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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충칭을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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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충칭을 다녀와서
  • KNS뉴스통신
  • 승인 2019.12.3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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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현 우석대 행정학과 교수(KNS뉴스통신 논설위원, 수채화 화가)
정상현 우석대 행정학과 교수(KNS뉴스통신 논설위원, 수채화 화가)
정상현 우석대 행정학과 교수(KNS뉴스통신 논설위원, 수채화 화가)

최근 필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중국 남서부 충칭[중경(重庆)]시에 있는 항일독립운동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대한민국 독립을 위해 몸 바친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뜻을 가슴에 새겨보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4박 5일간의 일정으로 한국광복군 총사령부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가 있었던 충칭 독립운동 유적지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충칭은 인구 3300만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1937년 중일전쟁 이후 난징에서 쫓겨온 중국 국민당 정부의 임시 수도였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와 한국광복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1919년 4월 상하이에 자리잡고 있던 대한민국 첫 임시정부 요인들은 중국까지 손을 뻗쳐오는 일본 제국의 탄압과 감시에서 벗어나, 항저우, 자싱, 난징, 창사, 광저우시 등 중국 각지로 피해 다니다가 1940년 9월에 중국 국민당과 연합전선을 구축해 항일투쟁을 전개하고자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임시정부 요인들이 오직 나라의 독립을 위해 미래를 기약할 수도 없는 험난했던 타국에서 굶주림과 모진 추위를 견디며 독립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끈질긴 항일투쟁을 한 덕분에 우리가 일제로부터 독립하여 해방을 맞게 된 것이리라.

독립운동을 한 우리 선열들의 마지막 행적이 담긴 중국 충칭에 있었던 임시정부 청사는 임시정부가 오랜 타향살이를 끝내고 1945년 8.15해방으로 조국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5년간 사용했던 청사라고 한다. 필자가 청사를 방문해서 항일유적지에 남아있는 자료들을 실제로 눈과 손으로 직접 보고 만져보니 독립을 향한 그들의 숭고한 정신이 필자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답사한 후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었던 장소로 이동하여 항일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항일독립 군사투쟁의 흔적이 아직 미흡하게나마 보존되어 있었으나, 이번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방문체험의 결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나 광복군 총사령부가 있는 유적지에 대해 우리 국민과 정부의 관심을 더욱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이나 후손들이 이곳을 방문할 때 독립운동을 한 우리 선열들의 피와 눈물이 서린 독립운동 유적지가 초라하지 않도록 해외에 있는 항일유적지에 대한 복원예산을 우리나라가 마련해서 지속적인 투자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 한 사례로 충남 천안 출생의 독립운동가로서 임시정부 주석까지 지낸 이동녕 선생이 거주했던 집은 충칭에 남아있는 항일독립 유적지인데, 필자가 직접 가보니 경사진 면에 덩그러니 지어진 1층 벽돌 건물로 너무 초라하기 그지 없었고, 참담하게도 재개발로 헐릴위기에 놓여있다고 한다. 현재 건물 벽에 이동녕 구거 유지라는 표지판만 중국어로 쓰여 있을 뿐 이었다.

영국의 처칠 수상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을 하였듯이, 이번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이루어진 행사들이 단순히 보여주기식의 전시행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조국의 독립과 해방을 위해 불철주야로 고전분투한 애국지사들의 숭고한 정신과 희생을 기리는 행사가 되었으면 한다. 나아가 이번 100주년을 기해 ‘항일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한 많은 보존과 관리를 해나가는 정책과 이에 대한 실질적인 법안(항일독립운동 유적지 보존·관리법 등)의 마련을 시급히 해보는 것이 어떠할까?’ 하는 생각을 골똘히 반가사유 해보면서 필자는 인천행 새벽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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