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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3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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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3주기
  • 박봉민 기자
  • 승인 2012.05.23 1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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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자신을 보기 위해 봉하마을을 찾은 시민들에게 화답하고 있다.ⓒ노무현재단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년을 맞았다. 그는 스스로를 ‘바보’라고 이야기했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를 ‘바보’라고 했다. 혹자는 무모하지만 역사가 부여한 소명을 묵묵히 행하고자 했던 한 인물에 대한 찬사로, 또 혹자는 너무도 무모했던 그래서 혼란스러웠던 시대에 대한 비판으로 그를 ‘바보’라 한다.

노 전 대통령이 꿈 꾼 세상에 열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노무현’은 언제부터인가 종교가 됐다. 그 결정체로 탄생한 것이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노사모)’이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에게만 있었던 팬클럽이 생겼고, 급기야  ‘노빠’라는 부류도 탄생했다.

그는 고졸출신으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변호사였다. ‘개천에서 용’ 난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잘 나가는 변호사로 호의호식하며 기득권층으로 살 수도 있었지만 군사정권시절 부산 ‘부림’사건의 변호를 맡으면서 인권변호사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그의 삶은 ‘투사(鬪士)’의 모습으로 바뀐다. 

정치적으로도 고난의 길을 택했다. 1990년 3당 합당에 반대해 김영삼 중심의 민주자유당으로 합류를 거부하고, 김대중 중심의 통일민주당을 선택한다. 

1998년 서울 종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부산에서 선출직 공무원(국회의원, 시장) 출마를 고집했던 그는 번번히 낙선한다. 당선이 보장된 수도권으로 출마를 강력하게 권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역주의 타파’에 대한 그의 신념은 확고했다. 그리고 그는 ‘바보’라는 별명을 얻는다.

▲ 퇴임 후 그는 자전거를 타기를 즐겼다고 한다.  ⓒ노무현재단

2002년 12월 19일. 정치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다. 자신이 꿈꾸던 이상을 실현할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것이다. 많은 이들이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의외로 ‘한미자유무역협정(FTA)’ 협의를 시작하면서, 같은 배를 탔던 동지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많은 반대와 우려가 있었지만 우리는 한번도 실패하지 않았고 승리했다. 결국 우리가 하기 나름”이라며 반대를 일축했다.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서민층에 대한 배신'으로 받아들여졌고, 많은 이들이 그에게 실망하고 떠났다.

또 하나의 노무현식 정치방식은 자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민주당과의 결별이었다. 지역주의 극복과 구태정치 타파라고 했지만 그의 정치적 배신은 두고두고 그의 발목을 잡는다.

민주당에서 분당해 만든 열린우리당의 정치실험은 미완으로 끝나며 한국 정치가 해결해야할 많은 과제를 남긴다. 그리고 그의 정치실험은 헌정사상 최초의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다.

정당 개혁과 권력의 분권, 권력주체의 이동 등 많은 변화를 꿈꾸었지만 결국 그의 이상은 자살이라는 비극적인 선택으로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꽃이 진 뒤에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노무현 서거 3주년을 맞아 열리는 각종 행사의 캐치프레이즈이다. 노무현을 추억하는 사람들은 노무현이 바로 그 꽃, 그 봄이라고 한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 속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시도하려고 했던 많은 실험들의 평가는 역사가 말해 줄 것이다. '바보 노무현' '인간 노무현' 또는 '어설픈 아마추어 정권' 등 현재의 평가는 서로 대립각을 이루지만, 노무현 본인은 자신이 기억되어지지 않아도 좋을 시절이 찾아오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박봉민 기자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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