. 객지 출신 사람이 회장을 한다면서 돌멩이로 공장 유리창을 깨고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인터뷰 도중 객지 출신으로서 텃세가 센 광주에서 기업을 일구고 단체장으로 봉사하는 지금이 있기까지 지난 역정을 회고하면서 잠시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이토록 극심했던 텃세에도 불구하고, 박 회장은 꿋꿋이 견뎌냈다. 당신들의 가족들이 지나다니는 다리를 지역사람이 아니라 타지사람인 자신이 고쳐준다는 마음으로 일했다. 결국에는 광주 사람들도 박 회장의 노력에 손을 들어주었다.

비록 타지 사람이지만 광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한때는 전문건설 광주시협의회는 총회 때마다 항상 지각하거나 빠지는 문제투성이 산하단체였지만 이제는 경기도 전체를 이끄는 모범적인 리더 협의회로 탈바꿈했다.

이제는 광주시협의회가 으뜸이라는 자부심까지 갖는다. 이러한 자긍심은 경기도 31개 시군 중 우수협의회로 선정되고 국토해양부 장관상, 우수건설업체 경기도지사상 등의 수상을 통해 더욱 빛을 발했다. 이러한 모든 결과는 개인적인 역량보다는 협회 활동의 덕분이라고 박 회장은 겸손하게 말했다.

책임ㆍ자신감 보여주는 구조물 실명제

“제가 5남매 중에 장남입니다. 아버지가 저희 연배에 돌아가셨는데, 수도권에 올라오니까 막막한 거죠. 외발자전거였죠. 서면 넘어지니까 그냥 앞만 보고 달린 겁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조금씩 이룬 것이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저는 지금도 누구한테 이야기할 때 10원 한 푼 부모님께 받은 돈도 없이 스스로 일으킨 거라고 말합니다.”

박 회장은 전형적인 자수성가 기업인이다. 소위 말하는 견습공부터 시작해서 하나하나 성장해왔다. 1996년에 독립하여 업체를 시작했지만 그 사이에도 흥망성쇠(興亡盛衰)를 수차례 반복했다. 현재 용성산업개발은 디자인형 울타리, 교량이음장치 등을 다루고 있는데, 광주를 포함하여 경기동부권에서는 거의 유일한 업체로 살아남았다.

그럼에도 업계 경쟁은 여전히 치열하다.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고 아직까지도 현장에서 설치한 구조물을 반드시 직접 가서 일일이 확인하는 등 완벽한 시공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보행자의 입장에서, 운전자의 입장에서 소음을 줄이는 방안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다. 파이프 끝 부분에 용성이라는 이니셜을 전부 새겨놓았는데, 이는 실명제를 통한 박용래 회장의 책임과 자신감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조삼모사 멀리하고 정도 걷다

“제가 잘 쓰는 말이 있습니다. 쉽게 먹은 밥이 뒷간 가서 보랬다고. 예전에 옥수수밥 먹으면 먹기가 쉬워요. 그런데 소화가 안 돼서 다 그냥 나와요. 결과적으로 이런 시설물은 땅에 묻히는 게 아니라 드러나기 때문에 설치한 뒤 6개월이 지나면 진가가 다 드러납니다.”

박 회장의 경영철학은 정도를 걷는 것이다. 쉬운 것을 선택하지 말고 옳은 것을 선택하자는 사고방식을 그간의 오랜 사업 경험을 통해 터득한 것이다. 조삼모사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일이야말로 결국에는 손해로 남는다. 이는 사업가로서 박 회장이 광주시에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도로교통 안전시설물은 녹슬고 부식되는 쇠로 만든 제품보다는 초기 설치비가 조금 더 높더라도 영구적인 스텐이나 알미늄으로 제작된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결국은 유지관리 비용이 덜 들어가므로 예산절감으로 이어진다.”

박용래 회장의 지론은 분명하다. 어쩌면 큰일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일을 잘 하는 사람이 사실은 진짜 실력자다. 작은 모래 하나가 신발 속에 들어갔을 때 그 모래 하나 무시하고 신고 다니다 보면 뒤꿈치가 다 까지는 것이 세상이치 아니겠는가.

“작은 일에 충실하면 큰일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집니다. 건설공사에서 볼트 하나 등한시하고 귀찮아서 하나 둘 치우면, 바로 그것 때문에 무너지는 거거든요. 직원에게 항상 강조합니다. 시멘트 더 채워야 하는데 덜 채우고, 더 파야 하는데 덜 파고, 이러면 안 된다. 그래서 저는 항상 작업 끝나면 가서 꼭 봅니다. 미흡하면 재작업을 시키고요. 그래서 품질 하나는 자신감이 생기는 거죠.”

시민이 체감하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다짐하는 광주시 전문건설인(중앙-신동헌 광주시장)

매일 매일 직원을 위해 기도하는 삶

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광주시협의회 박용래 협회장은 여기까지 달려온 사람의 여정이 감사하다면서, 또한 지역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알음알음 다니면서 알게된 독거노인이나 어려운 가정이 있으면 가서 울타리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매년 사비로 십시일반 장학금을 마련하여 차상위 계층 아이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너른고을 문화를 사랑하고 홍보하는 모임인 너른문화(회장 이정순) 수석 부회장으로서 신동헌시장님과 함께 올바른 지명을 찾아 광주의 정체성을 찾자는 운동에도앞장서고 있다.

“어떤 이는 저보고 대단하다고 하는데. 저는 인생이 외발자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멈추면 죽으니까. 정말 열심히 살다 보니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고. 전문건설협회도 관여하게 되었고. 그래서 늘 감사드리고요. 저는 특별한 종교는 없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30분씩 기도를 합니다. 직원 하나하나 놓고 기도해요. 거짓없이 열정적으로 살다 보면 응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눈물젖은 빵을 먹으며 외발자전거를 타고 가는 박 회장이 올 한해도 더욱 기업활동에 매진하여 지역경제도 살리고 어려운 이웃을 챙기는 훈훈한 일이 더욱 많아지길 염원한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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