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나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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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나는 누구인가?
  • 장세홍 기자
  • 승인 2018.08.2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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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심리상담사 오정래

어느 누구에게나 이문제보다 더 근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슬프게도 그리고 기이하게도 우리는 우리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왜 이곳에 존재하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 알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인간의 모든 문제와 괴로움은 ‘진정한 나’ 즉 진아(眞我)를 모르기 때문에 생긴다고 했다. 육신이 자기라고 한다면 내 맘대로 돼야 한다. 늙지 마라 병들지 마라 해도 내 맘대로 되지 않기에 내 것이 아니다.

하물며 부귀공명을 찾고 아집에 집착하는 전도(顚倒-거꾸러진)된 삶은 말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몇 천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존재, 성자 ‘라마나 마하리쉬’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나의 몸,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 다섯가지 감각기관, 말하고 움직이고 붙잡고 배설하고 생식하는 5가지 운동기관, 호흡 등 다섯가지 프라나(Prana) 또한 5가지 기(氣,) 생각하는 마음, 내면에 잠재돼 있는 무의식이 "내가 아니다" 라고 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니라면 나는 누구입니까? “내가 아니다” 라고 부정하고 나면 그것을 지켜보는 각성(Awareness-의식)만이 남는다. “그것이 바로 나다”라고 했다.

또한, 마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마음이란 진아 안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힘이다. 거미가 몸 밖으로 거미줄을 뽑아냈다가 다시 거둬 들이 듯이 마음도 바깥으로 현상계를 투시했다가 다시 안으로 거둬들인다.

마음은 항상 무엇인가 의존하고 있다. 홀로 존재할 수가 없다. 흔히 영혼이라 부르는 것도 역시 마음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상계가 실제한다는 인식과 진아에 관계는 뱀과 밧줄과의 관계이다.

마치 밤길가던 사람이 길에 떨어진 밧줄을 밟고 뱀이라고 잘못 오인하는 경우 그 뱀이라는 그릇된 인식, 집착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지혜로운 삶을 살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의문을 가지고 끊임없이 탐구해 들어가라. 그 의문에 마치 다른 장작을 다 태우고 스스로 타버리는 불쏘시개처럼 사라질 때 자신의 참나, 진아(眞我), 본성(本性)이 드러난다고 했다.

선한 마음, 악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오직 하나, 욕망과 증오심 둘 다 피해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생각으로 사념하는 세상은 모두가 꿈과 같고 물거품과 같아 믿을 수 없는 세상이라 했다.

일어나는 생각 따라 밖으로 헤매지 말고 그 생각이 어디서 일어났는가 하는 침묵으로 몰입하는 것이 명상이다. 

“명상이란 구하고 쌓는 것이 아니라 버리고 쉬는 것이다” 

또한, 욕망과 집착에서 벗어나 아무런 생각이 없는 무심할 경우에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했다.

기차를 타면 기차가 모든 짐을 운반해준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계속 짐을 머리에 이고서 불편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왜 짐을 기차에 내려놓고 편히 쉬지 못하는가? 아만과 집착을 내려놓고 세상사 부질없는 시시비비에 초연한 삶이 어쩌면 행복의 길로 가는 첩경이 아닐까? 생각한다.

장자는 인생을 소요유(逍遙遊)하라 했다. 인생을 소풍가듯이 갈때도 쉬고 올때도 쉬고 중간에도 쉬고 쉬어라 했다.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안에서 찾으라 했다.

불사선 불사악 (不思善 不思惡). 선도 악도 생각지 말라. 벌, 나비들처럼 분주 떠는 삶속에서도 “이 몸뚱아리 끌고 다니는 한 물건이 이 무엇인고?”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명상은 자신의 내면을 다지는 초석이 되고 행복의 길이라 했다.

장세홍 기자 jsh953@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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