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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밥상.먹을거리.시골길.논·밭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활용 가치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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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밥상.먹을거리.시골길.논·밭 새로운 문화 콘텐츠로 활용 가치 높아"
  • 김정환 기자
  • 승인 2012.01.19 1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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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일 문화교류 위해 일생을 살아온 강성재 한일문화교류센터 회장

▲ [KNS뉴스통신=김정환 기자] 한일문화교류센터 강성재 회장이 KNS뉴스통신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고 있다.
[KNS뉴스통신=김정환 기자] 한국에서 시작한 우리 한류문화는 일본과 중국, 베트남 등을 거쳐 동남아는 물론 미국까지 진출하며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많은 열정과 노력이 들어가며 성취한 우리들만의 선물이다. 하지만 아직도 더 많은 진출을 위한 확장이 필요하다. 이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교류를 위해 일생을 살아온 이가 있다. 바로 강성재 한일문화교류센터 회장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과 일본 양국 문화 교류를 위해 매일 매일 고민하고 연구하며 실천에 옮기는 강회장. 특히 강회장의 사무실 책상에는 일본중심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일본 문화 행적이 여기저기 나와 있었다. 또한 벽 한 쪽에는 지난해 일본 히로시마(廣島)시에서 선정한 ‘다시 만나고 싶은 히로시마의 얼굴 95명’에 한국인 최초로 선정된 강회장의 얼굴도 있었다. <KNS뉴스통신>은 한일 문화교류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강성재 회장을 찾아 그의 살아온 인생과 미래를 들어 보았다. 

▶강회장님이 유독 한일 문화교류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지난 89년 일본으로 유학생활을 떠난 것이 시발점이 되었죠. 일본에 도착했을 때는 생각했던 것보다 무척 힘이 들었어요. 저에게 따뜻한 시선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한국인이라고 무시를 하거나 한국이라는 나라를 잘 모르는 일본인들 투성이었어요. 당시의 한국과 일본의 정치적인 문제, 과거사 문제 등이 뒤엉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만들어 진 것이라고 생각을 했죠. 따라서 저는 한국과 일본의 적대적인 관계를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고자 일본 방송에 출연도 하고 기고도 했죠. 이와 더불어 쉽지는 않았지만, 일본의 공민관을 빌려 한국어 강의를 개설하기도 하고, 한일 문화를 소개시켜 주는 잡지를 창간하기도 했어요. 또한, 히로시마에 ‘한일문화교류센터’를 만들어서 일본과 한국의 사회, 정치, 문화 단체들의 교류를 주선하기도 했어요.

▲ [KNS뉴스통신=김정환 기자] 한일문화교류센터 강성재 회장이 KNS뉴스통신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고 있다.
▶일본에서 한일교류발전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는데, 어려움은 없었습니까?

=물론, 많았죠. 제가 유학 생활을 하던 당시만 해도, 한국에 대한 인식이 많이 없었어요. 한국 자체를 모르는 일본인들도 많았고, 한국어를 모르는 일본인들도 많아서 의사소통을 하는 것도 많이 불편했어요. 서양자료는 다양하고 많이 존재하는데, 한국에 대한 자료나 책자 등은 많이 부족한 것을 느꼈어요. 일본의 국제 교류센터를 방분에 보니,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한국에 관한 책자가 한권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모든 한국에 대한 자료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받아주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우선 한일 교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제가 히로시마 인근의 새로 만드는 도서관이 있다는 정보를 듣고, 책을 2500권 정도 기증을 했어요. 이것이 시발점이 돼,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일본의 공민관을 빌려서 한국어 강좌를 개설했었는데, 사람들이 창피하다고 한국어 공부를 하러 오지 않았어요. 무척 속상했죠. 일본 언론 방송에도 나가고, 책자에 한일 문화교류에 대한 저의 생각도 많이 기고했는데, 협박편지를 그렇게 많이 받았어요. “일본까지 와서 왜 그러느냐, 너희들 나라로 돌아가라, 우리 일본이 못한 것이 무엇이냐” 등 이런 내용들이 주를 이뤘죠. 또한 한일문화교류센터를 만들 때도 어려움이 많았어요. 처음에 일본 시내에 사무실을 얻어서 한일문화센터 간판을 거니까, 집주인이 나가라는 거에요. 사무실이 있던 지역 자체가 보수적이고 폐쇄적이라서 한일문화센터라는 간판을 걸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지요. 그래서 고민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국제교류센터로 이름을 바꾸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하지만 국제교류센터로 이름을 다니까 생각만큼 일이 진행되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사무실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정식으로 ‘한일문화교류센터’ 설립을 했어요. 일본 한사람 한사람에게 다가가 알리고 이해시키며, 같이 일하면서 점점 정착을 할 수 있었죠.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한일문화교류 발전에도 어려움이 많으셨는데,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도움을 주었던 멘토분이 계신가요?

=네. 제 일본인 아내인 다케노부 사와코가 제 멘토에요. 제 아내는 제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만났는데, 비교적 축복받지 못하는 환경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어요. 아내 쪽의 부모님들은 결혼식에 참석을 하지 않았죠. 아내는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난 외동딸인데, 저는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이니, 반대가 심했어요. 제 아내를 만난 것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이자, 저에게 가장 큰 축복이에요. 저는 제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한일 양국의 문제를 정치적인 관점에서 아닌, 문화적인 관점에서 풀고 싶었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일문화교류에 큰 힘을 쏟았어요. 그래서 제가 문화 사업에 더욱 더 애착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기 시작했어요. 한국과 일본의 좋지 않은 생각과 인식들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의 문화사업의 바탕에는 아내의 내조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아내가 없었더라면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들이었죠.

▲ [KNS뉴스통신=김정환 기자] 한일문화교류센터 강성재 회장이 KNS뉴스통신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고 있다.
▶요즘 한류 침체에 대한 강회장님의 생각은 무엇인가요?

=한마디로 이야기하면, ‘스타 의존성과 정부의 무관심’ 이에요. 한국 드라마가 일본으로 수출되기 시작하면서 한류 열풍이 일어나기 시작했죠. 그러나 참여정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류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적인 인력 양성의 부재, 문화 기술의 독자적인 개발 부족 등이 전무하기 때문에 한류 열풍은 금새 시들어 버렸죠. 또한, 스타에 의존적인 이벤트성 행사나 스타들의 너무 비싼 게런티도 한류 발전에 걸림돌이 될 수 있죠.

▶그렇다면, 한류 열풍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선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요?

=한국의 논과 밭, 그리고 시골 밥상 등 한국 자체의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러한 한국의 토속적인 문화를 한류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는 40-50대의 ‘아줌마부대’에게 어필하는 것이 좋죠. 그들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기 때문에 한국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여건이 되죠. 관광객의 70-80%가 입소문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아줌마 부대를 집중적인 타겟으로 삼는 것은 한류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가 있죠. 또한, 일본이나 중국등지로 연수생을 파견시키는 등의 새로운 홍보방법을 모색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본이나 중국 등의 아시아로 연수생들에게 인증서를 발급해주거나 홍보대사로 위촉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된다면, 연수생들에게 직업적 자부심도 줄 수 있고,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더 잘하게 되는 원동력으로도 작용될 수 있어요.

▶한편, 지난번 일어난 일본의 대지진은 강회장님이 진행하시고 있는 일에 타격이 컸을 것 같은데요?

=네. 저 뿐만이 아니라, 한국과 일본 문화 교류 관련 이벤트들을 담당하는 크고 작은 회사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일본 내의 한류관련 이벤트 80%가 취소가 됐고, 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던 상황이었죠. 물론 저희 회사도 한일 교류관련 이벤트들이 모두 취소됐습니다. 현지 분위기도 많이 좋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죠. 그러나 한일관계까지 악영향을 끼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의 한류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대지진은 한국 구호팀의 도움과 한국 여론의 격려가 한국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보는 데 큰 도움을 주었어요.

▲ [KNS뉴스통신=김정환 기자] 한일문화교류센터 강성재 회장이 KNS뉴스통신 인터뷰에 답변을 해주고 있다.
▶한일문화교류를 위해서라면 한국 지방자치단체 문화 의식이 필요한 것 같은 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들의 협조와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이런점에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어느 지방에 가봐도 축제·행사들이 많은데 상당히 많은 예산을 투자하더군요. 문제는 행사 자체가 아니라 ‘동네잔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겁니다. 일본 지자체들의 경우 하나하나가 너무 깔끔하고 재미있어요. 특히 국내용 행사가 아니라 한·중 관광객 등 타지역 사람들이 축제에 올 수 있게끔 하는 상품 개발이 잘 되어 있습니다. 이에 서울과 부산은 이미 포화상태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일본 관광객이 찾아올 수 있는 행사들은 지역에도 많습니다. 각 지역의 지자체 공무원들을 해외에 파견해 벤치마킹을 하고 준비를 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어, 해당 지역에서 일본 48개현에 각각 한 명씩만 홍보요원을 두는 겁니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각 지역 정보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거든요. 문화 콘텐츠라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닙니다. 한국의 밥상이나 먹을거리, 시골길, 논·밭도 새로운 콘텐츠가 될 수 있어요. 문화사업을 하면서 홍보를 위해 꼭 신문에 광고를 내야 할 필요가 있나요? 인적교류 형태로 해서 정보를 주고받고 하다보면 자동으로 홍보가 되는 겁니다.

▶ 최근에 영화사를 설립했다고 들었습니다.

=‘토모월드’라고, 한 달 반 정도 됐습니다. 재일교포라든지 한국과 일본에 계신 훌륭한 분들의 삶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영화를 통해 문화사업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영화를 통해 한일관계를 풀어보고 싶은 욕심도 있습니다. 더욱이 청소년들이 배울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한일 청소년들이 우리들의 미래이니까요.

▶강회장님의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지 말씀해 주십시오. 

=조금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올해 3월부터 영화와 드라마 사업을 할 계획이에요. 특히 청소년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가 어려운 유학생활을 하고, 한일문화교류에 관한 일을 하다 보니까 청소년 관련 문화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제가 만든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한국과 일본 양국의 청소년들에게 꿈과 용기를 주고 싶어요. 일본 저작권을 가지고 있는 회사와 함께 만들 생각이에요. 다큐멘터리는 올해 9월 안에는 완성할 계획이에요. 이번에 새로운 문화재단을 만들어서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해요. 더욱이 한국 자체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앞에서도 잠깐 얘기 했지만, 시골 밥상, 한국의 논과 밭 등은 문화컨텐츠로 발전할 엄청난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전통의 시골 모습은 바로 우리 한국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죠. 이러한 한국적인 콘텐츠를 바탕으로 인도, 중국 등과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새로운 네트워크 시스템을 만들고 싶어요. 제가 그동안 한일 문화 교류 사업에서 일을 생긴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 사업을 전파하고, 그 피드백을 인도, 중국 등에서 받아서 보완하고 발전시키는게 계획입니다.

<프로필>
한일문화교류센터 회장
한일친구회 회장
왕인문화 해외홍보대사
광주비엔날레 해외홍보대사
한일문화대학대표
한.중.일ABC포럼회장
(주)한일문화경제신문발행인
(주)한일인터넷방송스타토모
도서출판한얼사
(주)토모월드
(주)리엔셀JAPAN
(주)친구야
 
<주요저서>
한류기사(2011)
젊은 한국을 위한 긴급제언(2004)
나는 착한 일본여자가 좋다(2001)
일본문화와 함께 배우는 일본어 회화(2000)
나의 아내는 일본인(일본어판 1997)
일본 일본인 일본님(1996)
일본이 있는지 없는지 가봐야 안다(1994)
 
<번역서>
천년의 붉은 비(2003)
안녕 강코쿠, 오하여 일본(2003)
평생고객을 만드는 101가지 방법(2004)
꿈을 가져라, 지혜를 가져라, 활력을 가져라(2008)
알고싶은 한국, 알려주고싶은 일본(2009)
 

김정환 기자 knews2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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