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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탐방] 성북4구역, 시간이 멈춘 마을…화려한 도시의 그늘 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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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탐방] 성북4구역, 시간이 멈춘 마을…화려한 도시의 그늘 밑
  • 백영대 기자
  • 승인 2018.06.16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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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버린 비둘기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성북4구역 사람들"

성북동 산에 번지가 새로 생기면서

본래 살던 성북동 비둘기만이 번지가 없어졌다.

새벽부터 돌 깨는 산울림에 떨다가

가슴에 금이 갔다.

그래도 성북동 비둘기는

하느님의 광장 같은 새파란 아침 하늘에

성북동 주민에게 축복의 메시지나 전하듯

성북동 하늘을 한 바퀴 휘 돈다.

[KNS뉴스통신=백영대 기자]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를 떠올리며 만해 한용운이 말년에 기거하던 심우장에서 길상사로 넘어가는 성북동 골목길을 걸었다. 

길모퉁이를 돌면, 2018년의 서울이라고 믿을 수 없는 낡고 누추한 동네가 흑백 화면처럼 앞을 막아선다. 60~70년대로 시간이 멈춰선 이곳은 성북동 29-51번지 일원, 일명 성북4구역이다.

이제, 그 길에 비둘기는 보이지 않는다.

성북4구역은 2004년에 주택재개발 정비예정구역으로 지정됐지만, 오랜 기간 재개발로 인한 난항을 겪었다. 결국 2015년 정비예정구역에서 해제됐다.

그러는 사이 낡은 주택은 무너져 내리고, 빈 집들이 늘어나 가뜩이나 기반시설이 열악한 성북4구역은 버려진 마을이 돼갔다.

여기에 더해 재개발 매몰 비용을 놓고 대기업 시공사와 주민 갈등이 불거졌다. 젊은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떠나 편리한 아파트로 이사를 갔지만, 노령인 주민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성북4구역은 서울에서 유일하게 세 가지가 없는 ‘3무(三無)’마을이다. 이곳에는 도시가스, 하수도, 수세식화장실이 없다.

그런데 이 지역엔 다른 곳에 없는 세 가지가 있다. 비오톱(Biotop), 공동화장실, 1종 전용주거지역 및 자연경관지구가 그것이다.

비오톱이란 특정한 식물과 동물이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뤄 지표상에서 다른 곳과 명확히 구분되는 생물서식지로 개발이 제한된 지역을 말한다.

성북4구역은 일제 강점기 풍치지구로 지정됐지만, 지금 이곳에는 숲은커녕 나무도 몇 그루 없다.

 이곳은 아직도 자연경관 지구다. 이로 인해 토지에 대한 건폐율은 30~40%, 용적률은 90% 이하, 최대 3층 12m 이하로 규제받는다. 서울시의 무관심과 안이함이 주민들의 재산권을 침해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60~70년대 난개발 된 성북4구역은 소방도로가 없어 화재가 발생해도 소방차가 들어 갈수 없다. 단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어가면 비좁은 골목길만 있을 뿐이다.

지난 겨울 마을에서 환자가 발생했으나 골목길이 가파르고 좁아 환자를 후송 할 구급차가 마을로 들어 올 수 없었다. 소방관 2명으로는 응급 환자를 안전하게 옮길 수 없어 증원을 요청한 일은 지금도 지역 주민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사건이다.

이렇게 열악한 도로환경에 더해 성북4구역은 공공하수도도 설치되지 않았다. 하수도가 넘쳐 관공서에 민원을 접수하면, “그 지역은 공공하수도가 설치되지 않은 지역이다”는 답변만 들려온다.

집수리는커녕 정화조 설치도 할 수 없다보니 개인하수도로 배출되는 분뇨로  악취와 벌레들이 들끓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서울 성북동은 예로부터 재력가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유명한 동네다. 70∼80년대 TV연속극에 등장하는 최상위층 사모님의 단골 전화멘트가 "네, 성북동입니다"였다.

더불어 성북동은 독일, 일본, 핀란드 등 37개국의 대사관저가 밀집해 있는 국제적인 외교지구이다.

성북4구역은 이렇게 부자들의 저택과 대사관저들 가운데 마치 고립된 섬마을처럼 버려져 있다.

그런데 성북4구역 근처에는 간송 미술관, 성북구립 미술관, 심우장 등이 있다.

2014년 서울시는 성북 역사 문화지구를 방문하는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보행공간 확보 △쉼터 조성 △유적지, 미술관 안내표지판을 설치하는 보행환경개선사업을 실시했다.

만해 한용운의 유택인 심우장, 삼청각 등 역사적 장소와 문화공간 등을 잇는 보행자 중심의 탐방로로 조성하고, 삼청각과 길상사까지 이어지는 보행로 개선을 단계적으로 추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찾는 심우장에서 길상사를 잇는 성북4구역 골목길은 넘치는 오수, 방치된 분뇨의 악취, 무너져가는 담장으로 관광객들에게 혐오감을 넘어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성북구는 6월 22일부터 23일까지 성북동 문화재 ‘성북야행- 빛과 소리의 길’ 행사를 개최한다. 성북동 문화재를 야간개방하고 성북동 문화재 해설 탐방 등 다채로운 행사로 2017년에 이어 두 번 째 축제다.

하지만 이런 역사, 문화 공간의 축제에서도 성북4구역 주민들은 소외됐다.

그들은 화려하고 부유한 도시의 그늘에 묻혀 서울시민으로서의 복지와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성북4구역 주민들은 지난해 ‘해제지역 맞춤형 희망지’ 사업에서도 탈락하고 이제 마지막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던 ‘도시재생뉴딜’ 사업 선정만을 기대하고 있다.

주민들은 ‘우리 동네 살리기’사업을 통해 안전하고 깨끗한 마을로 다시 태어나 젊은이들이 비둘기와 함께 돌아오길 기원하고 있다.

시인 백석과 길상화 김영한의 애틋한 사랑이 각인된 길상사를 거쳐 조선의 왕비가 누에신(蠶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선잠단지를 지나 도심으로 내려왔다. 멈췄던 2018년 서울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 했다.

기자가 성북4구역을 탐방한 2018년 6월 13일은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일이다. 오후 6시,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55.9% 압도적 득표라는 지상파 방송 3사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그의 선거 구호를 읊조려 본다. “시대와 나란히 시민과 나란히”...

 

백영대 기자 kanon3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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