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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전통기법으로 탄생하는 예술작품 '나전칠기' 대가 '손대현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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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전통기법으로 탄생하는 예술작품 '나전칠기' 대가 '손대현 선생'
  • 이은구기자
  • 승인 2020.02.1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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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수곡공방 “우수 공예품에서 미술품으로 업그레이드하여 세계시장 선도하겠습니다”

 

[KNS뉴스통신=이은구 기자] 동일한 제품이지만 장인의 손을 통해서 만들어지면 제품에서 더 나아가 예술작품으로 승화된다. 이중 전통적인 방법과 재료로 만들어지면 더욱 가치와 빛을 발한다. 이러한 전통방법 그대로 한국의 나전칠기를 만드는 명장을 찾았다.

“그저 좋아서 시작했어요.”

전통적인 나전칠기와 수곡공방 손대현 선생과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됐다. 그는 우선 기술을 전수해준 스승에 대해 들려주었다. 1대 수곡 선생 전성규- 2대 수곡선생 민종태-3대 수곡 손대현 선생으로 이어졌다. 먼저 전승규 스승은 궁중에서 왕비들이 쓰던 장이나 나전칠기를 관리ㆍ수리를 해왔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당시 궁중에서 일하던 상궁의 양아들이셨기에 가능했다.

리고 일제 강점기에 삼청동에 공방을 차리시고 자신의 기술을 후학들에게 전수해주었다. 이후 나전칠기를 배우고 싶던 손 선생은 여러 장인의 인격과 작품들을 알아보며 자신에게 맞는 스승을 찾았다. 당시 스승의 온화한 성품과 작품을 보고 무작정 찾아 기술을 배웠다. 이것이 그가 나전칠기 명인의 길을 나선 첫걸음이었다.

기법과 함께 전수받은 정신 ‘수곡(守谷)’

손 선생은 스승에게 물려받은 것은 단순히 기술만이 아니었다. 전통공예에서 중요한 것은 내려오는 그대로의 기법과 재료가 중요한 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전승규 스승의 ‘호(號)’는 ‘수곡(守谷)’이었다. 본래 지킬 수(守)에 골 곡(谷)으로 ‘작은 골을 지킨다’는 의미였지만 스승은 전통공예에서 고유의 기법과 재료가 변형되면 전통이 사라지기 때문에 이를 지킨다는 의미로 사용하셨다고 한다.

이러한 의미의 호(號)를 수제자인 손 선생이 그대로 사용해 전통공예의 기법과 재료들을 지켜나가길 바라셨다고 한다. 당시에는 ‘무정(茂庭)’이라는 지인이 지어준 ‘호(號)’를 사용하다가 스승님께서 돌아가신 후에 그 정신을 이어 ‘수곡(守谷)’이라는 호를 이어갔다. 이제는 자신의 공방 이름까지 ‘수곡(守谷)’으로 명명해 스승님을 향한 깊은 존경심과 정신을 작품에 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장인정신

나전칠기 외길을 걷는 동안 손 선생도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결혼 후 스승에게 독립의사를 밝혀 허락을 받아 공방을 열었다. 스승님의 후원하에 혼자 열심히 일을 하니 일반 회사원보다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그러다 전세금을 마련해 남산 근처에 작은 공방을 마련했지만 집주인의 개인사정으로 당시로는 거액인 전세금도 다 돌려받지 못하고 나와야 했던 아픔도 있었다. 이후 면목동에 지하방을 얻어 작품활동을 이어왔다.

닥쳐온 현실적 어려움으로 대량으로 납품하며 일반적인 생활형 나전칠기장을 보급한 적도 있었다. 이처럼 일반적인 대중 칠기장을 만들어 사람을 상대로 영업을 해야 하는 것이 성향에 맞지 않은 만큼 작품에 대한 열정이 상대적으로 높아만 갔다.

그래서 다시 작품활동에 집중했지만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하공방이 큰 장마로 인해 물에 잠기는 고초를 겪었다. 재난까지 겹쳐 경제사정이 너무 힘들어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쌀로 떡을 해먹으며 작품활동을 했다.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넘어지지 않고 ‘다시 일어선다’는 강한 일념으로 마음이 잘 통하는 동료와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서서히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후 더욱 작품활동에 집중하기 위해 자리를 찾던 중에 20년 전 지금의 경기도 광주에 둥지를 틀었다.

세계에 전파되는 전통공예기술

우리나라 전통공예이지만 여전히 생소한 나전칠기가 궁금했다. 나전은 조개껍질을 가공한 ‘자개’이며, 칠기는 어떤 물건에다 ‘옻칠’을 한 것이다.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물건에 나전을 놓고 마감을 한 것이 ‘나전칠기’다. 흔히 사용하던 자개장을 연상할 수 있지만 나전칠기는 전통공예기술로 고려 때에는 중국에 수출이 될 만큼 깊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손 선생은 “전통기법들과 다수의 작품들이 세계 각국의 문화재로 지정될 만큼 값진 것”이라며 “이처럼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공예기술을 가진 것에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지금의 자리에 만족하지 않고 더욱 발전된 나전칠기를 꿈꾼다. 세계 최고의 공예기술을 바탕으로 미술시장의 흐름에 발맞추어 다양한 디자인을 개발하고, 세계 여러 디자이너들과 협업해 우수한 공예품에서 미술품으로 더욱 업그레이드하여 세계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야심찬 꿈을 내비친다.

현재 ‘인간문화재’와 ‘명장’에서 머물지 않는 그의 원대한 꿈이 참 장인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손 선생은 이를 위해 세계기능대회와 몬트리올 동계올림픽 때에는 전통기술 시연을 하며 미국ㆍ일본 등지를 다니며 전통공예기술을 널리 알리고 있다.

누구나 쉽게 전통공예를 배우는 공간 절실

손 선생은 전통공예인구의 저변확대를 위해 광주에 사는 일반인들도 전통공예를 쉽게 접하고 배울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20여년 동안 전통공예를 전수할 수 있는 장소가 부족함을 절감했다.

“전통공예를 배우려는 사람은 누구나 와서 생활용기나 도구 등 아기자기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는 학원이나 학교 같은 장소가 있었으면 합니다. 이런 일이 하나하나 이뤄지면 지역적으로 전통을 알리며 문화를 발전시키는 동안 지역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광주에 머무는 장인들이 정말 많아요. 특히 도자기 명인이 주목을 받는데 이런 일을 하시는 분들과 함께 전시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전통공예기술을 가진 이들이 협업으로 전시한다면 더욱 나은 광주 문화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통공예의 미래를 열어가자

과거 덴마크에서 온 여성이 박물관 큐레이터로 한국의 나전칠기를 배우려고 왔다. 하지만 작업복을 갈아입을 공간이 없어 옛날식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어야 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시 한국의 명장으로 더욱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나전칠기는 한국만이 거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의 노력에 따라 전통공예의 미래가 결정될 것입니다.”

수곡공방 손대현 선생은 우리의 전통기술을 통해 한류문화를 전파하는 꿈을 이루고 발전하는데 지자체와 전통공예인들이 힘을 모은다면 더욱 큰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은구기자 hoeunku@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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