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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숨어 있다 쏟아져 나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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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숨어 있다 쏟아져 나오는지"
  • 김학 에세이스트
  • 승인 2011.12.29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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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 칼럼> '全州' 얼굴없는 천사의 도시가 되다

"12월이면 이웃을 도우려는 천사들이 많아 세상은 훈훈하고 살맛이 난다. 추위조차 봄눈 녹듯 녹아버린다."

12월은 천사들이 활개를 치는 달이다. 해마다 12월은 이름 없는 천사들이 나타나 어려운 이웃에게 온정의 손길을 내밀곤 한다. 늘 12월만 같으면 살맛나는 세상일 것 같다.

거리에서는 구세군의 자선냄비가 인정을 낚는다. 오가는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그 자선냄비에 성금을 넣는 순간, 그 사람들도 천사가 된다. 뒤를 이어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마다 줄줄이 천사가 된다.

또 어떤 이들은 신문사나 방송국으로 달려가 이웃돕기 성금을 내밀기도 한다. 그뿐이 아니다. 12월이면 홀로 사는 달동네 노인들이 따뜻하게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연탄을 날라주는 검은 연탄 천사들도 많다.

천사들이 평소엔 어디에 숨어 있다가 그렇게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지 모를 일이다. 12월이면 이웃을 도우려는 천사들이 많아 세상은 훈훈하고 살맛이 난다. 추위조차 봄눈 녹듯 녹아버린다.

올해도 전주 노송동주민센터에는 어김없이 얼굴 없는 천사가 다녀갔다. 벌써 12년째 선행이다. 그런 천사가 있기에 천년고도 전주는 아름답고, 인정이 넘치는 살기 좋은 도시란 명예를 얻는다. 그런 아름다운 미담이 전주의 세밑 추위를 녹여주고, 우리네 마음마저 따뜻하게 데워준다.

그 얼굴 없는 천사는 해마다 이맘때면 전주시 노송동주민자치센터에 성금보따리를 놓고 간다. 이번에는 12월 20일 낮 12시 5분쯤 노송동주민자치센터 화단 옆 차량 밑에 성금상자를 놓고 갔다고 한다. 현금과 돼지저금통을 계산해 보니 무려 5천2십4만2천백 원이나 되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십시오.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성금 상자 속에는 이런 메모지가 들어 있었단다. 그 얼굴 없는 천사가 12년 동안 놓고 간 성금을 모두 합치면 2억4천7백4십4만6천백2십 원이나 된다고 한다. 큰돈이 아닐 수 없다. 전주에는 남노송동과 중노송동 그리고 서노송동 등 세 개의 노송동이 있었다.

그 세 개의 노송동이 하나로 합쳐져 지금은 노송동주민자치센터가 되었다. 그런데도 그 얼굴 없는 천사는 길도 어긋나지 않고 노송동주민자치센터를 잘 찾는다. 이제 전주의 얼굴 없는 천사는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져서 전주의 상징이 되었다.

얼굴 없는 천사가 사는 도시, 전주! 전주 시민들은 그 얼굴 없는 천사를 기리고자 그 미담을 연극으로 만들어 공연하기도 하고, 노송동주민자치센터 화단에는 전주시민의 이름으로 '얼굴 없는 천사의 비(碑)'를 세우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노송동에서는 올해부터 '천년전주 천사마을 천년사랑 축제'를 열어, 그 얼굴 없는 천사의 고귀한 선행과 나눔의 정신을 모든 시민의 마음에 심어주고 있다. 65만 전주시민이 모두 천사로 변할 날도 그리 머지않은 것 같다.

얼굴 없는 천사! 참으로 자랑스럽고 고귀한 미담의 주인공이다. 되로 주고 말로 준 듯 자랑하려 하고, 남이 한 선행까지 자기의 선행으로 바꿔치기 하려는 세상에 이런 얼굴 없는 천사가 있다니, 어찌 전주의 자랑이 아닐 수 있으랴?

사실 말은 쉬워도 행동으로 선행을 보여주기는 어려운 일이다. 남을 도와주는 기부행위란 그만큼 실천이 어려운 법이다. 거리에서 도움을 청하는 장애인이나, 성금을 기다리는 구세군의 자선냄비에 선뜻 지갑을 열고 지폐 몇 장을 꺼내 주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다. 기부도 자주 경험해 보아야 스스로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얼굴 없는 천사가 사는 도시, 전주에 사는 걸 영광과 자랑으로 생각한다. 해마다 그 천사의 이야기가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소개될 때마다 나는 나 자신의 마음 밭에 반성문을 쓰곤 한다. 언젠가는 나도 그 천사를 본받아 어려운 나의 이웃에게 따사로운 손길을 내밀어야지 하며 나 자신을 다스린다. 얼굴 없는 전주의 천사는 나의 멘토다. 아니 나뿐만이 아니라 65만 전주시민의 멘토일 것이다.
 

 

김학 에세이스트 jlist@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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