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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행자, 시인…변모의 낙차로 탄생한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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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여행자, 시인…변모의 낙차로 탄생한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출간
  • 김종현 기자
  • 승인 2018.05.04 14: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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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의 슬픔을 통역하고 우는 사람의 등을 안으며 쓴 초월과 포옹의 시

[KNS 뉴스통신=김종현 기자] 앵커, 여행자, 시인으로 시시각각 변모하며 바라본 이국의 이미지를 시로 담으면 어떠할까. 시인 이상협의 첫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이 민음의 시 247번으로 출간되었다. 이상협 시인은 2012년 ‘현대문학’ 신인 추천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상협 시인은 현직 아나운서이다. 이 시집에서는 미처 전달하지 못한 뉴스로 인해 생기는 현실과의 괴리감을 섬세한 시어로 빚어냈다. 또 세계 각 국을 취재하고 촬영하며 국경을 넘을 때에는 앵커에서 여행자로 시각이 바뀌는데, 그 변화의 낙차에서 독특한 감성을 담은 시가 탄생했다.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 곳곳에는 시적 화자가 ‘내가 진행하는 방송의 멘트(시 제목 ‘저절로 하루’ 중)’를 떠올리는 직업적 일화가 드러난다. 언어가 억압되던 시대에 사건을 전달해야 하는 앵커로서 시인은 수동적이고 무력하다. 시인은 정치적 상황에서 진실의 언어를 말할 수 없는 괴로운 마음을 ‘자기 언어를 증오했지만 나는 무사했다(시 제목 ‘기록’ 중)’라고 고백한다. 이 고백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시대의 피해자라고 한정 짓지 않으며 무사함에 대한 죄스러움을 끌어안는다.

‘마지막 뉴스가 끝나(시 제목 ‘앵커’ 중)’고 앵커로서 내뱉은 말이 허공에 흩어지면 시인은 그 자리에서 뉴스가 되지 못했던 부끄러움과 분노에 대해 다시 쓴다. 이때 시인이 스스로에게 느끼는 경멸과 우울은 개인적 기분에서 시대적 공분으로 확장된다. 시집 전체에 짙게 드리운 비애감은 ‘광장이 사라진(시 제목 ‘민무늬 시간’ 중)’ 한 시대의 표정이기도 하다. 앵커의 언어와 시인의 언어는 그렇게 같은 곳에서 다르게 쓰인다.

시집 ‘사람은 모두 울고 난 얼굴’에는 무수한 지명이 등장한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부터 일본 오키나와, 핀란드 헬싱키, 미얀마까지. 시인의 감각은 다른 나라에서도 힘을 잃지 않는다. 시인이 느끼는 시대의 우울은 한국어라는 언어를 쓰는 나라에 한정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리포터 생활로 장기여행자가 된 시인은 어느새 어떤 국적의 사람들과 마주쳐도 어색하지 않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서울을, 용산에서 시리아 알레포를 생각하며 지구상에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폭력과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한다. 여행지에서 시인의 눈이 머무르는 장면은 ‘우는 사람이 우는 사람을 달래(시 제목 ‘오하이오 오키나와’ 중)’는 순간이다. 다른 곳에 있지만 같은 것을 느끼고 같은 것을 말하므로 시인이 만난 모든 타인은 곧 ‘나’와 같다. 이 시집에서 그가 포착한 여행의 이미지들은 ‘슬픔이 만국의 공용어’라고 말하는 듯하다.

김종현 기자 jhkim296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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