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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 사용의 無節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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言語 사용의 無節制
  • 정건작 남서울대학교 교수
  • 승인 2011.04.25 17:0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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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건작 남서울대학교 교수
우리가 외형적으로는 여러 부문에서 큰 성장을 이룩했다고 자부하지만, 정치세계로부터 시작해서 평범한 필부들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언어사용의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치규범도 없는 혼란스러운 언어들이 節制되지 않고 마구 쓰이는 현상을 흔히 볼 수 있다.

몇 년 전에 어느 언론계 인사가 “말은 마음의 외출”이란 표현을 하면서, 우리가 집에 있다가 집밖 나들이라도 할 량이면 얼굴도 깨끗이 하고 머리카락은 흐트러지지 않았나 빗으로 여러 번 쓰다듬고 옷은 어떤 걸 입고 또 넥타이는 어느 색깔로 맞춰 매나 하고 외모에 대하여 여러 생각과 고려를 하듯이 마음이 외출할 때도 적어도 이런 배려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주장한 글이 생각난다..

요즈음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많은 때에 각 정당이나 시민 사회단체의 대변인이라는 사람들의 논평이나 견해들은 그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나 해법을 찾는 고뇌보다는 상대방 흠집내기 막말 표현으로 거의 일관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당, 우리단체는 이 문제를 이렇게 진단하고 이런 문제는 이렇게 대처해야 한다고 대안까지 주장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는 그렇게 주장 했는데 언론이 싸움 부추기기 위해 거두절미 편집해서 그렇게 자극적으로 썼다고 핑계 댈 만큼 언론의 책임도 있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이 우리네 평범한 일상에 폭넓게 만연되어 있어서, ‘사돈네 남 말 하듯’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 자신들의 문제이며 속성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주변에서 잘 알고 지내던 사람이 혹간 상당한 관직에 올랐거나, 부를 많이 축적했거나, 잘 나가는 기업의 CEO가 되거나 아무튼 사회적으로 성공한 경우에, 그 인사들을 일컬어 이야기 할 때, 우리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존칭을 생략한 채 “걔가.. 또는 그치가..”라고 호칭하는 것은 다반사고, 심지어 내가 이러 이러한 위치에 있던 소시적에 내 아래 데리고 있었다느니, 자기하고 아주 절친한 사이(대부분 일방적 얘기지만)라고 허투로 말하는 경우를 많이 접하게 된다.
이렇듯 그릇된 언어 행동은 나름대로 사회적 성취를 이룩한 사람들과 자신과의 관계를 부각시켜 그들과 동열시 되고자 하는 일방적 바램이거나, 그 들을 깎아내리고 비하함으로써 반사적으로 말하는 자신의 위치가 상승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아니면 내가 이러한 유명 인사들과 친하니 나를 알아달라는 자기과시 인지, 나름대로의 스트레스 해소인지 도통 알 수 없는 혼란스러운 양태들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대학의 동기들과 근교 산행 중에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산 정상을 향해 가는데, 50대 전후로 보이는 장년 일행들이 우리를 앞지르면서 이 정부가 방송장악에 실패해서 지난 광우병 촛불집회와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면서 정부와 관계기관의 책임자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는 소리를 옆 사람도 들으라는 듯이 떠들어 대는 것이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평범한 소시민들이 주말 산행에 좋은 공기 마시면서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행색과 안 어울리게 품격 떨어지는 표현을 거침없이 하면서 우쭐대는 모양새가 참으로 한심하게 느껴졌다.

일본의 예를 들어 적절할지 모르겠으나, 일본의 관료사회는 선후배가 신뢰하면서 서로 존중하는 풍토라고 알려져 있다. 퇴임한 선배가 현직에 있는 후배에 대해 깍듯이 예를 갗추고, 언어도 존대해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어떤 이가 “나이도 위고 관직도 먼저 거쳐간 처지에, 심지어 옛날에는 밑에 부하로서 거느리고 있었을 터 인데,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고 의아해 하니, 그가 말하길 “선배인 내가 후배에게 예를 잘 갖추고 존대 해줘야 주변 사람들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않고 존중하게 될 것이고 결국은 그것이 자신에게도 덕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고 답하였다고 한다.

우리가 산업화시대에 많은 성취를 이뤄 겉으로 잘 살게 되었다고 선진국가라고 자부 하기엔 아직도 부족하고 더 채워야 할 많은 과제들을 안고 있다. 그 많은 부문 중에서도 우리사회가 연대하여 공동추구 할 가치규범을 확실하게 정립하여 나가는 길이 우선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본다. 좀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옛 선현들의 인의예지 중시사상이라든가 근세의 도덕재무장 운동 같은 시민사회 규범도 중요하고, 미국의 청교도 개척정신과 자유주의사상, 영국이나 일본의 국왕에 대한 존경과 충성처럼 국민을 한 방향으로 묶는 Identity도 때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어린시절의 청소년들에게 우리의 역사의식을 확실하게 공부시키는 일은 이런 공동체의 가치규범을 공고히 다지는 중차대한 과업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이러한 거창한 과제의 답은 산 너머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주변의 사소한 일에서부터 찾아 실천하여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사회가 삭막해지고 혼란한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으나, 먼저 치유해야 할 일은 우선 사람과의 의사소통에 장애가 되는 언어의 순화와 막말의 자제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주변의 아는 사람, 선후배, 가까운 이웃과 동료부터 아끼고 사랑하며 존중해 줘야 한다. 그래야 그들도 역시 나에게 잘 대 할 것이고, 나아가 이웃과 사회전체가 아름다워 지리라고 본다. 그렇게 하려면, 우리 모두는 지금부터 좋은 말, 칭찬하는 말, 같은 표현이라도 재치 있고 사랑스러운 말, 비판하고 지적하고 싶은 표현도 온유하면서 단호하되 절제된 언어를 사용하는 범국민캠페인이라도 전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모든 시작은 먼저 정치권을 위시한 사회지도층과 언론 에서부터 솔선함으로써 우리 국민에게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한다. 필부들이 본받을 수 있도록 말이다.
 

= 본 칼럼은 'KNS뉴스통신'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정건작 남서울대학교 교수 kunjak@hira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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