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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의 세상사는 이야기] 낙수흔적은 어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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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의 세상사는 이야기] 낙수흔적은 어디에?
  • 박정원(상지대 교수, (사)조은사회정책연구원 이사장)
  • 승인 2019.01.10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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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원 상지대교수(사)조은사회정책연구원 이사장

[KNS뉴스통신=박정원 논설위원]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down effect)라는 경제용어가 있다.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이 성장하고 이들의 소비가 늘어나면 이에 따라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도 혜택을 받게 된다는 주장이다. 와인 잔을 피라미드처럼 층층이 쌓아 놓고 맨 위 꼭대기 잔에 와인을 부으면, 위의 잔부터 다 찬 후에야 아래로 넘쳐 내려간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은 분배보다는 성장을 우선시하고, 경제정의 (형평성) 보다는 효율성을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런 흐름의 정책은 소수의 대기업과 고소득층에게는 잔이 차고 넘칠 때까지 혜택을 주게 되고, 나머지 기업들과 대다수 국민들은 위에서 한 방울씩 떨어지는 낙수만을 핥아야 하는 불평등만 초래할 뿐이라는 반박이 있어 왔다.

현실에서는 과연 어땠을까? 중소기업정책연구원의 홍운선 연구위원의 연구(2017)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레이건 대통령과 조지 부시 대통령 집권 시절에 낙수효과를 내세운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파격적인 감세정책이 그 중심이었다. ‘부자감세’로 불리던 레이건의 세재개혁은 쌍둥이 적자(재정적자 + 경상수지 적자) 현상을 낳고 말았으며, 부시 정권 역시 경제 불황 해소에 성공하지 못하고 거대한 재정적자만을 초래했다.

그러나 클린턴 정부에서는 세율 인상과 세출 절감을 통해 경제정의의 재건을 추구했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경제는 ‘황금의 90년대’라고 불리는 고도 성장기를 구가하였다. 이후 등장한 오바마 행정부는 낙수효과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정부에 의한 소득재분배를 강조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명박 대통령 시절에 소위 낙수효과를 기대하며 기업의 법인세율을 크게 인하했는데, 그 효과는 지금 한국사회에 그대로 남아있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8년 말 현재 국내 주요 271개 기업 사내유보금은 총 837조7577억원에 달한다. 이 중 삼성이 228조2304억원으로 가장 많다.<그래픽=강길영 기자>

재벌과 대기업의 잔에는 이윤이 가득히 쌓여있으나,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잔에는 낙수흔적도 찾기 어렵다. 가난에 시달리는 저소득층의 고통은 심화되었는데, 호사스런 소비와 사치는 늘어만 간다. 값이 비싸 유럽인들도 잘 마시지 못하는 위스키 소비량 1위가 한국인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부자들의 소득이 더 늘어난다고 해서 그들의 소비가 더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들은 지금도 원하는 만큼 소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한 이윤을 얻고 있는 대기업들도 이윤이 좀 증가했다고 위험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투자하지는 않는다. 결국 낙수효과란 대기업과 고소득층을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며 허상이다. 

미국이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국가의 하나로 전락한 것도 대기업과 부자위주의 정책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타깝지만, 한국도 그 뒤를 따르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60여 년 전,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는 상류계층의 허위의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썼다.

“자기 자신의 안위와 명예만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행하는 무분별한 사치는 사회악들을 빠르게 완성시키며,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린다는 구실로 나머지 모든 사람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머지않아 국가의 인구를 감소시킨다.” (『인간불평등기원론』 중에서)

사람 사는 세상이 다 비슷한가 보다. 소수에게 부가 집중되는 불평등한 경제현실이 인구감소를 초래한다는 지적은 작금의 현실과도 정확하게 들어맞는다. 그러기에 부의 불평등 해소와 같은 근본적 정책을 제쳐놓고, 일회성인 출산장려금 정도로 인구증가율이 회복되리라는 생각은 안이하고 근시안적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특혜가 별 효과를 보지 못하는데 비해, 중소기업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간 몫은 곧바로 시장의 수요로 나타난다. 그동안 자금이 부족해 투자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 있고, 넉넉지 못한 가계의 소비자로서 하고 싶었던 일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필요한 정책이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두말할 필요 없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려주고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내수 중심의 경제활성화를 꾀할 경우에 가장 효과적이다. 그래서 소득중심 성장정책은 저소득층의 삶도 보장하고 경제회복도 추구하는 것으로서 분명히 옳은 방향이다. 그런데 왜 일부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나? 높이 달린 대추를 장대로 딸 때, 대추만 떨어뜨려야 하는데 잘 못 해서 잔가지가 함께 부러졌기 때문이다.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친절한 설명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보다 정교한 조절책이 필요하다.

대기업들이 사내유보금을 계속 보유만 하고 투자하지 않는다면, 세금으로 환수하여 정부가 대신 투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는 공공부문의 일자리 증가를 가져올 것이지만, 이 경우 부딪히게 될 저항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이에 대한 충분한 대책이 수립돼 있다면, 추진해 볼만한 정책이다.

교육부문에도 하나의 해답이 있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이 매년 납부하는 등록금 총액은 15조원 정도 된다. 이 돈을 국가가 대신 부담해 주면, 가계의 지출여력이 그만큼 늘어나게 된다. 대학생 자녀를 둔 가계들이 늘어난 수입의 평균 80%정도를 소비한다고 보면, 12조 원가량의 수요증가가 있게 된다. 이 돈을 차지하기 위해 기업들은 경쟁적으로 투자할 것이다. 이로 인해 고용이 늘어나고 소득이 증가하여 시장수요가 다시 증가하게 된다. 

유럽 선진국 수준의 대학교육 무상화는 국민복지의 향상과 함께 경제활성화에도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른 경제활성화는 조세수입 증가로 이어져 정부의 곡간이 다시 채워지게 될 것이다.

· 박정원 교수 주요경력
- 상지대학교 부총장
-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강원지회장
- 한국사국정화반대 원주시민행동 상임대표
- 원주시민회 사무총장
- 사립학교교수협의회연합회 부회장

박정원(상지대 교수, (사)조은사회정책연구원 이사장) wonjup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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