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민원봉투 유감 / 강현석 전 고양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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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민원봉투 유감 / 강현석 전 고양시장
  • 강현석 전 고양시장
  • 승인 2017.09.1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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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현석 전 고양시장

사람을 찾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 제게 간단한 봉투를 전해 주신 분을 찾고 있습니다.

별거 아니니 시간 나실 때 읽어 보라 하시기에 민원 서류인줄 알았습니다.

21일 연수를 끝내고 귀국 후 짐 정리를 하며 봉투를 확인한 결과 사진과 같이 미화 1000불이 들어 있었습니다.

헌데 봉투를 주신 분이 누군지 도저히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규정대로 우리시 감사담당관실에 맡겨 놓겠습니다.

기간 내에 찾아 가시지 않으면 규정대로 처리토록 하겠습니다.

마음만 감사히 받았습니다.

경기도 모 시장(市長)이 지난해 8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다. 일부 오자는 편의상 필자가 바로 잡았다.

50개가 넘게 달린 댓글은 ‘감동’, ‘멋진 시장’, ‘청렴’ 등 칭찬 일색이었다. 심지어 ‘국정원 공작’, ‘시장직에서 끌어내리기 위한 반대 세력의 음모’ 등 댓글도 보였다.

현직 시장이 이런 글을 왜? 페이스북에 꼭 올려야 했을까?

달린 댓글을 보면 의도를 했든 의도를 하지 않았든 홍보 효과는 충분히 본 것 같았다.

별거 아니니 읽어보라고 한 봉투를 전달한 사람의 말은 생각나는데 그 사람은 누군지 모르겠다? 이상하지 않은가?

봉투를 준 사람은 시장이 자신을 잘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봉투를 주었을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공항까지 따라 와서 돈봉투를 줄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외국 출장을 가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으로부터 민원 봉투를 받았다면 기사나 수행비서에게 맡겼을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자신의 서류 가방에 넣었을 것이다. 장시간 비행에 심심해서도, 그 민원이 무엇일까 궁금해서도 그 봉투를 열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귀국 후 짐 정리를 위해 봉투를 확인해 봤다고 하는데 선뜻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설령 위의 글이 사실이라고 해도 현직 시장이 이런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은 옳지 않다. 소문내지 않고 조용히 규정대로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했을 것이다.

페이스북에 이런 류의 글을 올린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자신을 지역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비단 필자 뿐일까?

과거 민선 고양시장직을 수행하면서 외국 출장을 갈 기회가 많았다.

시장에 취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처음 중국 출장을 가려고 할 때였다. 어떻게 알았는지 사람들이 인사를 하러 많이 찾아왔다.

단순히 인사를 하기 위해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소위 ‘거마비’라는 봉투를 들고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었다. 아주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마음만 받겠다며 정중히 봉투를 돌려 드릴 수밖에 없었다.

민원내용이 든 봉투라며 나중에 귀국을 해서 조용한 시간에 뜯어봐 주시면 고맙겠다며 봉투를 주고 간 분이 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 봉투를 뜯어보니 역시나 돈이 들어 있었다. 비서실 직원에게 ‘내가 출국한 다음에 그 분을 만나 정중히 사정을 설명하고 봉투를 돌려 드리라’고 했다.

간부 직원들도 몇몇이 봉투를 들고 인사를 왔다.

기분 상하지 않게 정중한 말로 ‘이런 건 받을 수 없다’며 그들을 돌려보냈지만 그들은 영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현지에 함께 간 한 기업인은 책을 들고 호텔방으로 찾아 왔다.

그가 가고 나서 펼친 책속에서 봉투가 떨어졌다. 한사코 마다하는 그에게 끝내 봉투를 돌려주었지만 뒤끝은 영 개운치 않았다.

관내 한 금융기관의 장은 출장을 갈 때마다 봉투를 들고 찾아왔다. 몇 번을 거절당하면서도 그 행태는 계속되곤 했다. 잠시 중단되던 그 행태도 장이 바뀌면 그 행태는 어김없이 되풀이되었다.

그러다가 그 기관장으로 부임을 한 고등학교 선배가 “외국 출장 갈 때 봉투를 받지 않는 일이 무엇보다 고마웠다”고 사석에서 말했다.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지가 항상 고민이었는데 그 고민을 하지 않게 해 주어 고맙다”는 것이었다.

출장을 갈 때면 의례히 벌어지던 이러한 일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소문은 그렇게 빨리 나는 것이었다. 고양시장 취임 2년까지 갈 일도 아니었다.

외국 출장을 갈 때면 간부 직원들이 공항으로 배웅을 나왔다. 필자가 따라 나오지 말라고 해도 공항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이들이 기다리곤 했다. 처음에는 사회단체장들도 이들과 함께 공항에서 배웅을 하곤 했다. 귀국할 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냥 말로만 해서는 안 될 것 같아 공항 나올 시간에 일이나 열심히 하라고 질책을 하자 이들은 더 이상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공항에는 비서실 직원과 담당자 한 둘이면 충분한 것이었다. 지금도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나 경기도 모 시장(市長)의 페이스 북에 올린 내용은 쇼였다. 홍보를 위한 정치이벤트였을까?

돈 봉투를 전한 사람은 모 시청 과장이었다. 그것도 해외 출장을 함께 간 과장이었다.

강현석 전 고양시장 jin980307@hanm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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