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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대표 문화담론] 우리사회 호칭 논란…‘존경어’ 쓰는 문화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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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권 대표 문화담론] 우리사회 호칭 논란…‘존경어’ 쓰는 문화 만들자
  • 이인권 논설위원단장
  • 승인 2017.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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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화체계 혁파를 위해 수평적인 국민 언어관습 정착이 필요’
이인권 논설위원단장

최근 열린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개최 정당정책토론회에서 한 정당의 대표가 대통령에 대해 기본적인 직함을 배제한 체 반복해서 이름으로만 불렀다. 그러자 여당의 한 중진 국회의원은 반격으로 해당 대표에 대해 국회의원이라는 직함을 빼고 이름만 불러 논란이 뜨겁다.

그런가 하면 역시 최근 북한 귀순병사의 치료를 담당했던 한 의사 교수는 청와대에 초청된 자리에서 대통령에게 ‘각하’라고 존칭해 온라인 실시간 검색어에 올랐다. 과거와 달리 사회문화체계가 바뀌면서 대통령에 대한 존칭을 일반화된 ‘님’으로 붙이는 추세에서 이 역시 관심을 끈 것이다.

국가의 수반인 대통령에 대해 각하라는 존칭에서부터 대척점에 있다 할 수 있게 대통령 이름에 ‘-씨’라는 일반 존칭만 붙인 것은 우리문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통상 상대를 높이기 위해 이름 뒤에 씨를 붙여오다 근래에는 보다 순화됐다고 여겨 ‘-님’을, 그리고 극존칭으로 ‘-선생님’으로 지칭하고 있는 경향이다. 

하지만 사회나 조직에서 직함을 갖고 있거나 전문가들에게 씨를 쓰게 되면 그것은 오히려 폄하의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한편 편지를 쓸 때 상대방의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은 무려 열다섯 가지나 된다.

어느 신문사는 대통령 부인 이름 뒤에 붙이는 존칭을 지금까지 일관되게 ‘씨’로 써오다 ‘여사’로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그 이유를 “독자들의 요구와 질책, 시대의 흐름에 따른 대중의 언어 습관 변화 등을 반영”해서라고 했다. 이전까지는 '영부인'으로 지칭했었다.

그런가하면 어느 지방자치단체 의회 의원들의 반말을 참다못한 공무원 노조가 ‘반말 그만 하세요’라고 적힌 현수막을 시청 건물에 걸었다고 한다. 그래도 을의 입장에 있는 터라 맞장구로 ‘반말 그만 해라’라 하지 않고 정중한 언어로 표현했다.

이렇게 호칭만을 두고보더라도 우리사회 문화구조가 수직적이고, 계층적이고, 권위적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언어 자체가 권위주의를 담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우리사회가 인간의 평등성과 존중성을 기본으로 하는 선진가치를 구현하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성별, 연령, 지위와 관련 없이 각자 고유의 이름만 불러 사회적 관계를 맺는 수평적 언어의 서양사회와는 대조적이다.

문화는 언어를 담아내고 언어는 그 사회의 문화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언어는 문화의 거울’이라는 말도 있다. 복잡한 계급적 호칭이나, 또 위계성이 강한 존칭어는 바로 서열적 구도의 우리 문화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류가 쓰는 언어는 7,000여개가 된다고 한다. 그중에서 약 8,000만명이 사용하고 있는 한국어의 이러한 호칭과 경칭으로 인해 수직적 문화를 배태하게 되었다. 한국어가 지니고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우리말에 많은 영향을 준 중국어나 일본어와 달리 까다로운 존댓말 표현들이다. 이는 충효사상과 절차를 중요하게 여긴 조선시대의 관료주의적 문화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 때문에 세계의 언어들 중에서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가장 어려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무부 산하 외교관 언어 연수 전문기관인 ‘외교연구원'(FSI / Foreign Service Institute)은 세계 주요 70개 언어 중에서 영어 원어민 외교관이 외국어를 배울 때 한국어가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규정했다. 

이 기관이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를 ’세계언어‘(world languages)로 분류했는데 거기에는 덴마크어, 이탈리아어, 루마니아어, 네덜란드어, 노르웨이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 스웨덴어가 들어있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어는 세계어가 되는 데는 구조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국어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말을 할 때 주어가 생략되고 소속을 지칭할 때 ‘나의-’보다 ‘우리-’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이것은 집단의 소속감과 친밀성을 중시하는 사회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런 언어형태는 부정적으로 우리사회의 집단주의와 폐쇄성과 패거리풍토와 무관치 않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우리나라 모든 분야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패거리 풍토는 끼리끼리 뭉치고 봐주는 문화가 되었으며 소통과 개방, 협력과 경쟁에서 투명성, 공정성, 합리성이 결여된 사회가 되게 만들었다. 최근 불거진 공공기관의 채용비리는 바로 이를 반증하고 있다.

이와 같이 수직적인 대한민국의 사회문화체계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적으로 수평적인 언어관습을 정착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곧 호칭이나 의사소통에서 상호 존중의 언어를 구사하는 범 국민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러면 언어의 의식화를 통해 문화 패러다임을 혁신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민간기업에서 이미 시행되고 있다. 직급 호칭을 격파하고 단순화시켜 조직 구성원들의 의식과 생활과 태도를 바꾸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직급이 아닌 이름에 ‘님’을 붙이거나 영어이름 또는 닉네임 등 수평적인 호칭을 사용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해서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의견을 표현하고 창의적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수평적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고 있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 코리아에는 미국 본사에 없는 서로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를 명문화한 호칭규정이 있다. 이 규칙은 누군가를 부를 때는 ‘이름+님’으로 해야 하며, 직급이나 나이나 입사 경력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호칭을 바꾸었다 해서 단숨에 수평적 문화가 형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의식구조가 수직적인 문화관습 속에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언어생활이 이루어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화가 바뀌어갈 수 있다. 곧 평등한 어법을 통해 언어문화적 개량주의(Reformism)가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이다.

진정 대한민국이 글로벌사회의 일원으로서 수평적인 선진사회의 틀을 갖추려면 언어의 탈권위화가 무엇보다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 이인권 논설위원단장은…

우리사회에 문화적 소통력을 강조하는 문화커뮤니케이터이며 예술경영가이다. 중앙일보, 국민일보, 문화일보 문화사업부장과 경기문화재단 수석전문위원과 문예진흥실장을 거쳐 2003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대표(CEO)를 역임하였다. 또한 ASEM ‘아시아-유럽 젊은 지도자회의(AEYLS)' 한국대표단, 아시아문화예술진흥연맹(FACP) 국제이사 부회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부회장, 한국공연예술경영인협회 부회장, 국립중앙극장 운영심의위원, 예원예술대 객원교수를 역임하였다.

<예술경영 리더십> <예술의 공연매니지먼트> <문화예술 리더를 꿈꿔라> <경쟁의 지혜> <긍정으로 성공하라> 등 13권을 저술했으며 한국공연예술경영대상, 창조경영인대상, 대한민국베스트퍼스널브랜드 인증, 대한민국인성교육대상, 2017 자랑스런 한국인 인물대상, 문화부장관상(5회)을 수상했으며 칼럼니스트, 긍정성공학 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인권 논설위원단장 success-ce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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