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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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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정치를 꿈꾸며
  • 송두영 전 민주당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
  • 승인 2019.02.05 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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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두영 전 민주당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
송두영 전 민주당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

한국일보 기자를 그만두고 정치에 입문한 지 벌써 13년째다. 지난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때 정치 입문 10년을 맞았다.

정치 입문 후 지내왔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난다. 가장 강렬한 기억은 역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피 말리는 경선을 거쳐 공천을 받아 경기 고양 덕양(을) 지역에서 국회의원 후보로 나섰고,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도 과반의 득표가 예상되는 등 당선이 유력시됐다.

그러나 226표 차로 낙선하고 말았다. 아무리 강심장이라도 개표를 보면서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간발의 차이로 낙선했을 때의 심정은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선거 과정에서 너무나 억울한 사건들이 곳곳에서 벌어졌지만 애써 냉정했고, 더 분발하는 자세오 마음을 가다듬었다. 낙선 후는 무엇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절호의 시간이었다.

사람과의 관계, 특히 지근거리에 있는 주변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과 인내가 필요했다.

정치판의 냉정함과 비열함 같은 부정적인 면도 체험했지만 이보다 더 소중한 진심과 진실을 깨닫는 행복한 시간이 많았다.

1989년 2월 대학을 졸업하고 한국일보사에 입사하기까지의 여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언론사 필기시험에 처음 합격한 것은 대학 4학년 2학기 초반인 88년 가을로 기억한다.

2차 시험에서 바로 낙방했다. 이후 2년 동안 거의 모든 언론사의 필기시험에 합격했지만 마지막 면접시험에서 십 수 차례 고배를 마셨다.

20대 후반 나이에 견디기 어려운 혹독한 체험을 한 것이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언론사 입사 시험에 지원하려면 나이 제한이 있었다.

시험을 볼 수 있는 나이까지 도전하고자 했다. 운이 좋았는지 91년 초, 두 해 연속 면접을 치른 한국일보사에 입사했다.

17년 정도의 기자 생활도 두 다리 쭉 펴고 편히 잠잘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입사 후 거의 사회부에서만 근무했던 터라 1주일에 한 번꼴로 초고강도 근무 여건인 야근을 했고, 새벽별을 보며 퇴근할 때가 수백 번이었다.

그래도 한국일보 조직에서 선배, 동료들과 함께 일하며 세상을 보는 건강한 식견을 키웠다고 자부한다.

특히 한국일보 기자가 아니었으면 접할 수 없는 수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중 미국 정부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해 다양한 분야의 식견을 넓혔으며, 일본 게이오대학에서 보낸 방문연구원 생활은 나의 세계관을 살찌웠다.

정치 입문 후 지금까지 걸어온 가시밭길이 한국일보 재직 시절과 오버랩됐다.

2007년 여름. 당시 손학규 대통령 경선 캠프로 몸을 옮기면서 내 스스로 다짐했다.

한국일보 입사 초기 때처럼 뛰자는 것이었다. 기자 세계의 말이지만 한국일보에서 기자 수업을 시작했다면 인정받는다.

고강도 훈련이라 가장 잘 배우기 때문이다. 한국일보 입사 초기 견습기자는 새벽에 일을 시작해 새벽에 일을 마친다.

그런 자세로 손학규 캠프에 첫발을 내딛었고 이후 오전 6시 넘어 출근한 적이 없었다. 가장 먼저 출근해 일을 시작해야 직성이 풀렸다.

당 부대변인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나 정당에서 근무하다 보면 밤을 새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평상시에는 출근이 이르지 않다.

그러나 나는 일반 출근자보다 1시간 먼저 출근했다. 경험상 사람의 능력은 백지장 한 장 차이다.

다만 노력에 따라 그 결과는 큰 차이가 나기에 더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 입문 3년 만에 경기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 자리를 맡았다. 물론 17년이란 기자 경력이 있었지만 비교적 빠른 시간에 지역위원장을 꿰찼다.

주변의 많은 선배, 지인들이 지역위원장을 맡자 축하해 줬다. 당시 손학규 대표는 강원도 춘천에서 칩거 중이었다.

나는 손 대표가 칩거 중에도 비교적 자라 뵐 기회가 있었다. 당시 손학규 대표와 관련된 언론 창구를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 대표는 늘 “정치는 진정성으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는 지역위원장이 된 후 지역민 어느 누구를 만나더라도 특히 이 마음가짐을 잊지 않았다.

지역위원장이 되자 문희상 국회의장께서 좋은 글을 써 주셨다. 태산불사토양 하해불택세류(泰山不辭土壞 河海不擇細流).

중국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로 태산은 작은 흙덩이도 가리지 않아 큰 산(山)이 되고, 큰 바다는 작은 물줄기도 가리지 않아 깊어진다는 뜻이다.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덕목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며 늘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런 안팎의 좋은 여건 때문에 국회의원 후보까지 성장했다.

2015년 또 한 번의 시련을 겪었다. 5년 이상 맡아 왔던 지역위원장을 도둑질당하듯 빼앗겼다. 2014년 12월 지역위원장 경선에서 졌다.

곡절도 많았다. 경쟁자 측에서 수백 명 당원들이 당비를 대납했다. 당비를 내는 당원들의 투표에서 지고 말았다.

당시 많은 고민을 했다. 고발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증거와 자료로 완벽했다. 그런데도 참았다. 더 큰 정치를 위해서였다.

지난 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시의원 2명은 경쟁자 측의 고발로 옷을 벗었다.

의리가 무엇이고 배신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좋은 수업을 했다고 생각한다. 정치를 하면서 ‘다름’과 ‘틀림’에 대해 명확히 구분하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주변에서는 ‘다름’을 ‘틀림’으로 왜곡한다.

자신과의 입장 차이를 ‘다름’으로 보지 않고 ‘틀림’으로만 간주한다. 극과 극으로 치닫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 중 하나다. 정치는 사회의 중재자이며, 균형자가 돼야 한다.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할 부분을 수용해야 한다. 그래야 다름도 인정받고 함께 갈 수 있다. 그러나 틀림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응할 것이다. 틀림은 ‘부정’이고, ‘불의’이기 때문이다.

기자 시절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서 용납하지 않았다. 정치에서도 그 원칙은 변함이 없다.

‘원칙’과 ‘상식’이 통한 세상을 좋은 정치로 펼쳐 내보고 싶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병폐를 씻어 내는 데 기꺼이 나서고 싶다.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송두영 전 민주당 고양 덕양(을) 지역위원장 hskim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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