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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들의 반란…"대한민국 교육은 벌거벗은 임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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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가방끈'들의 반란…"대한민국 교육은 벌거벗은 임금님"
  • 조해진 기자
  • 승인 2011.11.18 15: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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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과 입시 경쟁으로만 변질된 교육 제도인 ‘대학 입시’ 거부한다”

▲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의 조만성군 (사진=김현수 기자)

“요즘 기업들은 학력, 학벌 사회에서 벗어나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졸 채용자들도 늘려가는 추세에 있다. 기업 안에서 학벌, 파벌로 나뉘어져 있고 그저 고졸 채용자들은 이미지용으로만 활용된다.”

[KNS뉴스통신=조해진 기자]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평가 시험 당일인 지난 10일. 수능 고사장에 있어야 할 고3 수험생 18명이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 모여 “대학 입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모임(이하 투명가방끈)’에 소속된 10대 소년소녀들로 모두 이날 치러진 수능을 보지 않고 교육은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의무가 되어버렸다며 ‘대학 입시 제도 철폐’를 주장했다. 이어 12일에는 많은 이들 앞에서 교육과 사회에 대한 자유발언 및 공연을 펼치며 문화제 형식의 거리 행동을 열었다.
<KNS뉴스통신>은 ‘투명가방끈’의 제안자 중의 한 명으로 활동을 주도하고 있는 조만성(19, 필명 따이루)군을 만나 ‘투명가방끈’이 결집하게 된 계기와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10대들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투명가방끈모임을 주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청소년활동가로 활동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들과 대학을 반드시 가야하는지 고민을 하게 됐다. 고민 끝에 대학 입시를 거부하는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8월말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됐다. 이어 9월 3일 ‘투명가방끈’의 시작을 알리는 작은 기념회에서 우리의 의견에 지지하는 사람들과 대학 입시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했다. 이 때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모임’이라는 모임의 이름을 정했다.”

-투명가방끈이란 이름의 의미는.
“보통 교육을 얼만큼 받았느냐에 따라 가방끈이 길다, 짧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러나 배움이라는 것은 대학이라는 정해진 틀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충분하게 이뤄져야한다고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배움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었다. 또 다른 의미는 가방끈이 길다고 믿는 가방끈이 진짜 가방끈일까. 어쩌면 벌거벗은 임금님에 나오는 ‘착한 사람에게만 보이는 투명 옷’처럼 본질적이지 못한 것 아닌가라는 의미도 들어있다. 그 외에도 열려있는 시각으로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운동을 하는 학생들은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저의 경우에는 고등학교를 이번 겨울에 자퇴했다. 인문계를 다녔는데 나와는 맞지 않았다. 먼저 대학 입시 거부 운동을 제안한 사람들은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제안자를 포함 7명 정도가 탈학교 학생이고 그 외 나머지 친구들은 학교를 다니면서 활동을 하고 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친구들의 경우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11월, 12월은 '투명가방끈' 운동에 전념하느라 올스탑 상태다”

-부모님의 반대는 없었나.
“부모님은 성향이 보수적이신 분들이어서 이런 활동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신 편이다. 그러나 대학을 가는 것의 여부는 부모님이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인생이니 스스로 결정해야할 부분이라고 말씀해주셨다. 물론 고등학교 자퇴와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렸을 때는 남들이 가는 진로와 다른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해 걱정도 하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러나 특별히 반대하시지는 않으셨다”

-같은 연령층의 친구들에도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고학력을 요구하는 만큼 대학을 가야한다는 입장이 있다.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본인이 하는 것이므로 옳다 그르다 얘기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대학을 나온다고 하더라도 현재 비정규직 비율이 이미 절반을 넘어섰고, 안정적인 일자리 자체가 부족한 현실이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 위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닌 공무원이나 대기업에 맞춰서 들어가고 있다. 이렇게 현실 안에서 갇혀서 적당히 타협해 맞춰 살기 보다는 잘못된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적극적으로 변화를 만들어 내는 움직임에 동참을 한다면 우리들의 삶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우리가 운동하는 것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을 시켜달라는
것이 아니다. 교육이나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기 위한 것“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하면서 누구나 부담 없이 교육 받을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학입시 거부 외에 다른 대책을 세운 것이 있나.
“우리가 대학입시거부 운동을 하는 것은 모두가 대학을 가지 말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것도 아니다. 교육의 목적이 변질돼버린 현실을 비판하고 교육의 선택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입시 경쟁에 의한 교육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누구나 경제적 걱정 없이 배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학 입시 거부’는 학벌이나 학력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배우고 일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자는 우리의 생각을 알리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의 한 부분일 뿐이다.
지금 당장 뚜렷한 대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취업의 관문으로만 여겨지는 교육, 대학의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는 문제점을 인지하고 대안과 대책을 만들어야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앞으로는 효과적인 대안을 만드는 것이 과제다.
지금 ‘투명가방끈’ 사이에서 나오고 있는 대안 중에 하나는 ‘대안 대학’이다. 교육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므로 이를 행사할 수 있도록 사회적인 지원이 이루어져야한다고 생각한다. 대안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에게 ‘생활비를 보장하자’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최소한 차비가 없어서 못 오는 상황은 없애기 위해 차비라도 지원을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들의 모임' 사무실 내부

-기존 학교의 틀을 벗어나기 위해 만들어진 대안학교라는 곳도 있다. 어떻게 생각하나.
"알고 있다. 대학 입시 거부 선언자 중에서도 대안학교 학생이 있다. 그러나 폐쇄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지금의 대안학교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대안학교 역시 입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사실 돈도 많이 들고. 대안학교가 새로운 삶, 새로운 교육을 추구하지만 결국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다들 대학을 보내거나 학벌, 학력을 가지도록 훈련시키는, 한 발 후퇴해버릴 수 밖에 없는 문제들이 있었다. 대안 학교가 자기들의 삶만을 바꾸기 위한 대안으로 머문다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내 삶을 이루고 있는 이 사회를 바꿔야 의미있지 않을까. 한계를 열어서 우리의 삶 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꿀 수 있도록"

-우리나라에는 약 200여 개의 대학이 있다. 대학의 수와 등록금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학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몇몇 대학 이외에는 관리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대학들이 운영시스템을 잘 갖춰 많은 사람들에게 배움의 장을 만든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등록금은 문제가 있다. 지금 대학은 보통 4년에 4,000만 원이 든다. 4,000만 원. 배우고 싶은데도 배울 수 없게 만드는 환경을 만든다고 생각한다. ‘투명가방끈’은 이런 환경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싶어 운동 시작한 것이다. 누구나 경제적인 걱정 없이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라는 것을 요구하고 싶었다“

-나중에 대학 입시 거부 운동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할 것 같지 않나.
“후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전에 후회하지 않게 만들려고 좀 더 이 운동을 열심히 할 것이다. 세상이 나를 바꾸기 전에 내가 세상을 바꾸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물론 현실적인 어려움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학력이나 학벌에 대한 차별들도 무수히 많을 것이고 하고 싶은 일을 지원했을 때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일을 할 수 없게 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그런 차별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길을 걸은 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것 상관없이 성공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는 그 차별에 맞서겠다’라는 의지를 가지고 불편한 길일지라도 걸어갈 생각이다”

-12일 거리 행동에서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그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선 대학을 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열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대학은 꼭 가야한다’라는 인식을 ‘대학을 가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라고 변화시키는 물꼬를 트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가 운동을 하면서 가장 많이 부딪혔던 문제는 다들 ‘불가능하다’라고 비판적으로 얘기했던 것들이었다. 다들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적극적인 행동을 보여줌으로써 ‘불가능하다’에서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변화시킨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본다”

-도와주는 어른들은 누가 있나.
“사실 어른들이 많이 도와주시지는 않는다. 경쟁 없는 교육을 해야한다며 성명서를 발표한 교육단체만 전국에 100개가 넘는다. 그러나 대부분 이 운동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했을 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단체는 청소년단체를 포함해 10개를 넘지 않았다. 정말 깜짝 놀랐다. 현실적 한계에 부딪힌다면 그 한계를 넘기 위해 더 많은 노력과 더 많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데 기성단체들이 안된다고 빠지는 모습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전교조 역시 우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10일 대학 입시 거부 선언을 하겠다고 뜻을 함께하는 학부모나 교사들의 지지를 부탁했지만 전교조는 ‘우리는 공식적으로 이것에 대해서 논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지 발언을 할 수 없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전교조가 지금까지 계속 요구했던 부분이기 때문에 지지를 요청한 것인데 함께할 수 없다는 말에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우리가 말 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자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단체들이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불가능했었는데 해냈네’ 이런 반응이었다. 18명이라는 숫자가 애매한 숫자이긴 하지만 지금의 교육체제를 온몸으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선언을 했다는 것이 충분히 의미있고 역사적인 순간이라고 생각한다. 이 것만으로도 기성 단체에게는 충격이 됐는지 이후에는 좀 더 열린 시각으로 바라봐주는 것 같다”

-요즘 기업들은 학력, 학벌 사회에서 벗어나는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졸 채용자들도 늘려가는 추세에 있다. 이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고졸 취업이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 고졸 취업생들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채용은 하지만 기업 안에서 학벌, 파벌로 나뉘어져 있고 그저 고졸 채용자들은 이미지용으로만 활용된다고 한다. 우리가 운동하는 것은 고등학교만 나와도 취업을 시켜달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운동하는 이유는 교육이나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기 위함이다.
이 때문에 기업에서 먼저 '채용을 하겠다', '함께하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어도 내부에서 모두 거절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선언에 모인 사람들 절반이상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이었다. 지금의 교육 체제에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이 스스로 인터넷 찾아 알아보고 검색해서 들어와 며칠 고민하다 참여했다. 먼저 제안을 했지만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SNS 등에서도 예상보다 뜨거운 반응이 있었다. 12일 거리 행동을 진행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지금의 교육이나 사회에 대한 답답함을 느끼고 변화가 필요하다는 고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됐다. 우리의 생각보다 더 뜨겁게 가지고 있었다.
‘투명가방끈’은 앞으로도 함께하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회의를 통해 결정된 활동을 해 나갈 계획이다. 우리의 운동이 불가능하다며 걱정을 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학벌 사회, 입시경쟁을 위한 교육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교육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할 수 있도록 ‘투명가방끈’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셨으면 한다"

 

조해진 기자 sportjhj@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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