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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500원에 시장에서 파는 쌀은 4000원...살인적인 물가에 탈출 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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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1500원에 시장에서 파는 쌀은 4000원...살인적인 물가에 탈출 러시"
  • 조해진 기자
  • 승인 2012.03.21 2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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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인터뷰]탈북자 충격증언- 북한 사회 현주소

사진=AP
[KNS뉴스통신=조해진 기자] 최근 북한을 탈출하는 탈북자들이 급증하면서 국제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중국 탈북자 강제 북송을 둘러싸고 한.중간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중국 등으로 탈출하는 북한 주민들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이 이같은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KNS뉴스통신>은 지난달 29일 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자 이철수(59.가명)씨를 만나 북한 사회의 실상에 대해 들어봤다. 

월급 1,500원에 시장에서 파는 쌀은 4,000원인 현실, 전기·가스 모두 귀해

이씨는 화면이 큰 아날로그 텔레비전을 바라보면서 “이 티비도 북한에 가면 큰 재산인데.. 아까워서 못 버리겠다. 북한에서는 이런 텔레비전도 대단한 거다. 저 냉장고는 말할 것도 없고. 물론 냉장고는 전기가 잘 안 들어오기 때문에 별 사용도는 없지만 빈 껍데기라도 있다면 대단한 집인 거다. 북한에서 텔레비전, 냉장고 이런 것들은 월급을 모아서 산다는 것은 꿈도 못 꾼다. 불법 장사를 해야지만 돈을 모을 수 있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이씨는 북한의 월급은 맨 아래층이 1,500-2,500원 사이, 중간층이 4,000원, 최고급층이 7,000-8,000원인데 쌀 1kg이 4,000원이라고 밝혔다. 주민에게 배급되는 쌀은 kg당 35원으로 살 수 있지만 시중에서 파는 가격은 4,000원이어서 두 달 월급을 모아야 쌀을 살 수 있다는 것.

이씨는 월급도 적으니 일할 맛이 없고, 할 필요가 없게 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며 나와서 일을 하다 죽거나 불법 장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다른 직장 생활을 하다가 먹고 살겠다고 장사에 뛰어들었지만 들인 돈을 다 까먹고 굶어죽는 일도 허다하다. 이씨는 1991년도에 300만명이 굶어죽었다는 말이 우스개소리가 아니라고 담담히 말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명절이 되야 고기를 맛보는 정도다. 기름도 5식구에 500g 하나를 주기 때문에 기름이란게 얼마나 귀한지 반찬이 기름 냄새만 풍기면 1등 반찬이 된다. 한국에 온 내 생활이 힘들다고 해도 여기서 생활하는 것이 북한 군당책임자 생활보다 낫다. 군당책임자도 가스를 못 쓰는 형편이다. 군수 쯤되면 중국가스를 끌어다 쓸 수 있지만 샤워실의 차가운, 더운물은 꿈도 못 꾼다”고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일반 시민들은 아는지 모르겠지만 북한의 집은 가스화가 안되서 모두 석유 버너다. 집에 들어가면 석유냄새를 물씬 풍긴다. 위생상 얼마나 안 좋겠나. 가스는 중앙당국 아파트라던가 일급 과학자들 등 따로 지어논 아파트에만 가스 공급이 되고 다른 일반시민 아파트는 몽땅 석유로 불을 지핀다”고 밝혔다.

사진=AP

중국보다 가기 어려운 수도 평양, 북한 속의 또 다른 나라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보다 수도인 평양이 더 왕래하기 어렵다는 북한. 이씨는 평양은 북한 속의 또 다른 나라라고 말한다.

그는 “북한에는 두 개의 나라가 있다.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평양이다. 다른 지역에서 평양을 가야하게 되는 경우에는 서류를 받거나 승인번호를 받아야 들어갈 수 있다”며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는 평양에 대해 말했다.

이어 “이런 절차가 아니면 친척 결혼식, 장례식 이 외에는 평양에 들어갈 수 없다. 인구가 과잉되면 김정일 신변이 위험하다는 것이 이유였었다. 때문에 오히려 중국을 가는 것보다 평양에 들어가는 게 더 어려웠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돈이면 다 된다고 한다. 중국이나 연선, 평양으로 갈 때 모두 승인번호를 받아야하지만 지정된 금액을 주면 통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승인번호가 있어야 평양을 통행을 할 수 있도록 한 제도는 중국이 먼저 실시하고 있던 것을 북한이 68년도에 와서 따라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이 제도를 실시하자 오히려 중국인 이 제도를 폐지했고 북한은 사람들을 통제하기 편리해지자 계속 남겨두었다는 것.

이씨는 “서울에서 인천 가는 것도 증명서가 있어야 간다는 것이 말이 되나. 이런 제도는 세계에 북한 밖에 없을 거다. 다 구실을 만들어서 통제를 하는 것이 목적이다. 딱 자기 위치에서 일만해라 하고 요구하는 거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주는 것이 없으니까 사람들의 반발이 생기기 마련이지”라고 비판했다.

북한에서 대학은 간부 양성소... 군복무 잘 하는 사람만 추천제로 들어가

"글에 취미있는 사람보고 돌대학(지질대학)가라니 공부가 되나" 북한에서 작가로 활동했던 이씨는 지질대학을 나왔다. 그는 북한의 대학은 자신의 흥미와는 관계없이 위에서 정해주는 대로 가야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대학이 민족간부양성기지로 생각되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간부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간부가 되는 것이 북한에서 살기 가장 좋은 일이기 때문에 대학을 추천해주면 가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이씨는 "북한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십년 정도 군대 생활을 한다. 그리고 군복무를 잘 해내는 사람에 한해서만 대학을 추천해준다. 추천할 때는 개개인이 어떤 공부를 하겠다는 선택권도 없고 '어디를 가고 싶다'고 말을 하지 못한다. 자기 관심분야가 아니어서 안 가겠다고 하면 그걸로 대학을 갈 수 있는 기회는 끝나버리니까. 그래서 결국 추천을 해주는 대로 대학을 가게 된다"고 북한의 대학 입학에 대해 설명했다.

이어 "또 구마다 학생 모집위원회가 있어서 각 학교에서 '너희 구는 몇 명을 뽑아라'하고 지령이 내려온다. 뽑히면 거기서 합격을 해야지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이 때 어디를 가고 싶은지 형식적으로 물어보기는 하지만 참고만할 뿐이지 그냥 알아서 정해준다. 만약 뒤에서 부모가 돈을 넣어주면 자기가 원하는 곳을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위에서 정해주는 대로 간다“고 덧붙였다.

그는 “나도 위에서 정해준대로 지질대학을 나와 자격증을 받았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글을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틈틈이 야간 인문대학을 다니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가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면 탈북도 안 하지"라며 자유롭지 못한 북한의 대학 입학 체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북한의 문학의 두 가지 키워드 ‘사랑 따위’, ‘위대한 수령님’

이씨는 북한에서 작가로 활동한 만큼 북한의 문학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이씨는 처음 중국에 가 서점을 방문하면서 한국의 문학을 접했고 그 외에도 다양한 종류의 책, 잡지 등을 보며 신선함과 재미를 느꼈다고 전했다.

“처음 서점에서 갔을 때는 거기에 있던 각종 잡지 등을 몽땅 사왔다. 북한에서 가져온 돈으로 다 산거다. 가져온 책들을 팔려고 했지만 장사를 잘 몰라 밑지고 말았다. 그 뒤 가져온 잡지 등을 자지도 않고 계속 읽었다. 북한에서는 삶과 관련된 이야기들만 나온다. 국내의 사건 사고 내용들은 뉴스에서도 거의 볼 수 없다. 좋은 내용들만 나오고. 이렇게 체계화된 사회에서만 살고 있다가 자유 문물을 접했을 때 사람들 속에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들어있으니 얼마나 재미있던지. 그렇게 접하고 나니 순식간에 의식이 바뀌더라. ‘아, 세상은 이렇구나, 바깥 세상은 넓고 우리 처럼 이런 것이 아니구나’ 그렇게 우물 안에서 나오게 됐다”며 이씨는 처음 맛 본 자유로운 책 속의 세상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의 문학에 대해서 “북한은 문학도 마찬가지로 단순하다. 전형적인 작품만 나온다. 틀에 박힌 글만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당과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하는, 여자가 남자를 따라가게 만드는 그 두 가지가 정해진 내용의 줄기다. 남자가 어느 날 여자의 집에 찾아오게 되고 여자는 남자가 아버지에게 한 말을 마음에 품고 살다가 남자를 만나 따라가게 된다. 그게 북한 문학에서 사랑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현실에서는 사랑이 이루어지는 게 쉽지 않은데 그 과정을 그렇게 쉽게 만들어 버린다. 또 당에서 내세울 수 없는 인물들이나 옛날 지주자본가들 등은 절대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틀에 박혀 단조로운 문학이라고 평했다.

이어 “북한의 경우는 사랑같은 것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는다. 고정된 틀에 박혀서 ‘남녀 간에 만나서 결혼하면 된다’, ‘사랑 그까짓 거’ 이렇게 넘겨버리기 때문에 사랑이란 깊이를 모르는 것 같다”면서 “사랑하다 헤어져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이 북한에서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또한 북한에서 금기시 되는 것은 ‘자신을 내세우는 것’이라고 한다. 이씨는 과학자를 예시로 설명했다.

“만일 어떤 과학자가 뭔가를 발명했는데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가게 됐다. 보통은 그런 경우 소송을 걸고 큰 일이 나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이의 제기를 할 수가 없다. 왜냐, 북한은 기본이 ‘사람들이 무엇을 창조하고 무엇을 했던 간에 당과 수령님한테 기쁨과 만족을 주고 행복을 느끼게 한다면 그걸로 기뻐하면 된다’라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북한은 그게 상식이다. 내 스스로를 내세우려 한다면 오히려 깔아뭉게는 것이 현실이다”라고 이씨는 밝혔다.

소설과 같은 책에서는 저자의 이름만 소개될 뿐 사진과 약력 등은 나오지 않는데 사진과 약력이 나오면 그 사람이 우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금기시 된다는 것.

그는 “만약 어떤 사람의 팬클럽이 생긴다거나 의형제를 맺는다고 하면 당장 잡아간다. 반정부의 씨앗이 된가는 것이 이유다. 뭉치면 ’너 뭐하자는 거냐, 목적이 뭐냐‘라고 의심하는 거다. 때문에 단체를 모은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다. 종교 단체는 더욱더. 만드는 즉시 반정부주의자로 몰린다”라고 설명하며 “하지만 사람이 자신을 내세우지 못하면 어떤 의미로 살아가겠냐”며 북한의 독재체제의 부당함을 강조했다.

또한 이씨는 한국에 와서 처음 본 광경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부모들이 결혼을 반대하는 것도 신기하다. 한국 드라마에서는 할머니 등 부모가 결혼 반대를 하는 장면들이 많은데 북한에서 자식한테 그렇게 했다가는 매를 맞는다”며 한국과는 다른 북한의 부자관계에 대해 말을 이었다.

 “당이 날 키웠지 아버지가 키웠소?” 자식에게 호통칠 수 없는 부모

이씨는 북한과 남한의 부모자식 관계가 많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은 가부장적이지만 북한은 그렇지 않다. 북한은 수령에 대한 우상화가 제일 우선이다. 때문에 만일 아버지가 개인적 정치적 발언을 한다면 아들이 아버지 귓방망이를 때려도 할 말이 없다.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에게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며 호통을 치지만 북한에서는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없다”며 “부모가 ‘내가 너를 키웠다’라고 말을 할 수 없다. 그렇게 말하면 ‘아버지가 나를 키웠느냐. 당이 나를 키웠지. 아버지는 날 낳아만 줬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밝혔다.

이어 “오히려 부모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나쁜 거다. 사상적으로 ‘자식은 당에서 키워주는 것이지 자신이 키운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자연스러운 거다. 그러나 이 전보다 더 살기 힘들어지면서 가족애가 살아났다. ‘내가 너를 벌어서 먹여야 한다’는 것,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음식을 나눠 먹겠다고 할 수 있는 사이는 가족 뿐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가족애가 생겼다”고 말했다.

“대길이 죽어 안 죽어?” 돈보다도 궁금했던 추노 결말... 북한의 한류 열풍

이씨는 조카와 통화했던 이야기를 들려주며 북한에도 한류 열풍이 불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한류가 얼마나 센지 모른다. 조카가 있는데 석 달에 한 번씩은 북한 밖으로 나온다. 한 번은 저번 추석 때 돈을 보내달라는 전화가 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연선(연변)에서는 2분 이상 통화를 나눌 수 없다. 오래 전화를 하게 되면 전파 탐지에 걸려 체포자가 떠서 잡혀가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1분 30초 가량 통화를 하고 배터리 뽑아 1km가량을 이동해서 다시 전화를 한다. 이렇게 힘겹게 수 차례 전화를 하며 돈을 받은 것까지 확인을 했는데 마지막에 조카 녀석이 했던 말이 ‘추노 마지막에 대길이가 죽는지 안 죽는지 알려달라’고 하더라. 돈도 돈이지만 드라마 결말이 너무 궁금하다며 드라마 CD를 보내달라는 거다”라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이씨에 따르면 북한 사람들도 한국 방송 3사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전파를 잡아서 시청하는데 중국인들이 전파를 따서 그걸로 돈을 벌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드라마가 보름만 있으면 CD가 되어 북한으로 들어간다는 것.

또 한국 드라마는 중국 드라마보다 말이 통하고 감정이 통하기 때문에 북한 내에서 더 인기가 많다고 한다. 이씨도 옛날 인기리에 방영됐던 ‘올인’, ‘야인시대’ 등을 북한에서 무척 재미있게 봤다고 말했다.

그는 “드라마 볼 때는 체면도 없다. 한국 드라마를 봤다는 것을 들키면 안되지만... 어디서 어떤 방송을 본다고 하면 서로 통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함께 시청한다. 요즘은 대학생들도 한국 관련 CD를 가지고 있으면 인기를 끈다고 한다. 옛날 같았으면 한국 관련 CD 등을 가지고 있으면 신고를 당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사람도 없다. 오히려 한국 CD를 가지고 있으면 ‘저 사람 능력있네’라고 인정을 받고, CD를 서로 돌려본다”며 한국 드라마 등이 북한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는 “한국 드라마 시청률이 뭐 30%가 나왔다면서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북한으로 방송을 보낸다면 아마 시청률이 100%가 나올 것”이라며 “북한 사람들은 위대한 수령님, 장군님 이런 말만 없어도 좋아한다. 또 한국 드라마는 자막이 필요없고 어감도 더 자연스럽지 않나. 오히려 보위부가 같이 보자며 공유를 하자고 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탈북자 가족 집안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변화의 물결

북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먹고 사는 문제다. 이씨는 현재 북한의 상황이 남한의 육칠십년대와 비슷하지만 체제 문제로 인해 성향은 다르다고 전했다.

또한 “예전에는 소외된 사람, 반란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탈북자 가족들이 현재는 제일 잘 사는 계층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며 “탈북한 가족들이 돈을 보내주니까 걱정없이 산다. 한 구역을 담당하고 있는 의원들은 탈북자 가족 집들을 보호해주는 형국이다. 부자가 될 수 있으니까... 어찌됐든 이렇게 보호를 받는 탈북자 가족들이 중심이 되서 안에서부터 의식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형국이다”라고 북한 내부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어 “마을별로 사람들이 똘똘 뭉쳐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끔 전화를 하면서 어떻게 사는지 이야기를 듣고 무슨 일이 생기면 사람들이 알려주는 데 그 사이에는 꼭 보위부 사람들이 속해있다. 즉 그 사람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구성되는 것이다. 이 현상이 오래 지속되고 탈북자가 20만 명이 넘어가게 된다면 북한 체제는 자연히 붕괴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고 북한 내부의 변화를 설명했다.

이씨는 북한이 힘들더라도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지길 바라고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점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해진 기자 sportjhj@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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