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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 “유리천장 깰 수 있도록 사회 변화시키기 위해 정치에 입문”“정부의 아동수당 정책 효과 있을 것…베이비부머 세대와 육아돌보미 연결해야”
“광주 경제 살려야 5.18 정신도 계승 가능할 것” 자립 강조

[KNS뉴스통신=박정민 기자] ‘삼성전자 첫 고졸 출신 임원’, ‘유리천장을 깬 성공한 여성 기업인’이라는 키워드가 늘 따라다니는 더불어민주당 양향자 최고위원(51)을 만났다. 양 위원은 지난 해 8월 선거를 통해 민주당 최고위원으로 선출 됐다. 그는 “다른 사람에게 나같이 될 수 있다, 또는 되어야 한다고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면서도 “그 유리천장을 깰 수 있도록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정치에 입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Q. 성공한 여성의 표본이 되었는데 어린 시절 꿈이 궁금하다.

어린시절에는 선생님이라는 꿈을 가졌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도움이 필요한 친구를 짝궁으로 이어준 적이 있는데 친구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나더러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그 영향을 받아서 아주 어린 시절 꿈은 선생님이나 대학교수였다. 그런데 이후 적성 검사를 하면 99%가 자연계에 부합하게 나오길래 그럼 난 공돌이나 공순이가 되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무의식 중에 계속 가졌던 것 같다. 대학을 안 갈거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중 3 때 아버지가 어느 날 부르더니 '내가 오래 못살 것 같다'고 하셨고 그 때 제가 한 말이 '내가 알아서 할게'였다. 그 날이 원서접수 전날이었고 원서를 인문계에서 상업고로 바꿨다. 그 때는 상업고를 나와야 취직이 잘된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동생 둘을 책임지기 위함이었다. 광주여상이 그 때는 인문계보다 커트라인이 높았다.

Q. 고졸, 여성 등 사회적 편견의 장벽을 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고3 때 담임선생님이 어느 날 오더니 삼성전자 연구원 보조로 가는 것이 맞겠다고 제안을 했고 원서를 내고 합격해서 삼성에 들어간 것이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됐다. 삼성전자 임원 중에서도 연구 임원을 지냈다. 연구 임원은 많이 힘들다. 사람들이 '신화'라고 이야길 한다.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오로지 혼자만 유일하게 걸어온 길이 아닐까 (라고 나도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에 가깝기 때문에 내가 걸어온 이 길을 다른 사람에게 '할 수 있다, 가능하다'고 이야기 할 순 없을 것 같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가능하도록 하는 일이 내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정치권에 들어올 때 결단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남편도 반대를 심하게 했다. '우리 앞으로 함께 살날이 얼마 안남은 것 같다'는 말로 이혼을 할 수도 있음을 내비칠 정도로 반대를 많이 했다. 남편과 함께 (대표 시절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것이 큰 전환점이 됐다. 그 때 당시 문 대표님이 '우리 어디선가 만나지 않았나요?'라고 말씀 하셨는데 실제로 문 대통령과 남편은 고향과 살았던 곳, 생김새가 비슷했다. 남편은 평소 진보적 소견을 갖고 문 대통령을 지지하고 있었고 또 막상 보고 오랜 시간 이야기를 하면서 남편과 나의 마음이 바뀌었다. 이 분과 함께 정치를 함께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문 대통령을 만난 후 남편이 '저 분이라면 믿을 수 있을 것 같다'며 허락했다. 한 정치 평론가가 요즘에 하는 말로 정치신 내림이 있다고 하는데 (내가) 정치권에 들어와서 찌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경쾌하게 일을 하고 있다면서 정치신 내림 받은 것 같다고 했다. (웃음) 현재, 민주당에서 '더불어 어벤저스'라고 김병기, 김병관, 김정우, 이수혁, 박주민, 표창원 등 각계각층의 분야에서 영입을 해 온 인사들이 함께 정책을 연구하고 있다. 원외에 있어도 그분들과의 논의를 통해 의견 수렴을 해 나가고 있다.

Q. 현재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복지정책이 효과를 발휘하리라고 보나.

아동수당을 한 명 당 10만원으로 늘렸는데 취약 계층에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얼마 전에 여가부 장관에게 제안한 게 있다. 그것은 나부터가 회사 다니면서 시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공부까지 함께 하는 등 긴 터널을 빠져나온 사람으로서 그 터널 입구에 서 있는 후배들을 보면 안타깝다. 지금도 결혼 안하려고 하고 아이 안 낳으려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구체적인 정책으로는 '베이비부머 세대와 육아 돌보미를 매칭 시켜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베이비부머 세대 계층(60~80대 노년 계층)을 교육을 시켜서 육아 및 교육 전문가로 양성을 해서 양육이 필요한 아동과 연결을 시켜주는 것이다. 저도 회사 다니면서 제일 힘든 것은 ‘아이가 집에 밥이 없다고 전화가 오는 거’였다. 그럴 때마다 '누군가 우리 집에 와서 아이에게 밥만 차려줄 수 있으면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어르신들의 신분 보장을 해 주고 언제든지 신청하면 어르신들이 와서 아이들을 케어해 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런 세대 간 매칭 시스템 구축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내년 지방선거에 광주시장으로 출마 선언을 했는데 시장으로서 전문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그 퀘스천마크(?)를 어떻게 불식시킬 건가.

지금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그대로 반영될 곳이 내년 광주시장 선거다. 새로운 물결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다. 그동안 광주에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거쳐 갔지만 지금 광주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다. 여타 다른 지역보다도 광주가 심하다. 지금 광주에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재구축하지 않으면 아시아 문화 전당이라든지 기치로 내걸고 있는 5.18 정신 복원도 힘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호남 출신들이 호남에 있는 기업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나갈 수 있는 도시가 돼야 된다는 데 큰 그림을 갖고 있다. 광주에서 살지 않고 타지로 나와서 고생한 것은 저로써 끝나야 한다. 그러려면 기업이 잘돼야 하고 일자리가 많아야 한다. 새로운 산업이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존에 있는 중소기업부터 살려야 한다. 광주가 '기업하기 가장 어려운 곳'이라는 통계가 있다. 행정도 조직이니까 기업과 똑같다. 오히려 지금 광주는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CEO형 시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광주를 살리는 일을 저 혼자만이 아니라 저와 뜻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광주시장이라는 무대에 올라가면 제대로 해내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나는) 가진 것 없이 미천한, 밑바닥부터 이겨내면서 성장해 온 사람이라 소통하고 협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최고다. 지금까지 100이 성공이라면 가진 것은 1밖에 없었고 나머지 99는 노력으로 성취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기술에서 문명적 변화를 이끌어 냈으니 이것을 정치에도 활용해야 한다. 또 호남 정치가 항상 앞서간다고는 하지만 광주에서 광역단체장이 나온 적이 없었다. 광주가 (정치에서) 늘 앞서갔기 때문에 이번에도 함께 하시리라 믿는다. 지금 나는 설레는데 이 설렘을 광주시민들에게 전달해 주고 싶다.

박정민 기자  passion@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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