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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칼럼] 김광석 죽음과 쓰레기 언론, 관음증과 광기에 휩싸인 우리들의 자화상언론방송, 인간 모독과 인격살해 당한 서해순씨에 사과해야
  • 박요한 정치학 박사·논설실장·숭실대 초빙교수
  • 작성 2017.11.14 05:00
  • 댓글 0

동물의 왕국에서, 굶주린 맹수들이 떼를 지어 임팔라 한 마리에게 달려들었다.

2017년 10월 12일 ‘희대의 마녀’가 서울경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고 김광석의 미망인 서해순이라는 이름은 이미 “남편과 딸을 연쇄적으로 살해 했을 것”이라는 이미지가 덧씌워져 있었다.

한 달 전 8월 30일 개봉된 영화 ‘김광석’은 시간을 돌려놓는 마술과도 같았다.

1996년 1월 김광석의 죽음, 21년이라는 시간을 돌이켜 사건의 전말을 재조명했다. 김광석은 시대정신과 인간정서의 존엄성을 천연의 음색으로 일깨운 당대의 가수였다.

김광석의 자살과 그 딸의 죽음은 몇가지 의혹을 일게 했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려는 이 아무개 기자의 행동은 집요하고 광폭적이다. 언론 보도라는 사회고발 차원을 넘어서, 영화 ‘김광석’으로 탄생시켜 ‘언론 법정’을 세워 나름대로 심판을 가한 뒤에, 서해순을 직접 사법당국에 고발했다.

그 고발 요지는 “2007년 12월 아픈 딸을 방치해 숨지게 했고(유기치사), 재산권 소송에서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딸의 죽음을 은폐(사기)한 의혹이 있다.”는 것. 그 주장의 밑바닥에는 김광석의 죽음은 바람난 서해순이 정부와 함께 최소한 자살을 방조했을 것이란 합리적 의심이 깔려 있었다.

영화와 고발장을 들여다 보면 “위대한 가수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르는 것도 모자라 남편은 물론, 자식을 살해·유기한 혐의가 있다”는 게 그 핵심 요지다. 당연히 서해순은 희대의 마녀로 등장했고, 법정에 서는 게 사필귀정의 운명처럼 보일 수 도 있다. 죽은 두 사람은 말이 없고 남겨진 서해순은 마녀로 귀결되고 있었다.

한달여 대한민국 언론방송들의 취재역량과 국민적 관심사는 온통 서해순이라는 한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트럼프 미대통령은 유엔에서 북한 폭격론을 역설하고, 북한 김정은은 개성공단을 일방적으로 가동한 사실이 드러났다.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전쟁위기이자, 김정은의 도발이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대중 대통령 간 정상 간의 협약을 백지화하고 있던 상황이다. 서해순 사건의 언론 부각이 한반도 위기의 초점을 흐렸다면, 시간과 사건들의 우연한 일치일까?

그러나 11월 10일 경찰은 서해순씨 조사결과 ‘혐의 없음’을 결정했다.

한달 동안 트럼프와 김정은의 개성공단 재가동 사건을 관심사 밖으로 제치고, 나라와 국민들을 의혹에 휩싸이게 했던 사건이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 온 천지사방이 시끄러운 사건의 원인을 알고 보니 쥐 한 마리)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태산명동의 주도자는 언론방송이요, 쥐 한 마리는 영화를 만들고 고발의 주체가 된 한 기레기다.

기레기란 (언론)기자와 쓰레기의 합성어다. 허위사실과 과장된 기사로 실체적 진실을 은닉하고, 그 기사에 선동되어 흥분한 사회적 병리현상을 일컫는다. 따라서 서씨가 무혐의로 드러난 이상, 이 아무개 기자라는 행위자의 정체성은 기레기다.

통탄할 일이다. 대한민국 언론이 쥐 한 마리에 현혹되어 마녀사냥 몰이에 동원된 것도 모자라, 국민 앞에서 실체적 진실을 호도하고 말았다. 병든 우리들의 자화상, 즉 관음증과 증오와 광기로 일그러진 민낯이 민망스럽기만 하다.

하기야 이런 희대의 사건도 며칠만 지나면 그 기레기와 서해순 간의 개인 법정시비로 형해화되고, 잊혀진다. 국민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들의 일상으로 돌아가 또 다른 별종의 사건에 이목을 빼앗기게 된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쉽사리 고개를 돌릴 수 없다. 서해순의 무죄혐의와 결백 앞에 우리의 양심 만은 단정히 곧추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비겁한 이웃이 된다. 진실은 밝혀졌지만, 서해순이라는 한 인간은 이미 사회적·정신적으로 살해 당했다. ‘김광석 죽음과 서해순 살해 사건’은 한 인간의 존엄성이 무참하게 살해를 당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당대의 사건이다.

따라서 오보를 낸 모든 언론은 서해순에게 사죄해야 한다.

“지축이 흔들릴지라도” 엄정한 판단력과 평형감각을 잃어서는 안되는 게 언론이 본령이다. 선동과 포퓰리즘은 국민들 마음 속에 깊이 도사린 분노와 증오, 관음증과 복수의 감정을 자극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더욱이 소영웅주의와 광기에 중독된 기레기가 ‘사회고발’ 차원을 넘어서, 영화를 직접 제작하여 언론법정을 열고 직접 판결을 내렸다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 과정에서 한 인간의 일상과 존엄성을 짓밟히고, 당대의 사회를 관음증과 야만의 현장으로 몰고 간 ‘인격살해’에 해당한다.

하여, 우리 모두는 한 달 여 마녀의 대명사로 각인된 서해순이란 이름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우리 자신, 아들 딸 모두 제 2, 제 3 서해순이 될 수 있다.

반면, 마녀사냥 속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하게 처신하던 서해순씨를 주목한다.

96년 초 벽두를 때렸던 그의 죽음의 의혹도 모두 벗겨졌다. 알고보면 김광석과 서해순,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그나마 다행스런 결과다.

김광석은 시대정신과 인간 정서의 존엄성을 일깨운 가수였다.

그의 노래는 우리 모두를 20대 청년기의 시간으로 되돌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그 아내와 가족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이고 기형적인 심상을 지니고 있는가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었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김광석은 노래로 살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서해순은 생동하는 자존적 독립인간으로 당당하게 대지에 발을 딛고 있다.

두 사람의 운명, 두 사람 각자의 고유한 인권이다. 선정주의와 황색 저널리즘이 간여할 수 없는, 천부의 인간의 존엄성 차원의 세계다.

누가 무슨 자격으로 누구를 지목하여 단죄하려 든다는 말인가? 언제부터 언론이 인간의 존엄성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법정이고 심판관의 자격을 지녔더란 말인가?

마녀사냥에 함께 나선 언론은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는 서해순과 같은 피해자가 나와서는 안 된다.

박요한 기자/ 정치학 박사·논설실장·숭실대 초빙교수

박요한 정치학 박사·논설실장·숭실대 초빙교수  knstv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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