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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 년의 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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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백 년의 마라톤
  • 강병환 논설위원
  • 승인 2019.07.05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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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환 논설위원
강병환 논설위원

중미 교류의 역사를 이해하면, 최근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이 의외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해했기 때문에 결혼했고, 이해했기 때문에 헤어졌다’는 말이 있다.

중미 갈등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 보면 그 시작은 미국의 중국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기대 때문이었다. 그 결과 오늘날 두 강대국은 이제야 비로소 서로 상대를 직시하게 되는 계기를 맞게 된 것이다.

이제는 같은 침대에서 다른 꿈을 꾸는 것을 끝내고, 각자가 자신의 길을 걸어갈 때가 되었다. 이는 트럼프와 시진핑이라는 개인적 요소의 문제가 아니라, 1등 국가와 2등 국가 간의 구조적인 숙명 때문이다.

실제로 중미 대항과 마찰의 구조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닉슨이 중국의 대문을 열 때 그 화(禍)의 뿌리가 이미 내재 되어 있었다. 닉슨은 오랫동안 견지해 오던 반공이라는 그의 이념을 접고, 대만을 포기하고 중국으로 달려갔다.

연중제소(聯中制蘇)의 지정학적 고려의 결과였다. 어두운 현실주의자 키신저와 닉슨은 묘하게 잘 맞았다. 마오쩌둥과 저우언라이 역시 중국판 현실주의자들이었다. 연중제소는 다목적인 카드로서 소련의 확장을 견제하고 중국의 경제발전을 도움으로써 중국이 자유시장 경제와 민주체제 정치개혁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경제성장을 지원하고 세계 자유와 번영의 파트너로 삼고자 한 전략이 오늘을 결과하였다. 사실상 닉슨 이후 미국 역대 대통령들은 소련이 붕괴하기 전까지 연중제소전략이 힘을 발휘함으로써 새로운 파트너 중국의 공산체제가 민주체제로 바뀔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전망으로 친중 노선을 채택했다.

미국은 중국의 WTO 가입을 지지했고, 경제 부분에 많은 우대 조치를 베풀었다. 천안문 사건, 티베트, 신쟝(新疆)의 통제와 대만에 대한 탄압에 대해서 형식적으로는 중국을 비판했지만 실제적으로는 용인하는 태도를 취했다.

이러한 미국의 대중 유화정책으로 인해 중국은 한편으로는 자유무역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하였고, 국내시장에 대해서 보호주의 벽을 높이 세웠다. 2001년 911 이후 미국이 두 개의 전장에 빠져 있는 사이, 2008년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동안, 중국은 이미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현재 중국의 경제는 미국의 70% 수준에 접근해 있다. 미국이 소련과 일본에 대해 손을 봐주기 시작한 때는 양국의 경제가 미국의 40∼50% 대 수준이었을 때다. 너무 늦은 감이 있다.

과거 중국은 미국을 통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체계와 연계하여 미래의 발전을 이루고자 하였다. 하지만 중미 간의 경제 규모가 비슷해져 오자 중국은 서서히 사회주의국가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즉 정치통제를 강화하고, 애국주의와 민족주의를 고양하며, 언론의 공간을 위축시키고, 디지털 독재의 대제국을 만들었다. 덩샤오핑, 장저민, 후진타오 체제동안 견지해 오던 도광양회(韜光養晦)를 파기하고 대국굴기(大國屈起)의 시대로 스스로 걸어들어 간 것이다.

그렇지만 미국의 중국에 대한 완전한 봉쇄는 이미 불가능하다. G20 중미 협상에서 보았듯이, 트럼프는 화웨(華爲)이에 대한 일부분의 제재를 철회했고, 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상대를 태우면 자신도 태우게 되어 있는 구조 때문이다.

중미 양국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추운 겨울의 고슴도치다. 서로 가까이 가면 갈수록 가시가 서로를 찌른다. 멀리 떨어지면 추위를 느낀다. 중미 양국 간에 ‘싸우면서 협상하기’는 이제 일상화되었다.

과거에도 중미 간의 잔잔한 불화는 투이불파(鬪而不破), 즉 싸우지만, 판을 깨지 않는 수준에서 그쳤다. 그때도 중국의 관방 매체는 연일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고 민족주의와 애국주의 열변을 연일 토해냈다.

이번은 과거와 결이 다르다. 미국의 중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의 강도와 내용이 한층 달라져 있다. 시진핑 일인 지배체제하에서 시진핑의 대미 양보는 미제국주의에 대한 투항으로 비치고, 중국몽은 물거품이 되어 역사의 죄인이 된다.

이는 ‘작은 불씨가 초원을 태울 수 있다’는 모택동의 말처럼 중국공산당 일당체제에 치명적인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남은 문제는 시진핑의 정당성과 중국공산당에 치명타를 입히지 않는 범위 내에서 미국에 어떻게 양보하는가 또는 대외적으로는 미국에 강경하게 대응하면서 대내적으로는 중국경제를 6% 대의 중속(中速) 성장대로 유지하는가의 문제다.

이것이 중난하이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다. 작년 중국을 방문한 96세의 헨리 키신저는 베이징을 떠나기 전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중미 관계는 다시는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즉 중미 간에 과거와 같은 좋은 시절은 더는 오지 않을지 모른다고 운을 뗐다.

반세기 동안 진행된 중미 간의 몸풀기는 필즈베리((Michael Pillsbury)가 말한 대로 백 년에 걸친 마라톤이 될지 모른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생존과 안녕을 도모해야 하는 한반도의 숙명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강병환 논설위원 sonamoo3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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