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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詩] 환멸을 찾아서 5- 감각의 제국, 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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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詩] 환멸을 찾아서 5- 감각의 제국, 유하
  • 백영대 기자
  • 승인 2018.12.25 21: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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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백영대 기자]

오늘도 삶은 자꾸 막다른 곳으로 나를 이끈다

환멸이여, 그러나 막다르지 않는 내일이 어디 있을까

걸어온 길들은 돌아갈 틈도 주지 않은 채 모래바람처럼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것들의 배반 같은 눈물겨움,

그 눈물겨움 너머로 난 꿈의 앙상한 해골을 본다

살아온 만큼 난 더러워졌고 또 더러워져 갈 것이다

그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버릇처럼 되돌아보면

추억의 무덤가엔 어린 날의 내가 울고 서 있다

날아가는 새와 영혼을 바꾸고 싶어

온종일 소나무 위 둥지만을 바라보던 그 아이

그 아이 생각을 하면 못 견디게 아프다

결국 이렇게 되어버렸구나 하는 생각,

길들여진 앵무새처럼 노닥대다가 킥킥대다가

더듬이 하나로 지상의 모든 욕망을 욕망하는

감각의 벌레가 되어 스멀스멀 기어가고 있다는 생각,

그렇다고 삶이 나를 잘못 엎질렀다고는 여기지 않는다

내가 삶을 잘못 읽었다

난 모범생이고 싶었지만 모범생이 되지 못했고

건달이고 싶었지만 끝내 건달이 되지도 못했다

썩은 시신 하나 남기기 위해 뒤척이는 것이 생이라면

한땐 세상이 어쩌지 못할 정도로, 광란처럼 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노래여, 이 지루한 나날들의 비늘 돋힌 건전 가요여

세월의 늪은 깊고 깊은 것이어서, 꿈들은

슬플 새도 없이 축축한 어둠 속으로 묻히고

나는 또 하릴없이 막다른 내일의 분홍빛과 거짓으로 타협하며

혼탁해져 갈 것이다 혼탁을 쥐어짜 고통을 만들 것이다

그 고통이, 막다름마저 막다른 생의 무덤 위에서

무심처럼 가벼운 새의 날개를 얻을 때까지

- 유하

백영대 기자 kanon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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