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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상 광주시보훈단체협의회장 "국가유공자들 복지와 재활 위해 조금이라도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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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박종상 광주시보훈단체협의회장 "국가유공자들 복지와 재활 위해 조금이라도 헌신"
  • 이은구 기자
  • 승인 2020.02.18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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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CIETY/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기지부 광주시지회장 겸임…이름은 없지만 역사는 기억하는 ‘그들’ 상이군사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들기 위한 값진 삶을 되새기다

 

인생의 꽃을 피울 그 시기에 ‘그들’은 붉은 피를 흘렸다. 그리고 ‘그들’이 흘린 피 덕분에 지금의 청년들은 그나마 자유롭게 자유라는 꽃을 피우며 살아가고 있다.

아무리 취업난에 허덕이며 전쟁 같은 삶을 산다고 하지만 실제 전쟁터에서 싸우던‘그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오늘’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라를 위해 나아가 다친 몸, 병든 몸을 안고 돌아온‘그들’의 존재는 역사의 흔적 정도로만 남겨져 있을 뿐이다. 젊은이들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고, 미래의 아이들에게는 보거나 듣지도 못한 소리로 남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그들이 대한민국의‘오늘’을 만들기 위해 한 일은 부정할 수도 없는 진실이자 외면해서는 안될 역사다.

그들에게 이름이 없다. 이름은 없지만 그 누구도 한사람 한사람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위인전에 등장하는 위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고 목숨을 바쳤지만 그들의 이름을 그 어느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다. 여전히 대명사 ‘그들’로만 남겨져 있는 상이군사들. 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삶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 위해 70여 년 전, 하나의 기관이 세워졌다. 바로 1951년 5월 15일. 임시수도인 부산 한 자락에 창설된 대한상이군인회다.

김홍일 장군을 위원장으로 한 새로운 역사가 6.25의 혼란 중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체는 1963년 8월, 대한민국상이군경회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재출발하였다. 국가유공자들의 복지와 재활을 위해 조금이라도 헌신할 공간이 이 나라에 존재한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 시절 그 자리에 있었다

"아마도’막내가 50년생이었으니까.....“

그날의 기억을 더듬어보는 그에게서 풋풋한 파병군사의 모습이 엿보인다. 그들의 젊음은 전장(戰場)에서 이미 사라졌다. 그들의 젊음을 추억하며, 그리고 그들의 오늘을 바라보며 그는 한숨을 쉰다.

“회장? 이제 조금 있으면 그만! 그만해야죠.”

연임으로 7년째 대한민국상이군경회 경기지부 광주시지회장이자 광주시보훈단체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는 박종상 회장. 광주시지회에서 5대ㆍ6대 회장을 연임하고 있는 그의 한마디에 그간의 지친 세월이 묻어나는 듯하다. 7년이라는 세월동안 국가를 위해 헌신한 상이군사를 돕고자 달려왔지만 여전히 아쉬움 뿐이 그의 얼굴에 드러나 있다.  

사실 그도 1969년 맹호부대 출신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었던 참전용사다. 살아서 이 땅에 다시 돌아왔지만 총을 맞아가며 싸우던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국가를 위해 어느 정도로 용감하게 싸웠는지 도무지 관심이 없다.

몸을 바쳤지만 돌아오는 것은 무관심

박종상 회장은 정작 자신이 했던 일에는 관심이 없다. 전쟁이 선물해준 병을 안고 아직까지 고통스러워하는 전우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그들을 향한 국가의 외면이다.

“암 진단을 받았는데도 그에 상응하는 지원을 못 받아요. 꼭 절단이 되어야 상이군경이 아니거든요, 겉으로 드러나는 외상이 심각하지 않아도 고통 받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일반 장애 기준에 따라 지원등급을 정하는 현실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하며 말끝을 흐렸다. 나라를 위해 싸우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하는데, 정작 전쟁에서 몸값으로 매월 받는 보상금이 현 장병들보다 적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국회에서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발의도 하지 않는 현실에 대해서는 더욱 안타까워한다.“이러니 누가 파병을 나가요.”

베트남 전적지 순례의 길이 열리다

현실이 안타까운 그이지만 그래도 요즘은 신동헌 시장 덕분에 위안을 삼는다고 한다. 월남전이 끝난 지 50여년이 지나가지만 베트남 전적지 순례를 가본 적은 전무하다. 그는 우연히 한 행사에서 신동헌 시장을 만나 베트남전적지 순례를 함께 가는 것에 대해 제안한다. 기대없이 던진 제안이었지만 긍정적으로 고려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삼일만에 구체적인 지원을 하겠다는 결정을 듣게 되었다. 비록 800여 명 중 200명(올해100명. 내년 100명)이지만, 자비는 10원만 내고 나머지(1억8400만원)는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이보다 감사 할 수 없었다. 물론 시장이 오해를 받지 않도록 당장은 떠나지 못한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했다.“가더라도 4월 이후에 가야죠. 4월에 선거가 있으니까.”

파란 조끼를 입은 사나이

그에게는 여전히 나라와 사회를 위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금물이다.

시의 지원을 받고 움직이는 단체인 만큼 어떤 형태의 사업도 할 수 없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지역사회를 위해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요즈음은 청소년들의 단속까지 나선다.

어두운 밤, 공원 어딘가에 파란 조끼 입은 사나이들이 등장한다. 일명 나라사랑봉사단 회원들이다. 무리 지어 나타나니, 비행 청소년들도 겁을 먹는다. 청소년 성폭력 예방이라는 슬로건을 들고 밤중에 단속과 보호에 나선 보훈단체 회원들은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감지되는 청소년들이 보이면 혼쭐을 낸다.

“아저씨가 뭔데 그래요?”

“니들 단속하러 왔어. 이리 와봐. 빨리 집에 가.”

하지만 파란 조끼를 입은 사나이들의 진심이 전해져서일까. 혼이 났는데도 청소년들은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은 모양이다. 반항할 듯 하면서도 더 이상 대항하지 않고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요즘들어 지역사회 내 청소년 문제가 줄어들더라고...”

그들의 노력이 예방에 어느 정도 한몫 하지 않았냐는 게 그의 판단이다. 누군가가 다닌다는 것 자체가 예방의 방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역사회 아이들을 아들마냥 혼쭐내는 광경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 시절 전쟁터에서의 기백이 살아있는 듯하다. 아무래도 나라만 생각하던 그때의 마음이 고스란히 남아서일까, 그렇다면 상이군경 대우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내 표하던 그가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의외로 그의 대답은 이상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었다

“전쟁.... 전쟁이 없어져야지”

이은구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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