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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양의 9박 10일, 한민족의 화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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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평양의 9박 10일, 한민족의 화합이었다
  • 이민영 기자
  • 승인 2018.09.04 13: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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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남북체육교류협회 박정태 수석부회장 - 이것이 '통일의 길'이라 생각하며
(사)남북체육교류협회 박정태 수석부회장<사진=이민영 기자>

남북스포츠교류협회에서 주최하는 아리스포츠컵 국제유소년 축구선수권대회는 2014년11월5일 연천군에서 제1회 대회를 시작하여 2015년 8월21일 평양 5.1경기장에서 제2회 대회를 하였으며 제3회는 중국곤명에서 제4회 대회를 2018년8월16일 평양 김일성 경기장에서 6개국 8팀이 2개조로 진행되었다. 

이번 경기를 진행하기 위하여 분단 70년 이후 처음으로 민간단체 선수포함 150여명이 서부전선 개성을 통과하여 육로로 평양으로 들어가는 것은 처음이다 이 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정치인은 할 수 없어지만 민간 스포츠 단체인 남북체육교류협회가 10년 만에 이뤄낸 성과이다.

8월10일 임진각을 13시에 출발하여 도라산역에 도착하여 CIQ를 출발하여 20여분만에 개성공단 세관에 도착하여 2시간30분간 세관검사를 끝내고 평양고속도로 인체인지에 들어서니 평양까지 160km라는 이정표가 보였다 

관광버스는 70-80km 속도로 운행하였으며 개성 평양간 고속도로는 왕복 4차선에 직선도로 잘 건설 되었으며 터널은 8개정도 짧은 터널로 기억된다. 2시간 30분만에 평양 양각도 호텔에 도착하자 100여명의 관계자들의 열열한 환영을 받으며 숙소에 도착하였다. 

평양을 몇 번 방문했지만 가장 변화가 큰 것은 2010년 1월 30일 이후 2015년 8월20일 5년간의 평양시내의 변화는 천지개벽 이라고 할 정도로 거리의 건물과 자동차, 건물의 네온싸인 등. 그리고 많은 택시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번 3년 만에 다시 찾은 평양도시는 어느 국제도시답게 건물의 하나하나 디자인 등 계획된 도시가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의 모습과 생활상은 서울과 많은 차이가 있지만 자본주의사회와 사회주의사회 차이가 이렇게 많은 격차가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같은 동포, 같은 민족이 이렇게 또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 마음속 한 가운데 깊이 세겨져 목이 메였다. 

김일성경기장에서 강원도 주문진 중학교 팀과 평양 4.25팀의 경기는3:1로 졌지만 승패를 떠나 우정의 축구경기였습니다 많은 시민과 학생들은 기립박수로 갈채를 보내는 것을 보고 피는 물 보다 진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 보았다. 

9박10일간에 평양의 유명한 옥류관에서의 냉면 대동강수족관에서 철갑상어 회와 1,2,3층 큰 단고기집이 인상적이었다 대동강변 유람선의에서 저녁노을을 바라면서 먹은 저녁 만찬이 우리 한강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가졌다. 정말 멋진 참관 기행이었다. 

행사가 끝나고 8월19일조식을하고 8시 30분에 평양 양각도 호텔을 출발하여 개성세관을 통과하여 도라산역에 2시30분에 도착하였다 이렇게 5시간이면 오고 가는 이 길이 왜 열리지 못했을까? 정치인 및 관계자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제까지 우리 남과 북은 어떤 이념에 사로잡혀 대화마저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한반도의 대한민국은 70년 전의 지구상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가 아니다. 군사적 경제적으로 세계10위인 대한민국이 되었다.

주변의 강대국의 눈치만 보지 말고 남과 북이 자주 만나서 교류협력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은 잘 해결될 것이다. 70년 전, 힘이 없어서 미국의 힘을 빌어서 휴전을 하였지만 이제 종전 선언은 남과 북이 직접해야한다고 생각된다. 분단의 벽을 넘어서 너도 가고 나도 가면 곧 이것이 통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남북이 스포츠 대결을 펼쳤던 김일성축구경기장<사진=남북체육교류협회>

 

 

이민영 기자 mylee06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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