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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유출 재판기록’ 파기 증거인멸 방조 '사법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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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유출 재판기록’ 파기 증거인멸 방조 '사법불신'
  • 조창용 기자
  • 승인 2018.09.12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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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 조창용 기자] 대법원 기밀 문건 파일 수만건을 불법 반출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변호사)이 증거인멸 과정에 법원이 연루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영장전담법관이 압수수색 영장 심리를 무려 사흘이나 끄는 사이에 전직 법관이 증거를 파기하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국회에서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 농단’에 대한 국정조사 추진 의사를 밝히는 등 사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수사단(단장 한동훈 3차장검사)은 12일 증거인멸 과정에서 행정처와 유 전 연구관 측이 교감을 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유 전 연구관이 ‘증거인멸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검찰에 제출한 뒤 마음을 바꿔 지난 6일 문건 파일을 없앤 비상식적 행동의 배경에 행정처 또는 법원 측의 암묵적인 묵인 또는 지시가 있었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검찰은 증거인멸에 연루된 인사들을 모두 추적해 반드시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행정처가 ‘거짓 발표’를 한 사실도 법원 측과 유 전 연구관의 ‘교감설’을 증폭시키고 있다. 행정처는 전날 “10일 유 전 연구관에게 전화해 반출한 기밀 자료 목록을 제출할 수 있는지 처음으로 문의했다”고 했다. 그러나 유 전 연구관은 9일 검찰 조사에서 “지난 7일 행정처 윤리감사제1심의관과 통화를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측은 유 전 연구관이 반출한 대법원 기밀 문건 파일의 반납 절차를 상의했다고 한다. 

행정처 관계자는 11일 “지난 7일 첫 통화가 있었다”고 뒤늦게 시인하면서도 “당시 유 전 연구관이 하드디스크를 버렸다는 등 증거인멸과 관련된 말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는 이미 증거인멸이 이뤄진 뒤여서 행정처의 설명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 전 연구관은 9일 이뤄진 검찰 조사에서도 증거인멸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검찰은 실제 증거인멸이 행정처와 유 전 연구관의 7일 통화 이후 이뤄졌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확인할 방침이다. 유 전 연구관이 여전히 문건 파일을 소지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검찰은 12일 유 전 연구관을 소환 조사한다.

유 전 연구관과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와의 관계도 의심을 받고 있다. 박 부장판사는 유 전 연구관에 대한 검찰의 세 번째 압수수색 영장을 기각한 판사다. 그는 2014년 유 전 연구관이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으로 일할 때 재판연구관실에서 함께 근무했다. 일각에서는 “당시 인연으로 박 부장판사가 유 전 연구관을 보호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법조계에서는 “우려하던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영장법관이 증거인멸을 사실상 방조했다”는 반응과 함께 사법부 스스로 별도의 영장심사부 설치 등 특단의 조처를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일은 잇단 영장 기각으로 가뜩이나 커지고 있던 ‘사법부 불신’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사법부 스스로가 자기 재판의 판관이 되는 모순을 피하려면 명망 있는 법조인들로 독립된 재판부를 꾸리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국회 등 정치권의 무관심 탓에 적절한 시기를 놓쳐 버렸다는 것이다. 법관 출신의 한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부 외부의 특별재판부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이제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그사이 이미 많은 증거인멸이 이뤄졌을 것이고, 입법이 언제 될지도 의문”이라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영장전담 합의부’의 신설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관 1명이 혼자서 발부 여부를 결정하는 기존 영장전담법관들 말고 합의부(법관 3명) 형태의 전담 재판부를 새로 설치하자는 것이다. 재판부 구성도 ‘재판장의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험 기수가 대등한 법관들로 하고, 수사 대상자들과 근무연이 겹치지 않는 법관들로 엄선하자는 제안이다.

고법부장 출신의 변호사는 “전담 재판부 신설은 국회의 입법 사항이 아니라 법관들의 업무 분장 차원에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며 “사법부의 위상 실추를 이제라도 막으려면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민중기 서울중앙지법원장의 결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위원들은 사법 농단 국정조사를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민주당 소속 법사위원들은 이날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근 드러나는 사법 농단 실체와 증거인멸 시도 등을 접하고 더는 사태를 묵과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며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조창용 기자 creator2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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