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22:50 (화)
[칼럼] 제2의 조지 케난
상태바
[칼럼] 제2의 조지 케난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7.06 08: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강병환 논설위원
강병환 논설위원

1993년 포린 어페어지에 실린 한 편의 논문이 세계를 흔들었다. 헌팅턴의 저명한 논문인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재건(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이다. 2차 대전 이후의 국제 관계 사유를 이론적으로 논술했다.

무엇보다도 이 논문은 미래 세계의 충돌은 상이한 문명 간에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명권 결정의 핵심 변수는 종교라는 점이다. 아니나 다를까. 2000년에 들어선 후 국제사회에서 발생한 중대한 충돌은 헌팅턴의 관점을 증명하는 듯이 보였다.

미 국무원 정책 기획국장인 키론 스키너(Kiron Skinner)는 취임 일성으로 자신의 중대한 임무를 제2의 조지 케난George F. Kennan)이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2차 대전 후, 케난은 소련 주재 미국 대리대사로서 미 국무부에 장문의 보고서를 보냈다. 소련은 파트너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적대 세력이며, 외교 수준에서의 협력관계는 불가능하다.

소련의 팽창에 효율적으로 맞서는 것은 봉쇄정책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소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보고서였고, 1946년 트루먼 행정부는 케난의 보고서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였다. 냉전 시기 미국의 국가 안보전략은 바로 케난의 보고서에서 연유한 것이다. 문제는 스키너가 제2의 케난으로 자처하고 나섰다는 점이다.

하지만 케난이 소련을 봉쇄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스키너는 중국을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키신저와 닉슨의 연중제소(聯中制蘇)에서 동지가 적으로 바뀐 것이다. 소련과의 싸움이 서구문명을 모태로 한 가족 간의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서구의 후예자가 아닌 중국과의 싸움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스키너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문명충돌로 규정하고 있다.

고대와 현대에 걸쳐 문명의 충돌은 모두 단지 결과이지 진정한 원인이 아니다. 문제는 서구의 국제관계학자들이 문명충돌의 결과로서 문명충돌의 원인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다. 서구의 문명충돌론은 일종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본 매우 전형적인 이론이다. 이 이론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전쟁을 문명충돌로 꿰어맞추고 있으며 그 원인에 대한 깊은 체계적인 분석이나 철저한 검증이 없다는 점이다.

희랍(알렉산더)과 로마의 정복전쟁, 칭기즈칸의 유럽정복, 심지어 최근의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은 문명충돌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우리로서는 한국전쟁이 그렇다. 국제 관계를 분석하는 데에는 서로 다른 사유가 존재한다. 그중 마르크스의 주된 견해는 생산력이 생산관계와 상층건축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만약 한 국가 혹은 한 지역에 중대한 충돌이 일어났다면, 먼저 생산력 발전 수준의 문제에서 접근해 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국제적 충돌은 생산요소의 쟁탈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서는 보이지 않는 생산요소 즉 기술이 관건적 요소가 된다. 만약 생산요소의 배분이 한 국가, 혹은 타민족을 배척하고 일국이 생산요소 장악을 합법화할 때, 생산요소의 전쟁이 실상은 문명의 충돌로 포장된다.

문명충돌론의 위험성은 문명 간의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남북차이가 확대되고, 종족모순이 기복하고, 종교신앙이 그 안에 혼합되어 있고, 국가, 종교 충돌은 점점 더 복잡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충돌을 문명충돌로 보면 표면적 현상은 그렇게 볼 수 있을지 몰라도, 충돌의 근본 해결책을 찾을 수 없다. 불행한 것은 이 이론이 점점 더 여러 학자에 의해 받아들여 지고 있고, 그것이 미국의 정치지도자들과 국제정치를 담당하는 정치 엘리트들 사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서구제국주의의 유산을 물려받고 향유하고 있는 서구의 강자들에게는 그들에게 맞서는 민족들은 모두 문명충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이데올로기 종언의 승자들이 그들의 국제적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적대세력들을 공격할 때 문명충돌을 이론적으로 등장시킨 것인지도 모른다. 소련의 부상은 문명의 충돌이 아니고 중국의 부상은 문명의 충돌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수상할 뿐이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