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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품 공연은 다르다, 안톤 체홉의 <갈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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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명품 공연은 다르다, 안톤 체홉의 <갈매기>
  • 서영석 기자
  • 승인 2011.04.25 18:0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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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예술극장 세계고전연극탐험 II <갈매기>

 
명동예술극장은 4/14(목)~5/8(일)까지 세계고전연극탐험 시리즈 두 번째 작품으로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공연하고 있다. <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세자매>와 더불어 체홉의 4대 희곡인 <갈매기>는 그 내용이 문학과 연극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어 프로무대 뿐 만 아니라 연극 전공생들의 실습작품으로도 자주 상연된다. <갈매기>는 표면적으로 강렬히 표출되지는 않지만 인간 내면에 자리 잡은 욕망과 좌절, 한계 등을 섬세하게 묘사함으로써 그 탁월함을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극중 인물 중 젊은 작가 지망생 뜨레쁠레프와 그의 어머니인 여배우 아르까지나, 어머니의 정부인 유명한 통속 작가 뜨리고린, 뜨레쁠레프의 연인이자 배우인 니나 사이에서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은 이루지 못하는 사랑과 성취하기 힘든 예술의 한계 등을 드러내며 인생과 예술의 이야기를 다룬다. < 갈매기>의 모든 등장 인물들은 욕구와 좌절 사이에서 방황하는데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반복되는 매일의 일상들은 어느새 벗어나기 힘든 현실이 되고, 이 반복되는 현실은 개인의 희망과 부조화를 이루며 인생에 좌절을 안긴다. 이번 명동예술극장 <갈매기>는 지촌(芝村) 이진순 선생 헌정공연으로 생전에 이진순 선생과 함께 작업했던 배우들, 그와 각별한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 함께 하는 무대로 꾸며진다.
<갈매기>는 체홉이 이전의 작품과는 다르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부여한 애정어린 희곡으로 연극 안팎의 삶을 과장 없이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공연되고 있다.

안톤 체홉 <갈매기>
1896년 장막 희극 <갈매기>가 알렉산드린스끼 극장에서 초연되지만, 이 공연은 실패로 끝나며 극이 진행되는 도중 체홉은 극장을 나가버린다. 하지만 후에 명 연출가 스타니슬라브스키의 손에 의해 다시 태어난 연극 <갈매기>는 세계 연극사에 있어 길이 남을 명작으로 탄생한다. 20 세기 초 해외 문학이 유입될때부터 한국에 널리 알려진 작가 안톤 체홉은 1916년 국내 최초로 그의 단편 「앨범」(순성 역, 학지광)이 번역되어 소개된 이후로 한국 문학과 연극사에 중요한 인물로 자리 매김 되어 왔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으면 체홉의 희곡은 평범한 일상을 그대로 다루고, 극적인 사건이 없어 '모호하고' '지루하다'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이는 공연을 담당하는 분들의 가벼움에서 비롯된 편견일 뿐이다. 이는 당시 러시아 사람들의 입장에서 작품을 보지 않고 우리 한국민의 정서에서 작품을 풀기에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답은 간단하다. 러시아인들의 다혈질을 생각해보면 결코 작품들은 지루하게 이어질 수 없을 것이다. 평론가 김명화는 "연극하는 사람들에게 체홉은 성지와도 같다. 성지를 향한 고난의 여정에 나서는 순례자처럼, 연극하는 사람들은 언젠가는 체홉의 작품을 공연하리라는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그것은 무수한 어긋남과 부조리에 허덕이는 인생과 언젠가는 정면으로 부딪혀 보겠다는 욕망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보편적인 욕망에도 불구하고 성지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비장한 극적 사건 없이 잔잔하게 인생을 펼쳐 보이는 체홉의 작품이 자칫 권태로운 공연, 흥행의 실패로 귀결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탓이다. 덕분에 언젠가 체홉의 작품을 공연하리라는 욕망의 반대편에는, 공연보다는 읽기에 적합한 작품이라는 체념과 포기가 동시다발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고 하면서 체홉의 작품을 연극화 하는 것에 대한 예술인들의 열망과 난해함을 밝혔다.
<갈매기>의 등장인물 역시 극 전체를 봤을 때 어떤 특별한 행위를 한다거나 심각한 이야기만 늘어놓지 않는다. 그래서 뜨레쁠레프가 자살을 한다거나 니나의 아기가 죽어서 슬퍼한다는 내용의 극적인 장면들은 무대 밖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그의 극의 특징을 말할 때 '극적인 사건의 부재', '내적 흐름'등의 용어들이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체홉 작품에는 오히려 이런 일상의 평범함 뒤에 특별한 뭔가가 있다. 결국 일상을 세밀하게 그림으로써 우리가 흔히 보고서도 보지 못하는 일상의 본질을 발견하게 하여 그 특별함을 제시한다. 그 중 특히 <갈매기>는 삶의 일상성을 지루하지 않게 보여주면서 동시에 사실적인 세부 관찰을 토대로 삶의 보편성을 보여주는 탁월함을 지닌 작품이다. 
 

 

<갈매기>는 인생과 예술의 이야기
체홉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예술에 대한 논쟁을 벌이며 그 중 뜨레쁠레프와 뜨리고린이라는 인물의 대비를 통해 극 속에서 종종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 하고 있다. 관습적인 글쓰기를 하는 뜨리고린과는 다르게 뜨레쁠레프는 전통적인 극과 무대를 배격하고 새로운 형식을 요구하는데 그것은 체홉이 <갈매기>를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 냈듯이 자신이 추구하는 새로운 연극관을 대변하다. 그리하여 그는 자연스럽게 그려진 평범하고도 정형화된 인물들을 통해 인생과 예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제시한다. 특히 극중에서 니나, 뜨레쁠레프, 그리고 뜨리고린이라는 인물 모두는 체홉의 경험을 바탕으로 탄생된 인물로 사랑의 삼각관계에 놓인 예술가들이다. 그래서 이들이 당면한 현실과 이상 사이의 내적 갈등은 삶의 차원이면서 동시에 예술적 차원에 있다. 이들은 각자 내적 갈등을 통해 인생과 예술에서 서로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된다. 작가지망생인 뜨레쁠레프는 통속적인 형식의 연극을 부정하고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추구한다. 또한 그는 니나를 매우 사랑하지만 그는 연극의 완성도 니나와의 사랑도 이루지 못한 채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배우지망생 니나는 엄격한 집안의 환경으로 자신의 꿈을 펼칠 기회가 없어서 힘들어하다가 통속작가 뜨리고린을 만나 모스크바로 떠나지만 그에게 버림받고 삼류배우로 전락하는 등의 삶의 고난을 겪은 후 배우로서 자신의 길을 찾아 모험을 시작한다. 뜨리고린은 아르까지나와 연인관계였지만 니나와 사랑에 빠졌다가 다시 아르까지나에게 돌아오는 등 우유부단하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며, 자신의 소설 창작을 위해 그녀들과의 사랑을 교묘하게 이용하면서 자신의 이상을 외면한 채 인생과 예술의 현실에 안주한다. 이들은 표면적으로는 애정의 삼각관계를, 내면적으로는 예술과 삶에 대한 갈등을 각기 역동적으로 겪고 있는데, 체홉은 세 명의 등장인물들을 통해 인생에 대한 상념과 예술에 대한 고민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 외에도 또 한 명의 배우인 아르까지나는 자신이 누렸던 명성과 사랑을 잃을까봐 강한 소유욕으로 작가 뜨리고린에게 집착한다. 지금까지 언급한 <갈매기>의 인물 중 아르까지나, 뜨레쁠레프, 뜨리고린, 니나는 모두 문학과 연극으로 대표되는 예술에 자신의 생의 중요한 부분을 바치고 있으며, 갈매기가 호숫가 주변을 맴돌듯 한편으로는 포기하고 한편으로는 꿈꾸면서 언제나 예술의 주변에서 번민한다.

< 갈매기>-욕망과 겉도는 삶의 이야기

<갈매기>의 모든 등장인물들은 욕구와 좌절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다.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매일을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들, 어느새 이러한 일상은 벗어나지 못하고 반복되는 현실이 되고, 이 현실은 개인의 희망과 부조화를 이루며 좌절하게 한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심각하기만 한 방황과 좌절이 다른이에게는 다소 우습게 보이고, 좌절에 대한 표현은 희극적으로 드러난다. 여기에 등장인물들 간의 '짝사랑'과 '해서는 안될 사랑', 그리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가슴 아프지만 삶의 감동을 위해 있어야만 하는 것으로 제시돼 또한 희극적일 수밖에 없다.

<갈매기>의 주요 갈등은 열명의 등장인물과 다섯개의 삼각관계에서 비롯된다. 이들의 갈등은 전통적인 극처럼 플롯이나 특별한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작은 에피소드와 대사, 혹은 침묵 속에서 '갈망하는 것과 소유할 수 없는 것', '이론과 실제', '관습적인 것과 창조적인 것', '물질과 정신' 등등의 내적인 것으로 표출된다. 그 중 니나, 뜨레쁠레프 뜨리고린의 삼각관계가 <갈매기> 작품 속 갈등의 핵심이며, 이들은 다른 등장인물들과는 달리 극을 구성하는 중심축으로서 사랑으로 인한 갈등이 입체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의 삼각관계 외에도 극 전체에 존재하는 사랑은 이상적인 결합을 이루지 못한다. 마샤는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니나만을 사랑하는 뜨레쁠레프를 사랑하면서도 메드베젠꼬와 결혼하게 되고, 뽈리나 역시 도른을 사랑하지만 샤므라예프와의 결혼생활을 유지해 나간다. 또한 아르까지나와 뜨리고린 역시 정략적인 관계이므로 그들 사이의 진정한 사랑은 불가능하다. 결국 등장인물들 모두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 받게 되는데 이를 통해 체홉은 사랑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절망과 고통, 고독을 이야기하고자 하였다.

당대 최고의 관록을 자랑하는 호화 캐스트

 
이번 <갈매기>공연은 이진순 선생과 작업을 함께 한 당대 최고의 관록을 자랑하는 배우들과 함께 중견 배우들이 작품 속 각 인물이 지닌 진중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여배우 아르까지나 역은 <갈매기> 초연 당시 니나 역을 맡았던 김금지와 제 47회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한 연기파 배우 서주희가 번갈아 맡아 관록과 패기로 흥미로움을 더해준다. 소설가 뜨리고린 역은 제작자로, 대학교수로 더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송승환과 <서안화차>, <대학살의 신>, <서른 세 개의 변주곡> 등으로 인상 깊은 연기를 펼친 박지일이 함께 맡는다. 뜨레쁠레프 역은 최근 <사랑이 온다>를 통해 폭력적인 모습을 강렬하게 표현한 김수현 배우가 맡아 열연한다. 또한 여배우라면 꼭 한 번 맡아보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역의 니나는 신예 한선영 배우가 맡아 니나의 맑으면서도 성숙한 면모를 그려낸다. 그 외에도 정상철과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다양한 연기를 펼치는 이인철이 소린 역을 맡아 공연에 힘을 불어넣는다.

김석만의 화려한 연출 외도
이번 <갈매기> 공연은 서울시극단장의 역임하고 다시 연출가로 돌아온 김석만이 연출을 맡아 잔잔한 일상에 깊이 각인된 인생의 의미를 풀어낼 예정이다. 현 한예종 연국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한국에서 연극 이론에 대해서는 최고의 실력가인 연출가로 이번 공연에서 체홉 작품의 진수를 보여주겠다며 학교 생활을 잠시 소홀(?)하며 연습에 전력투구했다.
공연의 줄거리는, 여배우 아르까지나는 연인 뜨리고린을 데리고 오빠 소린의 영지로 내려온다. 한편 아르까지나의 아들 뜨레쁠레프는 사랑하는 니나를 주인공으로 세워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꿈꾸며 공연을 선보이지만, 아르까지나는 아들이 연출하는 연극이 못마땅해 공연 중 훼방을 놓고, 화가 난 뜨레쁠레프는 공연을 중단하고 사라진다. 한편 배우가 되길 꿈꾸는 니나는 유명한 소설가 뜨리고린에게 마음이 끌리고 이를 알게 된 뜨레쁠레프는 갈매기를 죽여 니나에게 선물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니나는 뜨리고린을 따라 집을 떠나게 되는데…
이 작품은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한다. 역시 명품 공연이라는 제작진의 호언에 걸맞게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품격을 드러내는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연기에 못지않게 공연 전반적 부분에 세심한 노력을 경주한 흔적을 제공한다.
기자가 관람한 공연에 있어서는 서주희의 열정적 연기가 돋보였다. 이인철의 노련한 연기 역시 관객의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했고 공연 적재적소에 물흐르듯 흐르는 동선과 잘 짜여진 배우들의 능숙한 연기에서 관객들은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공연에 몰입한다. 두 시간 여의 시간이 언제 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공연은 관객들을 흡입하고 명품 공연을 표방하는 제작진의 노력은 관객들에게 봄의 예술적 향취를 가득 선사한다. 아쉬움이 있다면 좀 더 연습 시간을 늘렸더라면 모든 배우들이 러시아 사람들의 특징과 체홉의 의도를 완벽하게 소화해 보다 완벽한 무대가 되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남는다. 역시 명품 공연은 작품만, 배우들의 연기, 연출뿐만 아니라 모든 스탭들이 완벽하게 작품 속에 용해가 되어야 가능하다는 명언의 실체를 보여주는 본보기적 작품이 아닌가 한다. 작품에 관여한 모든 분들에게 좋은 작품에 대한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서영석 기자 gnjal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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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ksm 2011-04-27 00:53:28
공연 작품의 자세한 설명, 연극과 배우에 대한 애정, 진심어린 조언, 모두 감사합니다. 연출이 절말 노력한 것은 희곡에 나오는 인물과 대사를 살아있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소린, 도른, 사므라예프, 뽈리나, 마샤, 메드베젠코의 모든 대사를 관객이 알아듣고 좋아하길 바랐습니다. 체홉은 도른을 통해 제 입장을 밝힘니다. 도른이 체홉을 이해한 만큼 연기가 나오더군요. 체홉 공부를 못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연습부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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