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기 먹의 정신을 앞서가는 전북은 옛부터 예향의 도시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우리나라 제주도부터 백두산에 이르기 까지 유서 깊은 도시 아닌 곳이 몇 군데나 되며 예향으로서 고전이 살아 숨 쉬지 않는 도시가 몇 군데가 있을까?
몇 차례의 일제의 침략과 그 오래전 임진왜란 등으로 불타버려 소실된 문화 유적을 헤아리지 못하며 외국으로 유출되고 빼앗긴 문화 유물 또한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특히 6.25전쟁으로 인해 불타 없어진 문화 유적, 유물 또한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다.
그만큼 많은 전쟁 속에서도 우리 대한민국의 문화 유적지는 아직도 곳곳에 산재 해 있으며 지금도 발굴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유독 전주만이 , 또는 전북만이 예향의 도시임을 내 세울 수 는 없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모든 도시가 다 예향의 도시를 표방하고 나서면 대한민국의 도시는 어떻게 변화 될 것인가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예향의 도시라고 하는 이유로는 아마도 좀 더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명맥을 유지하며 보존하고 그 맥을 지켜온 데서 나온 말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먼저 예향 하면 우선 관광객유치와 연결되고 자연스럽게 도시의 수입과도 유기적 관계가 형성될 것이며 그러다 보면 그 도시의 경제가 좀 더 나아질 것을 기대하여 예향의 도시를 표방하고 나설 수도 있겠다.
전북은 서예가 강한 도시라는 소리를 듣고 살아온 나 자신도 지금은 그런 말이 무색할 정도로 전국이 서예 면에서 보면 골고루 분포되어 있으며 아니, 오히려 경제적으로 월등한 타 도시가 전북의 서예전통을 앞지르고 있는 실정임을 실감한다.
그런 가운데 전북의 맥을 이어보자는, 그리고 세계화 시켜 보자는 차원의 세계서예전북 비엔날레 가 시작 된지도 어언 22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그동안 조직위는 늘 상 그 인물이 그 인물로서, 새롭게 혁신되지 못하고 그나 물에 그 밥으로 존재해 왔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는 분명 인문정신이기도 한 ‘정신’이 ‘물질’을 앞서지 못한 우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여기저기서 불평들이 쏟아져 나오고, 참여하고 싶지 않다는 부정적 소리도 꽤나 들어야 했다.
그만큼 운용의 묘를 살리지 못하고 시대의 부응에 기여하지 못한 점 분명하다.
하기야 하던 사람이 매번 하고 운영하던 사람이 매번 운영하고 어쩌다 바뀌면 자리만 서로 바꾸어 가면서 마치 자기 것이라도 된 양 휘두르던 권위주의의 붓질에 염증을 느껴도 엄청 느꼈을 우리나라의, 특히 전북의 예술인들의 얼굴에는 늘 그늘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마치 군사정권의 휘두르는 지휘봉에 주눅 들고 억눌리던 시절처럼 말이다.
그런데 지난해 뜻한바가 있어 조직위가 대거 변화되는 시기를 맞이하였으니 더 이상 견디질 못하여서인지 아니면 어느 누가 반기를 들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기용돼 새롭게 인선이 갖춰지니 일단 기대는 하면서 ‘전과 동’이지 않을까를 예의 주시하게 된다.
서예는 분명 인문학의 범주이며 또 그래야만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단지 예술적으로 글씨를 쓰는 서사행위에만 그치지 않는다.
일필휘지의 정신, 심오한 검은 먹의 세계에 대한 철학적 사고, 역사와 시대의정신과 부단히 올바름을 추구하는 선비적 정신이 곁들여 있으니 그야말로 서예는 정신 중에서 으뜸인 선비정신, 학문의 정신임이 분명하다.
여기에 물질적 사고가 끼어 버리면 훼손되는 것은 숭고한 정신이다.
그리고 그 숭고한 정신을 숭상하는 서예가들이 있다면 그들이 상처 받고 그 정신이 훼손당하게 되는 것이다.
학자는 부단히 학문연구에 그 심혈을 기울여야 하며 , 교수는 부단히 학생들 지도에 여념이 없어야 하며 예술가는 부단히 창작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어 작품연구에 몰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자가 여기저기 물질에 기웃거리고, 교수가 여기저기 물질에 관여하고 , 예술가가 여기저기 물질에 편승하게 되면 올바른 정신을 함양하며 올바른 연구를 할 수 있겠는가?
이번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는 비록 욕심일 지라도 그런 선비정신, 학문의 정신, 숭고한 학자적 정신이 곁들인 서예정신이 빛나는 서예의 잔치가 되기를 기대한다.
예술가 어느 누구나 소외당하지 않고 편협 되거나 치우침 없이 골고루 초대 작가에 선정되어 제약됨이 없이, 유감없이 훌륭한 작품을, 표방하는 정신의 붓질의 세계를 보여줬으면 하는 희망이다.
김봉환 기자 bong21@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