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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9년,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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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2019년, 중국
  •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 승인 2019.01.2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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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2019년, 중국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8’이다. ‘8’은 돈을 많이 번다는 “부자 되세요”의 발음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8’이 민중의 수라고 한다면 ‘9’는 철학과 운명의 숫자이다. 주역에서 ‘9’는 극수(極數)다. 모든 수의 우위에 있다. ‘6’은 음의 효(爻)를, ‘9’는 양의 효를 가리킨다. 그 때문에 사람의 이름에 아홉 구(九)자를 많이 사용한다. 대만의 마잉주(馬英九) 전 총통이 그 예다. 

무엇보다도 최고의 절일(節日)은 9월 9일 중양절이다. 양이 두 개 겹치니 길일 중의 길일이다. 지하의 가장 깊숙한 곳인 구천(九泉)을 떠도는 주인 없는 고혼도 이날 제사를 지내주면 하늘 꼭대기 구천(九天)에 간다. 어쨌든 ‘9’는 동아시아 문화에서 최종, 최상, 새로움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치사에서 ‘9’자 돌림의 해는 현대 중국사의 굴곡을 다양한 측면에서 반영하고 있다.

1949년 마오쩌둥이 천안문 광장 누각에서 “중국이 탄생했다”고 선포함으로써 중화인민공화국이 탄생하였다. 중국 공산당 창당 28년 만에 국민당을 몰아내고 대륙의 패자가 되었다.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정부는 그해 12월 5일 대만으로 도주했다. 중국사의 한 법칙처럼 분열과 통일의 과정에서 비록 불완전하지만, 사회주의 통일제국이 탄생한 것이다. 

공산당은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세 산을 넘었다고 선언했다. 물론 다음 해인 한국전쟁(1950)이 발발하기 일 년 전이어서 중국 사회주의 정권의 탄생은 냉전의 서막을 알리고 그로 인해 세계가 이데올로기를 중심으로 한 대립과 각축 가운데 중국이 균형추를 가지게 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올해는 건국 70주년이다.

1959년 중국은 티베트를 유혈 진압했다. 1951년 티베트와 중국이 맺었던 ‘17조 협정’은 일국양제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티베트는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독립을 원했다. 1959년 티베트의 민중봉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엄청난 후유증을 남겼다. 달라이 라마 14세는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 다람살라(Dharmsala )에 망명정부를 세웠다. 1989년 달라이 라마는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지금도 반중(反中)과 평화의 상징으로 중국의 아픈 곳을 계속 자극하고 있다. 올해는 달라이 라마 망명 60주년이다.

1969년 중국과 소련은 우수리 강(江) 쩐바오 섬(珍寶島, 러시아 명: 다만스키 섬)에서 무력 충돌했다. 쩐바아오 섬 영토 분쟁 사건이다. 그 조그만 땅덩어리를 두고, 두 사회주의 국가는 충돌했다. 중소분쟁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피해의식을 지닌 중국이 핵실험에 성공한 자신감을 배경으로 먼저 도발을 감행했다. 소련은 국경 전역에 도발을 한층 강화했다. 

신쟝(新疆) 국경 근처에서는 중국군 1개 대대가 섬멸되기도 했다. 이제 닉슨의 전략은 기회로 변했다. 미국과 중국은 알 듯 모를 듯 염화미소를 주고받기 시작했고, 중국은 양대 강국 사이에서 균형추를 자임했다. 3년 뒤 닉슨은 중국을 방문했다. 고르바초프의 베이징 방문은 20년 뒤 천안문 민주화 사태 와중에서 이루어졌다.

1979년 1월 1일 중국과 미국은 마침내 수교했다. 이 두 거대한 국가는 이데올로기, 정치제도, 경제제도, 생활양식, 문화 등 공통점이라고는 거의 없었다. 하지만 유일한 공동 관심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소련 견제에 대한 입장이 같았다. 미국은 대만에 대하여 단교, 철군, 폐약(중화민국과의 방위조약)을 실천하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임을 승인했다. 

미국은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로 나오도록, 세계 경제체제에 편입될 수 있도록 도왔다. 1979년, 그해 덩샤오핑은 미국을 방문하고 돌아오자 바로 베트남에 대한 공격을 감행했다. 물론 미국과 합의한 것은 아니었다. 베트남의 난폭한 야망을 억제하고 교훈을 주기 위한 ‘징벌’식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일으킨 ‘중국다운’ 전쟁이었다. 

한때의 오랜 공산주의 동지 국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마다치 않았던 동맹국 베트남이 이제 중국의 적이 되었다. 자본주의 국가, 제국주의의 수괴인 미국과 수교하고, 사회주의 동맹국이자 같은 피압박 식민국가였던 베트남과 전쟁을 벌이면서 중국의 방향은 명확해졌다. 개혁과 개방, 그리고 중국특색사회주의를 통한 현대 중국민족주의의 시작이었다. 올해는 중미 수교, 베트남 전쟁 40주년이 되는 해이다.

1989년, 6·4 톈안먼 사건(天安門事件)이 발생했다. 공산당은 민주화 세력에 대해서 가혹하게 진압했다. 이 일로 중국은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했다. 그해 경제성장률은 4.2%로 곤두박질쳤다. 6·4 톈안먼이라는 이 단어는 중국에서는 여전히 금기어다. 그만큼 공산당의 민감한 심기를 건드린다. 당시 학생 지도자 왕단(王丹), 우얼카이시(吾爾開希)는 아직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대만에 있다. 더군다나 6·4 톈안먼 사건은 지금까지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민주화 세력은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인민해방군 역사상 인민의 군대가 인민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고 학살한 치욕스러운 역사기 때문이다. 아직도 공산당은 ‘1989년의 정치풍파(政治風波)’로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올해는 6·4 톈안먼 사건 30주년이다.

1999년, 대대적인 파룬궁(法輪功)의 탄압이 있었다. 중국 정부와 파룬궁 사이의 갈등은 신도들이 합법적인 수련과 자유를 요구하면서부터다. 장쩌민은 파룬궁을 사회 안전을 해치는 ‘이단’으로 규정하고, 대대적인 탄압을 가했다. 

무수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많은 신도가 국외로 망명했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동탕(動蕩)에 빠질 때 그 주체는 군벌, 종교, 농민이거나 아니면 이 세 요소가 결합하여 나타났다. 중국은 무신론적인 이데올로기로 인해서, 파룬궁뿐만 아니라 이슬람교, 티베트 불교, 기독교도 탄압을 받는다. 

특히, 2001년 WTO 가입과 더불어 세계체제에 융합된 이후 중국 내부에서도 인권과 종교적 자유에 대한 갈망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있다. 2019년에는 로마교황청과 중국의 수교도 곧 이어질 전망이다. 또 1999년에는 나토(NATO)군의 일원인 미군이 주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 중국대사관을 폭격했다. 미국의 오폭이었는지 계산된 공격이었는지 알 길이 없다. 중국 대사관 직원 3명이 죽었다. 미국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격렬한 반미 시위를 감행했지만 별도리가 없었다. 그야말로 내우외환의 해였다. 올해는 파룬궁 탄압 20주년이다.

2009년 중국은 자칭 타칭, 세계 ‘자본주의’를 구했다고 말한다. 2008년 9월부터 시작된 세계적 규모의 경제 위기가 발생했다. 그 출발지는 미국이었다. 나아가 2011년 미국의 경제난과 실업 문제가 겹치면서 민중들은 월가를 점령했다. 저렇게 강대한 국가도 하루아침에 휘청거리고, 생각했던 것만큼 미국은 별것이 아니라고 중국은 느꼈던 것일까. 

물론 세계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졌다. 아니나 다를까 이때부터 중국은 국제사회에서 자신의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과거의 빛을 숨기고 어둠을 기르는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에서 이제 할 말 있으면 하고 본다는 유소작위(有所作爲)의 경향이 더욱 노골화되기 시작했다. 미국도 아시아로 돌아왔다고 천명했다.

올해도 여전히 ‘9’자의 해 2019년이 시작되었다. 2018년 시진핑은 마오쩌둥에 버금가는 권력을 구축했다. 헌법을 고쳐 국가주석 임기 규정을 폐지하였고, 더군다나 시진핑 이후 공산당을 이끌 차기 지도자군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올해 시진핑 앞에는 각양각색의 내우외환(內憂外患)이 기다리고 있다. 우선 내환이다. 경제성장이 지나치게 둔화하였다. 

2018년 경제성장률은 천안문 사태 이후 28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여기에 도시와 농촌 간의 차이(城鄉差距), 빈부 차이(貧富差距), 동부와 서부 차이(東西差距)가 깊어지고, 관과 민의 차이(官民差距)도 확대되는 추세여서 각종 시위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올해는 달라이라마 망명 60주년이며, 천안문 사태 30주년을 맞는 해다. 잠복한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하지만 내환보다는 외우가 더 골칫거리다. 미국과의 무역전은 2019년 3월 1일까지 휴전상태지만 필저버리(Michael Pillsbury)의 말대로 중국과 미국은 이미 백 년의 마라톤을 시작했다. 미국의 서태평양 정책의 프레임은 이 지역에서 배타적이고 적의로 충만한 패권국의 출현을 방지하는 것이다. 이는 시종일관한 미국의 정책이다. 

미국은 이미 2018년 국가안보 전략보고서와 국방전략 보고서를 통해서 중국을 라이벌로 규정했다. 다시 말해 동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이 미국을 대체해서 패권을 추구하는 것으로 단정했다. 이는 미국 조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그러므로 미국은 정책을 통해 지역 패권국의 등장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트럼프 정부가 주도하는 자유 개방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 개념이다.

동아시아에 있어서 4대 화약고는 남중국해, 대만해협, 동중국해, 서해다. 이 지역은 과거로부터 해양세력과 대륙세력이 만나는 지점이다. 물론 중국은 미국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적극적으로 피할 것이다. 

그러나 대만문제는 사정이 다르다. 민족적 자존심에 관한 문제며, 공산당의 정당성에 관계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대만문제의 양보는 곧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고, 제2의 리훙장(李鴻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어떤 중국의 지도자라도 대만의 독립을 받아들일 수 없다. 2019년, 만약 중미의 경쟁이 더 격화된다면 그 전장은 대만해협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마오쩌둥과 동급의 시진핑 사상이 중국 공산당 정강에 삽입된 만큼 이제 시진핑도 대만문제에 관해서 실질적 업적을 세워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그 과정에서 태평천국처럼, 내우를 해결하려다 서구 열강의 외환을 불러들일지, 아니면 장제스처럼 내부의 종기를 제거하려다 오히려 종기가 덧나 사지의 하나를 절단해야 할지는 누구도 모른다. 2019년 중국,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다.  

강병환 논설위원(정치학 박사) sonamoo36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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