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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광주연극협회 이기복 회장, 척박한 토양에서 '지역공연 예술' 꽃피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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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광주연극협회 이기복 회장, 척박한 토양에서 '지역공연 예술' 꽃피우다
  • 이은구기자
  • 승인 2020.02.0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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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이은구 기자] 오랜 기간 청소년 교육에 열정을 쏟던 교사 부부가 교편을 내려놓았다. 그들은 아낌없이 각자의 퇴직금을 다 털었다. 시간이 지나 부부가 퇴직금을 털어낸 곳엔 200여석의 중극장이 마련되었다. 공연시설이 열악하여 공연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웠던 두 부부는 광주시 최초로 개관한 극장을 바라보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공연에 필요한 완벽한 시스템이 갖추었으니, 이제야 비로소 마음이 놓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2003년, 지역과 연극과 청소년을 사랑하던 교사 부부의 열정에 힘입어 ‘광주예술극장’ 청석 에듀씨어터 라는 새로운 공연예술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연극을 사랑하기에 앞서 지역을 사랑하다

청석 에듀씨어터 를 탄생시키고 광주연극협회 회장으로 활동 중인 이기복 회장. 사실상 광주와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던 대전 태생의 이기복 회장은 81년 광주에 교사로 부임한 이래, ‘광주 토박이들보다 광주를 더 사랑’하는 인물로 살아가고 있다.

“전라도, 경상도 가 보세요. 지역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요. 그만큼 발전도 했고요. 그런데 경기도는…….”

그는 서로를 ‘서울에서 밀려난 사람들’로 인식하는 경기도민의 인식에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서울보다 더 많은 지역문화 소재가 있는데 그것을 살리지 못하는 것이 그에게는 늘 아쉬움으로 남았다. 아니, 아쉬움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숙제로 남았다.

숙제로 풀기 위해 그가 선택한 것이 바로 ‘지역소재’ 개발이다. 연극이라는 매개로 지역소재를 발전시키는 것, 그리고 지역소재를 도구로 지역의 연극을 발전시켜가는 것, 그것이 그에게는 절실한 사명이자 뜨거운 비전이었다. 그래서일까. 이회장은 오늘도 지역소재를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 지역 내 역사적 인물을 비롯하여 지역의 가치를 전하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공유할만한 것이라면 모두 그에게 소중한 소재거리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 처음에는 건설, 도로에 힘을 쏟았다면 지금은 그 시기가 지났어요. 삶의 질이 향상되면서 지자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적인 발전을 도모하게 된 거죠. 어떤 지역에서는 대형공연장도 많이 만들었고요. 그런데 정작 콘텐츠가 없어요.”

그는 스스로에게 문화 콘텐츠의 부재에 대한 책임을 돌리는 듯 했다. 그만큼 지역의 일을 남 일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지역문화의 미진한 발전에 대해 어느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자신부터라도 뭔가 해야겠다고 다독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지역의 공연문화 콘텐츠 개발에 오랜 기간 헌신해 왔다. 그러면서 그는 나지막이 한마디를 덧붙인다.

“지역 구성원들이 자기 지역을 안 사랑하면 누가 우리 지역을 사랑해요?”

 

대학로 중심의 연극공연에서 탈피하다

이기복 회장은 광주를 사랑하는 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도 가득하다. 특히 그의 열정은 우리나라 공연계의 현실을 직시하는 데에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는 듯 하다.

“연극하면 대학로부터 떠올리는 게 가장 큰 문제예요. 대학로에 연극이 집중되어 있으니까 저마다 대학로 진출만을 목표로 삼는 거죠. 거기서 잘 풀리면 일종의 스타가 되니까요.”

하지만 문이 좁고 그만큼 좌절도 크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는 연극을 사랑하는 지역연극인들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고 싶어 했다. 결국 그가 만든 극단과 광주연극협회도, 그리고 그가 세운 광주예술극장도 모두 지역연극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해 주고자 하는 그의 간절함을 반영하고 있는 셈이다.

청소년, 이기복 회장과 연극의 운명적인 만남을 이끌어내다

청소년 연극은 광주연극협회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청소년 연극에 대한 지속적인 개발이 잘 이루어졌기 때문일까, 평일에도 학교에서 체험현장교육으로 극장을 자주 방문하곤 한다. 그만큼 ‘광주’라는 지역과 ‘연극’이라는 문화예술만큼이나 ‘청소년’이라는 키워드는 그에게서 뗄 수 없는 소재다.

81년, 광주에서 교사생활을 하던 그는 연극반을 지도하게 된다. 연극반 학생들은 화려한 가출 전적을 자랑하는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공부의 뜻이 없는 학생들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에 조예가 깊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그들이 무대에 서고 공연을 하면서 자존감이 높아지는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대학 문턱도 못 넘을 줄로만 알았던 그들이 연극영화과에 진학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아로 찍히고 ‘내놓은 자식’으로 통하던 그들이 어느 새 문화예술인의 길을 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변화 뒤에는 연극과 청소년을 사랑하는 이기복 교사의 남다른 열정이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그 모든 변화의 공로를 청소년들에게 돌린다.

“극단은 제자들이 먼저 제안한 거예요.”

그는 제자들과 함께 만든 극단을 떠올린다. 이름 하여 파발극회다. 광주시의 다리 중 하나인 ‘파발교’에서 따온 이름이다. 연극의 꿈을 이어가던 제자들은 극단을 제안했고 이회장은 그것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면서, 학교 안에서만 이루어지던 연극이 지역을 위한 공연문화예술의 새로운 창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이다.

어느 새 스승만큼이나 연극과 공연예술을 사랑하게 된 제자들이 먼저 나서서 극단을 제안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후 공연회수가 늘면서 경기연극협회 에서는 협회를 세울 것을 제안했고, 그렇게 해서 세워진 광주연극협회는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고 광주예술극장인 청석 에듀시어터 도 그런 움직임 속에서 세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

“청소년을 미래의 마을 청년으로!” 극장에 새겨진 이 말은 그가 가진 연극 철학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교사로 헌신했던 그는 이 지역 청소년들의 특성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그들은 여기서 태어난 것에 대한 자부심도 없고 어떻게 해서든 지역을 벗어나서 놀려고 한다. 한마디로 이 지역을 떠나는 것이 그들의 목표다. 하지만 이회장은 아이들이 연극을 통해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로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청소년들이 여기서 연극을 배우고 실력을 키우면, 주인공의 삶을 살 수 있거든요. 이 지역을 변화시키는 특별한 존재로 세워질 수 있는 것이고요. 그게 제 바람이자 목표예요.”

그의 남다른 비전만큼이나, 앞으로의 각오 역시 특별했다.

“제 꿈이요? 빨리 물러나는 거죠(웃음).”

그만큼 그는 자신을 이어 이 협회의 명맥을 유지할 인재를 찾고 있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협회가 발전해나갈 수 있는 것이 자신이 마지막 바람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이 막연한 바람만은 아니란 걸 잘 알고 있다. 협회와 지역문화예술의 발전을 위해 열정을 쏟고 있는 제자들이 그의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제자들을 향해 그는 오늘도 직접 대본을 써볼 것을 요구하며 연기 발전의 근간이 될 창작 작업의 불을 지핀다.

 

이은구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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