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2:50 (수)
서울시극단, <햄릿(Hamlet)>
상태바
서울시극단, <햄릿(Hamlet)>
  • 서영석 기자
  • 승인 2011.04.25 17: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익스피어 작 <햄릿(Hamlet)>, M씨어터

2011년 서울시극단(단장 김철리)에서 세익스피어 작 <햄릿>을 세종문화회관 세종M씨어터에서 성황리에 공연을 마쳤다. 4월 20일, 수요일 낮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객석은 거의 메워져있었다. 연초 새로이 부임한 김철리단장의 첫 작품으로 마련된 이번 공연은 현장 유명 연출가 출신이라는 김단장의 타이틀 때문에, 또 대학로에서 이미 검증된 박근형 연출작이라 연극계의 관심을 모았던 공연이다.
세익스피어의 <햄릿>, 우주를 날아다니는 이 시대에 있어서 이런 고전 공연의 의미는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또 막대한 예산이 필수인 고전의 공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고전의 진정한 가치는 시대와 공간(국가)을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데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특히 고전명작은 과학의 급진적 발전과 물질만능주의의 현실에서 인간의 삶에 대한 통찰을 일반적 관점에서 고전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는 명분과 인간의 자연적 생명력과 인간성 회복에의 가치를 인정할 수 있겠다. 특히 세익스피어의 대표작 중 하나인 <햄릿>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무대화 되는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제작비나 흥행에 있어서 일반 극단에서의 제작이 어려운 이러한 고전이 서울시극단에서 공연되고 있다는 것은 공공예술단으로 상당히 바람직하고 고무적이다 할 수 있겠다.

권력자는 영원하다?
원 작품의 줄거리는 ‘왕인 형을 살해하고 왕위와 왕비를 찬탈한 숙부에게 아버지의 혼령이 나타나 아들, 햄릿에게 복수를 부탁하고 그로 인해 고민을 하다 결국 복수를 결심, 왕을 죽이고 아버지의 복수를 마친다’는 내용인데 이번 박근형 연출의 <햄릿>은 복수는 사라져버리고 결국 “권력자는 영원하다”고 끝을 맺는다. <햄릿>의 화두는 살육에 의한 복수라고 정리될 수 있는데 복수가 빠져버린 박근형의 <햄릿>은 관객에게 무엇을 시사하는가? 물론 새로운 해석이라는 전제 하에 <햄릿>은 다양한 공연형태와 내용으로 전 세계의 관객에게 수 없이 모습을 바꾸며 다가섰다. 하이너 뮐러의 <햄릿머신>에서는 지식인의 실제적 현실의 변혁 작업에 대한 무력감과 절망감이 스스로 기계가 되기를 갈구한다는 강한 자기부정의 공연도 있었지만 이는 이번 박근형의 <햄릿>은 또 다른 표현 양식으로 치부한다 해도 그 결괴에 대해서 긍정적 평을 하기는 다소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번, 박근형 연출의 <햄릿>은 어떤 의미를 시사하고 있나 강한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연출은 건축물에 비유하자면 ‘골조(기초, 작품의 근간)’는 애써 외면을 하고 ‘인테리어’라는 소프트웨어에만 과도한 집착을 보이는 듯 하다. 공연의 부분 부분에 박근형 특유의 아이디어가 반짝거리지만 배우와 배우와의 호흡이나 앙상블은 왜 장기간 연습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실망을 안기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예술성이 미약한 아이디어만으로 공연을 꾸리기에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술에 있어서도 대부분의 배우들이 자신의 대사의 의미조차 외면하고(파악하지 못했는지) 흡사 우리 전통극를 보는 듯한 외치는 대사들로 소음에 가깝게 들렸던 것은 연출과 배우들이 어떤 의도였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물론 모든 연극 공연이 교과서적으로 펼쳐진다면 연극예술의 발전은 진부하게 보여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세익스피어라는 대가의 작품에서는 세심한 정리가 필요함은 절대적일 것이다. 각색도 번안이라기도 애매한 경계에 머물러 어느 부분에서 어떻게 정당성을 찾아야 할지 애매한 상태에서 공연은 서둘러 막을 내린다. 배우들의 연기, 극중극 장면에서 대사에서도 있듯이, “무거운 부분은 결코 무겁지 안게, 가벼운 부분도 역시 가볍지 않게 연기하는 훌륭한 배우들...,” 과연 이 대사를 썼던 세익스피어는 어떤 생각이었을까? 배우들이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연출은 공연의 대사 중, “연극은 시대의 거울...,” 이 부분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한 듯 하다. 현재 우리의 실정을 강변하듯이 일인 독재의 정치성에 치중하다 보니 원작의 핵심인 복수는 사라지고 당당한 숙부(왕)의 모습에서 현실을 표출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연의 다른 부분에서 조명 역시 기자를 당황하게 한다. 연극예술의 역사에서 가장 발전한 부분이 조명기의 발전이라는 데 의의를 다는 이는 없을 것이다. 현대의 연극에서 조명이 차지하는 부분이 확장일로라는 것은 그 용도와 조명디자인과 실제 공연에서의 조명이 어떻게 표출되어야 극적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에 대해 연출과 조명감독(디자이너)은 직무유기에 가까운 오류를 범하고 있다. 뮤지컬이라면 쑈에 가까운 어떤 조명도 관객의 흥미유발에 근거하고 있다면 타당성이 있겠지만 정통연극에서-조금은 실험적인 면도 없지 않았지만- 관객의 시선을 어지럽히는 붉은 조명은 연출의 의도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이러한 공연적 문제는 결국 연출과 무대감독의 극적효과창출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 공연에서 가장 훌륭했던 부분은 효과와 배경음악이 아닌가 한다. 배우들의 감정선을 전혀 흩뜨리지 않고 순간순간 가장 적절한 높, 낮이를 유지해 관객들의 공연 몰입에 큰 도움을 주었다.

연극예술에 있어서 실험극
예술발전에 있어 실험극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공공예술단은 국가 예술의 미래를 적정 부분 책임져야할 의무가 있기에 이번의 실험적 공연에 대해서만은 바람직하다는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하지만 공공예술단은 ‘공공’이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를 부여해야 할 것이다. 연극공연이라는 예술행위에 있어서 연출의 개인적 예술취향을 무시하지 못함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지만 과정과 결과에 있어서는 여타의 공연물과 다르게 판단되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장이나 단원, 지도위원들이 심사숙고해서 작품을 선정하고 연출을 의뢰함에 있어 세심한 고민이 필요가 요구되는 면이기도 하다.
일전 우리 연극계는 국립극단의 해체라는 큰 아픔을 겪었다. 철밥통을 자랑하던 단원들은 스스로의 모순에 빠져 최악의 상태로 내몰렸다. 이는 예술을 상업적 측면에서만 바라본 정책권자들의 무지로 거의 미친 짓에 가까운 우를 범한 행위라고 단정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안정적 지위에서 오는 나태함, 좋은 배우들이 입단해서 자기개발 등한시로 점차 도태되었고 매너리즘에 빠져 발전이 없는 무력감으로 귀결되었다는 비판도 타당성이 있지만 예술은 문자 그대로 예술일 뿐이다. 예술을 돈으로 가치매김을 하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공공예술단원 역시 한 번 입단하면 철밥통이라는 의식에서 벗어나 타 예술인들에 비해 풍요로운 환경에서 작품 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현실에 안주 보다 좀 더 자각적, 도전적으로 미래 지향적인 단원으로 매진함이 옳지 않을까. 공공예술단 역시 밥만 축내는(그런 단원은 없길 바라며)단원들에 대한 제재 방안으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함은 서로가 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대고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서울시극단을 포함, 공공예술단의 운영, 문제가 없을까?
공연 외적으로 한 가지 첨언을 한다면 과도한 스탭의 운용에 대한 부분이다. 현실적으로 세종문화회관의 매표소나 극장 안내 등에 배치된 인력이 타당한 숫자일까? 응당 극장의 수준에 맞는 서비스로 보아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또 고급 공연을 지향하는 서울시극단이나 예술단의 입장에서야 그들의 업무 역시 과도하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 필요 이상의 스탭들이나 진행 요원들은 부르조아지 연극예술이라는 대학로의 비아냥거림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런 방만한 스탭 운영의 문제는 극장 전체를 운영하는 경영적인 측면에서 어떠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지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닌가 한다. 스탭은 공연과 기계를 동시에 다루는 직종이라 만약의 대형사고에 대비해 어느 분야 보다 철저한 책임의식이 절실히 요구되는 파트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스탭들이 외부 파견 계약직원이라는 것도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야할 사안으로 보인다. 노파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계약직 파견 직원도 당연 세종문화회관의 일원임에는 분명하나 유사시 비상사태에 그들의 책임을 어디까지 물어야 하냐는 경계선도 애매하고 그들의 고용에 대한 불확실함 역시 근무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된다. 정직원과 파견 계약직원의 업무는 대동소이하지만 그들의 받는 대우(월급 등)는 분명 현격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계약직원들은 알게 모르게 정직원과의 소통에서 자신의 의지를 제대로 표명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불리한 요구에도 굽힐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을까 하는 기우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기자만의 우려가 아닐 것이다. 이런 현실은 극장 경영적인 측면에서 기자가 항상 의문을 풀지 못하는 부분이 ‘무대감독’이라는 직책이다. 물론 세종문화회관은 많은 자체 공연을 소화해야 기에 어떤 면에서는 필수불가한 직종인지도 모르겠다. 뮤지컬 같은 복잡한 매커니즘이 요구되는 공연에서의 무대감독은 필수불가결한 주요직책이지만 정극에서 무대감독이 꼭 필요한 직책인지 묻고 싶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조연출이 공연을 충분히 소화해 낼 수 있기 때문에 엄청난 대작을 제외한 거의 모든 대학로의 공연에서는 굳이 무대감독을 쓰지 않음이 보편적이다. 이 날의 공연에서도 공연이 며칠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감독을 교체, 처음 공연에 임했다는 이해 못할 상황이 벌어졌다. 만약 다른 극장의 공연에서 공연 중 무대감독이 교체되는 경우가 그리 흔할까? 보편적 시각에서 세종문화회관의 모든 공연이 뮤지컬이 아니고, 또 자체 공연이 아닌 외부 대관공연일 경우 공연 팀에 응당 무대감독이 있을진대 중복의 의미도 있겠고 굳이 예산을 낭비(?)하며 고정직 무대감독을 여럿 둘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 지금 극장에 필요한 인력은 무대감독이 아니라 관객과 배우 등 모든 관계자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는 전기기술자 같은 고정직 엔지니어일 것이다. 그렇다고 그들을 해고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얼마든지 그 인원을 극장의 적재적소에 재배치가 가능할 것이고 자신들의 취향이나 장래 진로에 도움이 되는 부분으로의 활용도 가능할 것이다.
기자 개인의 욕심이지만 세종문화회관이나 서울시극단이 미래예술에의 재원 발굴에도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단원들을 훌륭한 배우로 발전시켜 더 큰 무대로 배출시켰으면 하는 기대감도 현실을 무시한 처사일까? 또 하나의 의문은 극단의 연출 파트 부재가 아쉽다. 물론 예술감독이나 지도위원이 있기는 하지만 연출을 공부하고자 하는 젊은 피들을 연구단원 같은 직을 만들어 훈련시키는 것도 큰 틀에서 세종문화회관과 한국미래연극예술의 발전적 제안이 되지 않을까 사료된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틀에서 인식의 틀을 바꾸었으면 한다. 우선 단장의 임기 문제이다. 임기가 짧아 극단의 미래지향적인 운용에 전력을 기울이지 못함 역시 서울시극단이 가진 문제점 중 크나큰 부분이라 할 수 있겠다. 단장 직을 맡아 소신껏 일 할 수 있는 풍토를 마련해 줘야 발전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누가 단장을 맡든 특별히 하자가 없다면 10년이든 종신년이든 운영 일체를 맡겨 보자는 것이다. 제대로 일을 할만 하면 단장이 바뀌니 단원 역시 단장을 신임하기보다 잠시 왔다 가는 ‘뜨내기’ 정도로 생각해 무시해 버리는 풍토를 제공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제반적 문제들이 개인의 사비(私費)로 운영되는 극장이라면 개의치 못할 입장이지만 서울시극단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기에 세종문화회관의 공연과 경영은 여타의 공연이나 공연장에 비해 전반적으로 자유롭지 못함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김철리 단장에게 기대를 걸어 본다.
김철리 단장은 단장 인삿말에서 서울시민을 위한, 서울시민의 극단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공공예술단의 존재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훌륭한 예술작품을 저렴한 가격에 시민에게 제공한다는 것이 최우선 원칙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함은 물론, 제작과정에서 항상 숙지되어야 할 사항임에 이견이 없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강조되는 부분은 서울시극단은 공공극단이라는 원칙에서, 모든 운영비를 비롯 제작비가 국민의 혈세라는 사실을 주지하고 공연 하나하나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해야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 있지 있을까? 김철리 단장의 노련하고 적극적인 의욕으로 서울시극단이 M씨어터에나 세종문화회관 극장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학로와 전국순회 공연 등, 굳이 단원의 숫자에 맞추는 공연도 존립의 필수이겠지만 한두 명이 출연하는 좋은 공연도 개발하여 보다 폭 넓은 연극공연 확대에 기대를 걸어 보는 것은 기자의 지나친 욕심일까?
 

서영석 기자 gnjala@hanmail.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기기사
섹션별 최신기사
HOT 연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