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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기소동 경기소이(愛基所同 敬基所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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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애기소동 경기소이(愛基所同 敬基所異)
  • 최문 논설위원
  • 승인 2012.05.18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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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의 얼굴과 성격이 모두 다른 것처럼 생각도 같을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들은 생각이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화목하게 지낸다.

그러나 소인배들은 생각이라는 작은 우물 안에 갇혀 상대의 의견을 경청하며 이해하려기보다 비판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 즉 의견의 대립은 정치집단에서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 부자지간(父子之間)에도 나눌 수 없다는 권력의 속성 때문일까?

등소평은 현대 중국의 아버지라고 할 만한 위대한 정치가요, 사상가이다. 그는 실사구시(實事求是)를 바탕으로 거대한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 큰 발전을 이루게 한 인물이다. 그는 매우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5척 단신의 왜소한 체구였지만 그의 가슴은 중국대륙을 담고도 남을 만한 대인(大人)이었다. 오늘날 선진국 한국의 초석(礎石)을 놓은 사람이 박정희라면, 등소평은 세계 2위의 경제강국이자 미국을 위협하는 군사강국의 초석을 놓았다. 등소평은 중국 건국의 아버지라는 모택동과 더불어 중국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라고 한다.

등소평의 사상에서는 애민(愛民)정신이 돋보인다.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이러한 그의 사상의 진수라고 할 수 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고양이는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논리로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나라를 부강하게 하여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게만 하면 된다.'는 말이다.

이념의 함정에 빠져 아직까지 미몽(迷夢)을 헤매고 있는 북한을 보면 그가 얼마나 위대한 선각자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일국이체제(一國二體制)라는 세계 역사상 초유의 제도를 만들어 냈다. 정치제도는 공산당 일당독재를 지속하면서도 경제제도에 자본주의를 도입한 것이다. 매우 이질적인 두 제도를 한 나라 안에서 동시에 운용한다는 것에 대해 당시 세계의 많은 정치학자나 경제학자들이 실패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재까지 결과는 대성공이다.

일국이체제의 모델은 홍콩을 통합하는데 큰 도움이 됐고, 타이완과의 통일을 추진하는 데도 유용한 모델이 되고 있다. 남북한도 통일을 위해 학자들이 함께 중국모델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흑묘백묘론에 바탕을 둔 일국이체제 모델이 남북한이 함께 풀어가야 할 한반도 통일국가의 모델이라면 오늘날 우리 정치권이 아프게 들어야 할 등소평의 따끔한 충고는 '애기소동 경기소이(愛基所同 敬基所異)'이라는 말이다. '같은 점은 도모하고, 다른 점은 존중한다.'는 의미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끼리 무리지어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공격하고, 무력하게 하려고 해서는 사회가 안정될 수 없다.

우리 사회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한다. 생각이 다르면 무조건 틀렸다고 인식하는 이기적이고 협소한 사고체계가 문제다. 우리 사회의 여론주도층이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토론하는 텔레비전 방송의 시사프로그램에서도 그런 현상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그 바탕 아래 서로 공통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인배들이라서 그렇다.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해서 멀리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같은 점은 도모하고, 다른 점은 존중한다.' 얼마나 멋진 말인가? 겨우 8자에 불과한 말이지만 인간관계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함축적인 표현이다. 서로가 존중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까닭은 마음에 탐욕이 있기 때문이다. 의심이 있기 때문이다. 질시가 있기 때문이다. 아집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경전에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 있다.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상을 내려놓으라는 말이다.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속담이 있다. 버릴 것은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세상에 올 때 빈손으로 와서 갈 때 빈손으로 간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우리 속담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세상에서 탐욕을 비워내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정치인이 있었으면 좋겠다.

영웅을 인정하지 않고, 새로운 사상이나 신선한 인물에게 편협한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등소평 같은 존재가 나타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까?

최문 논설위원 vg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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