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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실습의 라노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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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생실습의 라노비아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1.2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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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의 유지를 받들어 교사가 되려고 교직과목을 이수하기 시작했다. 교육원리, 교육심리, 교육평가 등 딱딱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과목들을 하나씩 섭렵해 가며 교수님들의 강의에 열중을 가하려고 앞자리에 앉아 노력했다. 하지만 주로 의무적으로 시간들을 견디어 냈으며 그래도 리포트는 정성을 다하여 빠지지 않고 꼬박꼬박 제출한 기억이 난다. 곁들여 시험을 잘 치루니 학점도 짭짤했던 것 같다.

또한 교양과목 중 미국사 과목이 있었는데 교수님과 우리와 연령 차이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존경 속에서 거의 친구처럼 지냈으며 하숙집을 찾아가 마치 내 집처럼 편안하게 눕기도 하고 주초도 같이 하게 된 은사님이 계셨다. 우리들의 문제를 마치 당신이 당하고 있는 것처럼 잘 들어 주시고 토닥거려 주시곤 하셨다. 등록금은 장학혜택을 받아서 해결하였지만 나머지 용돈은 전무 하다시피 하여 아무래도 교수님께 많이 의존했던 것 같다.

이제 학기가 변하여 교직과목의 마지막 코스인 교생실습을 하려고 P여고에 6명이 배정되어 동행 출발했다. 내가 맡은 학급은 2학년 2반이었으며 그 학급 담임선생님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학급상황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을 들었다. 이 학교는 인문계 학교로 그 지방에서 꽤나 유명했다. 학생들의 모습도 표정이 밝았으며 교복이 아주 깨끗하고 단정했다. 상의 하복이 위에는 흰색 반소매였고 하의는 검정색 치마에 흰색 운동화요 두발은 단발로 깔끔한 차림이었다.

이튿날 조회 시간에 처음으로 교단에 서서 인사를 하고 출석을 부르려고 출석부로 눈이 가는 순간 맨 뒤 창문가에서 두 번째 앉아 있던 학생이 무언가 제 책상위에서 확 스쳐 지나가게 하는 모습이 번쩍 눈에 띄어 그 쪽을 바라보았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오른쪽 눈을 질끈 감았다 뜨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당시에는 이것이 윙크인지도 모르고 그저 순진하기만 한 총각선생이었다.

참 이상하다 하고 지나치려 했는데 그 다음날 이 학생이 학교에 결석한 일이 일어났다. 학급 담임선생님께 여쭈었더니 말씀하시기를 “우리 반은 무결석 학급인데요? 라고 대답하셨다. 이 말씀에 온종일 신경이 써져서 아무 일도 생각이 안 났다. 다음 날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 학생이 복도에 따라오면서 “선생님……. 저……. 여기 결석계에요”하면서 봉투를 내미는데 온갖 꽃무늬와 꽃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래도 속내를 꾹 참고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생활했다. 왜냐면 나이 차이가 6년이나 되는데 아직도 어린 것들이 하면서 에둘러 잊으려 했다. 그리고 그 날 오전에 독일어 선생님이 오시더니 혹시 교생선생님 중에서 독일어 수업을 할 분이 있는지 물으셨다. 우리 중 세 사람이 영어를 전공하기 때문에 아무도 자신이 없다고 하여 나는 모교 체면도 있고 해서 고등학교 때 경험을 살려 독일어 수업을 하기로 했다.

잔뜩 긴장하고 걱정을 앞세워 때마침 기다리고 있던 1학년 1반 교실에 들어섰다. 순간 아이들의 함성과 60명의 시선이 내 온 몸에 들어오니 한 발 움직이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이구동성으로 “노래해 주세요!!!” 하고 합창을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나는 그 당시에 외국의 팝송은 거의 암기하다시피 했으며 이태리 칸소네를 비롯하여 프랑스의 샹송까지 두루 섭렵하던 때였다. 그래서 수업을 잠시 멈추고 이태리의 칸소네 가수 토니달라라가 불러서 당시에 크게 히트한 “라노비아를 불러 주겠다!” 하고 칠판에 가사를 원어로 죽 써놓았다. 모든 문은 전부 닫게 한 다음에 “비앙케스불렌덴 테발라노비아…….”하고 첫 마디를 부르는데 그 함성이 어찌 큰지 닫아놓은 문이 열릴 지경이었다.

무사히 1교시를 마치고 몸살 기운이 있어서 그 학교 교감선생님에게 조퇴 허락을 받아 집에 가려고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하얀 천사들이 앞을 꽉 막으면서 “선생님 지금 어디 가세요? 저희는 1학년 2반인데요, 다음 시간이 독일어 수업 시간이에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몸이 좀 불편하여 오늘은 조퇴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서로 내 팔과 어깨를 붙들고 늘어지니 하는 수 없이 몸을 내맡긴 채 끌려가서 전 시간과 똑같이 수업을 하고 노래를 불러 주었다. 나는 이때 처음으로 여자들이 합세하면 엄청난 힘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편 기숙사로 돌아와 라디오로 틀어놓으면 당대에 최고의 인기프로인 ‘한밤의 음악편지’에서는 여지없이 내 이름과 그 학교 학생들의 신청자 이름이 아나운서의 멘트를 타고 거의 날마다 전해지다시피 했다.

교생실습을 마치는 날 학급학생뿐 아니라 수업에 안 들어간 학생들까지 다양한 선물을 해 주었으며 그 학교 5층 건물이 일순간 하얀 손수건으로 가득했던 일이 기억난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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