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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인도네시아 커피 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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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인도네시아 커피 강의실
  • 이은섭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 승인 2019.02.18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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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자바를 마신다
이은섭 (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인도네시아 커피농협 명예회장)

1600년대에 유럽에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이래 커피는 전 세계의 일상이 되었다. 17세기 후반 런던의 인구가 57만 명일 당시 커피하우스의 수가 이미 3000여개가 될 정도로 커피는 생활속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필자가 2013년 겨울 중국 장춘의 길림대학을 방문할 당시 대학근방에서 에스프레소를 찾을 수 없었지만 이제는 중국 도시 어디를 가나 커피 전문점이 널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는 일상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 에서는 15세 이상 인구 1인당 연간 554잔을 소비하여 국제 커피시장의 큰 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하지만 전 세계는 기후변화로 인한 기후 패턴의 변화로 농약으로는 퇴치가 안 되는 곰팡이 등의 급속한 확산을 가져왔다. 이로 인하여 세계의 주요 커피 재배 지역의 변화와 급속한 커피생산량의 감소를 가져왔고 멀지 않는 미래에 커피가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는 현실이다.

20세기까지 북유럽에서는 커피를 마신다는 표현을 "자바를 마신다"고 할 정도로 인도네시아 자바 커피는 인도네시아 농업의 상징이자 자존심이었다. 자바커피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지방의 우수한 커피들이 유럽 등으로 수출되어 왔으며 재배 농민들은 커피에 대한 대단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급격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아 커피산업이 위협받고 있어 인도네시아의 정부 및 농민들의 걱정이 깊어가고 있다. 자바지역의 커피 생산량은 1970년대에 비하여 반으로 줄어들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필자는 2018년부터 인도네시아 자바섬을 중심으로 산. 관. 학 계약을 맺고 친환경 마을과 도시(green village and town)의 재생사업을 주도 하고 있다.

국제무역과 법(무역 실무)을 전공으로 하는 본인으로서는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적인 인식과 거리가 있었다. 다만 몇 개국에서 운영된 대학원과정의 “통상과 환경 강의실”을 통하여 각국에서 제안된 유기농기술을 모아서 자바지역 정부와 농협을 통하여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었다. 기후변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되 편견 없이 국제적으로 최적의 기술들을 조합하여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이러한 시험 결과에 자신감을 얻게 되어 인도네시아 커피산업을 재생시켜 국제화 사업단계까지의 총괄 책임자로 참여하고 있고 유기농 커피의 국제화 교육을 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커피산업의 원조국인 네델란드와 인도네시아 정부의 지원 하에 지난 1월 3일 인도네시아 커피의 발원지인 자바주 커피 집산지에서 결성된 인도네시아 커피농협의 명예 회장으로 업무를 시작하였다. 인도네시아 커피농민을 위한 농협을 이끌면서 지금까지 국제적으로 대학원 과정을 통하여 현장의 관리자 교육을 할 때 보다 교육적 성과에 더 만족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커피 농민들은 잘 알려진 대로 매우 보수적이고 전통을 지나칠 정도로 중요시 한다.

하지만 조상 대대로 이어져 온 농법과 가공법을 지키면서 변화무쌍하게 전개되는 기후변화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운 현실이다. 또한 보수적인 커피 농업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을 적용시키는 일은 어려워 농정담당 공무원들의 고민도 깊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농민들의 지나칠 정도의 전통적인 접근을 고집하는 이유를 이해하게 되었다. 커피 농민들은 대자연의 현상인 기후변화를 인위적 기술력으로 막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잘 알고 있다. 극단적인 환경론자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이런 재앙수준의 기후변화를 초래한 근본 원인을 인위적인 과학기술에 두고 있다.

기후환경의 악화에 비례하여 비료와 농약의 사용을 늘리고 인위적으로 육종개량을 해온 결과 커피나무가 기후변화에 더 취약해지고 있다. 50여 년 전 자신들이 유년기일 때 커피농사의 풍작을 익히 기억하고 있는 60대 이상의 농민들은 서구의 신기술이나 이른바 유기농 비료 등에 대하여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서 커피농장에 깊숙이 들어와 활동 중인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하는 것도 아니다.

필자가 접근하는 기본정책의 방향은 도식적이고 기술적인 접근 보다는 그들의 정신과 전통적인 접근을 존중하면서 그들이 만들어낸 성과에 어울리는 수입을 보장시켜주는 방향이다. 전통적인 농법을 적용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 상담을 해올 때 농협에서는 수용 가능 한 최적의 기술을 발굴하여 제공해 준다. 예를 들어 오랜 동안에 산화된 농지를 개량하기 위해 산꼭대기 까지 석회운반용 도로를 내거나 효율 높은 농약을 공급하는 대신에 숨어 있는 기술을 발굴하여 극히 소량의 석회석으로 토질개량을 하는 식이다. 또는 외부로부터 유입된 획일화된 미생물비료를 주는 대신 그 지역의 토착 미생물이 조화롭게 생존할 수 있는 기초기술을 접목해주는 방식이다.

이러한 방법이 현대적인 비료회사나 이른바 유기농 기술회사들의 입장에서는 답답해 보일 수 있겠으나 필자의 경험으로는 훨씬 빠른 성과를 기대 할 수 있다. 그들이 수백 년 지속해온 전통적인 농법 그 자체를 순리대로 진화시키면 커피는 생산성도 높고 생산성에 비례하여 품질도 우수해진다. 이렇게 재배된 커피에서 나오는 커피의 깊고 달달한 풍미는 로스팅이나 필터링기술에 의한 풍미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렇게 생산된 맛과 향이 깊은 우수한 품질의 커피를 한국은 물론 세계시장에 공급하려고 한다.

필자는 해외에서 대학원 교육과정운용을 위하여 해외 여행을 자주 해 왔다. 여행 중 호텔을 선택하는 기준이 커피 맛일 정도로 에스프레소 커피를 좋아한다. 수많은 지역과 카페에서 에스프레소를 즐겼으나 자바섬의 켄달 산마을에 있는 면사무소의 관사에서 면장이 몇 겁의 천 조각으로 내려준 에스프레소의 맛을 넘지 못하였다. 전통적인 농법으로 생산된 커피는 종이 필터를 쓰면 종이의 냄새조차 커피에 배어 아주 찐하지 않으면 커피의 풍미가 줄어 들기도 한다. 이 차이는 천을 만드는 공정이 종이를 만드는 공정에 비하여 단순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필자는 1970년대 이전의 오리지널 풍미를 가진 커피를 재생기키기 위한 사업을 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강의실의 학생들처럼 필자의 접근 방법에 대하여 인도네시아 커피 관련 사회가 공감을 해주고 있다. 공감의 배경은 간단하다. 필자가 군에 있던 1975년 무렵 요로결석으로 고생한 일이 있었다. 고향 서산에서 아버지는 수박이 결석 치료에 좋다고 하여 마당 끝에 이어진 야산의 생땅에 수박을 심으셨다. 제대 후 시골에서 맛 본 그 수박의 맛은 요즈음 찾아 볼 수가 없다. 요즈음의 친환경 농법으로는 그런 시절의 자연의 맛을 따라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필자나 커피 농민들은 공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는 지금도 유기농법으로 키운 질 높은 커피가 많다. 특히 아체지역에서 나는 가요(Gayo)커피는 세계 최고 유기농커피로 평가 받고 있다. 각종 질병과 곰팡이 등으로 이미 연약해진 나무에서를 유기농으로 키운다 해도 건강한 자연 속에서 자란 커피의 맛을 따라가지 못한다. 인도네시아 로버스타 커피 중에는 유기농의 아라비카 보다 깊고 부드럽고 달달한 여운을 준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이런 사업을 통하여 필자가 강의실에서 늘 강조했던 것처럼 산업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공유하도록 할 예정이다. 농민은 품질에 상당하는 대우와 값을, 거래회사들은 합당한 이윤을, 소비자는 가격에 어울리는 커피 맛을 누리도록 하고 싶다. 특히 새로운 커피문화를 만들어 가는 우리나라의 수준 있는 카페에서도 고객들이 부담 없이 자바를 즐길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이은섭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sorbier5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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