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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평화비 소녀' 역사의 아픔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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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취재] 위안부 할머니들의 외침...'평화비 소녀' 역사의 아픔 상징
  • 조해진 기자
  • 승인 2011.12.25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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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S뉴스통신=조해진 기자] 지난 14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정신대 할머니들의 1000번째 외침이 울려 퍼졌다. 1000번째의 외침이 사람들의 귀와 마음을 울렸는지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1001번째의 수요시위가 지난 다음날. 수요시위의 모임장소이자 평화비가 세워진 일본대사관 앞을 찾았다.

수요일만 되면 붐비는 일본 대사관 앞은 몇몇의 의경들이 지키고 있었고 가끔 나타나는 사람들은 무심히 평화비를 지나갔다.

차가운 날씨 속에서 1000번째 수요집회를 기념해 처음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 ‘평화비’ 소녀는 일본대사관을 응시하고 있었다.

평화비 소녀의 어깨에는 작은 새 한 마리가 일본의 사과와 반성을 기다리다 먼저 세상을 떠난 정신대 할머니들을 대신해 가지런히 앉아있다. 뒤에는 슬픔과 괴로움을 안고 먼저 세상을 떠난 할머니들의 영혼을 뜻하는 나비를 품에 머금고 오랜세월 잊혀지지 않는 고통스러운 역사의 무게를 증명하듯 허리가 휜 성인여성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한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지나가다 평화비 앞에 서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재순(61)씨는 “평화비에 새겨진 한 맺힌 나비를 보고 있자니 너무도 안타깝다. 잘못된 것은 진심을 다해 교정하고 좋은 일은 서로 같이 좋게 풀어나가면 될 텐데... 피해자들이 살아 있을 때 제대로 된 사과가 있기를 바란다”며 안쓰러운 심정을 전했다.

함께 있던 박원용(62)씨는 평화비의 사진을 찍고 소녀를 토닥이면서 “역사적인 기념이 되는 유적지들을 자전거로 여행 중이다. 평화비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가슴아픈 역사이며 잊어선 안된다고 생각해 찾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일본이 평화비 철거를 요구하고 있는데 이 것은 말이 안되는 소리다. 우리땅에 우리가 세운 것인데 (철거요구에) 대응할 필요가 있나”라며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쓴소리를 남겼다.

평화비에 멈춰서 토닥이며 안타까움을 표현한 자전거 회원들과 달리 평화비를 그저 스쳐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앞을 지나는 젊은 사람들의 생각을 물었다.

바쁜 발걸음을 잠시 멈춘 최형윤(37)씨는 “평화비를 없앨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라고 전제했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안 좋은 이야기여도 일본은 다 옛날 이야기로 잊지 않았나. 시대가 흘렀으니 특별히 나쁘게 지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을 말했다.

평화비 근처에 위치한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35세의 여성은 “처음에 평화비가 세워졌을 때는 평화비인 줄 몰랐다. 뉴스에서 보고 알았다”며 “아무래도 정신대 할머니들의 문제가 사회적으로 부각이 많이 안 되고 그동안 관심을 많이 못 받은 것 같다”고 의견을 말했다. 그는 “일본이 철거를 요구하는 등의 과민반응은 필요없는 대응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시위할 때 라디오를 크게 트는 것과 같은 행동은 자제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정신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를 돕고 있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았다. 한국인이지만 일본에서 살다 정신대 문제를 접하고 자원봉사를 하다 협회의 직원으로 일하고 있는 양노자 팀장은 “협회가 20년 동안 홍보하고 계속 시위해왔는데 사람들도 사회도 관심이 많지 않았다”며 “단체가 활동을 못했다는 것보다 다른 곳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3년 전 위안부 문제에 관심이 있는 민주당이 여당으로 집권하게 되면서 기대를 했지만 오히려 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이다”라며 “한국 정부가 정신대 문제에 대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편이다. 이번에 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협상하자는 요청을 했는데 이런 자세를 구체적으로 정립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생존해 계신 할머님들이 앞에 나서서 운동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신다. 고령이시기도 하고. 그러나 스스로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으니까 호소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심지어 같은 시기를 보냈던 독립운동 피해자들도 정신대 할머니들을 부끄러워해 박물관 건설을 거절한 적이 있다며 “제 2의 피해를 받기도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할머니들이 매체들을 만나 이야기를 할 때면 아픈 기억을 다시 꺼내야만 하기 때문에 힘들어 한다며 “관심이 집중 될 때도 그 때뿐인 것이 아쉽다”고 전했다.

그는 1000번째 수요시위에 맞춰 ‘평화비’가 세워지게 된 계기가 한 자원봉사자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900회 수요시위에서 자원봉사자인 김판수씨가 우리의 외침의 무언가를 남겨야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후 평화비 제작이 추진됐으며 지원금을 통해 제작이 됐다”고 밝혔다.

끝으로 그는 “지금은 한국 사회 전체가 관심을 가지게 됐으니 방도가 생겼으면 좋겠다”며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끊이지 않기를 당부했다.
 

조해진 기자 sportjhj@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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