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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의 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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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원의 시향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1.14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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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가 다시 바뀌어 3학년이 되자 영미시문학을 전공으로 선택 했는데 수강생은 오직 나 하나였다. 교수님은 Miss A. Miller 교수로 당시 53세였으며 미국 Austin College에 교수로 재직하셨고 일본의 와세다 대학에 교환교수를 역임하신 후에 우리 대학에 부임하신 할머님 교수이셨다. 우리를 만나면 언제나 따스한 손길로 손을 잡아 주시고 늘 인자하신 미소와 부드러운 말씨로 우리를 가르치셨다. 우리말을 전혀 한 마디도 이해하지 못하시는 교수이면서도 우리의 어려움을 도맡아 해결해 주시려고 무척 애를 쓰시던 자상하신 할머니이셨다. 

40여 년 전에도 미국 사람들의 생활은 오늘의 한국인들과 같은 삶을 영위하였으며 그 당시에도 주 5일제 생활을 시행함으로 금요일 오후만 되면 거의 모두 승용차를 이용하여 산과 들로 나아가 주말휴가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래도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학교에서 그들을 모델로 삼아 나라의 발전을 기하는데 일익을 담당 하겠다는 거룩하고 신선한 목표를 두고 열심히 노력했다. 이것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큰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영미시문학 시간이 되면 Miller교수님은 나를 자동차에 태우고 사과 밭, 배 밭, 복숭아 밭 등을 강의실로 삼으셔서 학교 근처에 있는 과수원을 많이 찾아 다녔다. 나를 어떤 때는 손자, 또 어떤 때는 학생으로 생각하시면서 손수 과일을 깎아 주시기도 하고 좋아하는 과일은 더 사주시며 보살펴 주셨다. 놀라운 것은 T. S. Eliot을 포함하여 영미시의 작가 음성이 녹음된 테이프를 레코더로 들으면서 교수님과 서로 감상을 애기하며 느낌을 현장에서 즉시로 메모하는 수업이 주가 되었다. 작가의 음성을 직접 듣는 다는 것은 시의 감정을 절반은 확보하고 수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을 때는 나는 진짜 생일날이었다. 교수님이 집으로 초대하여 음식을 무려 20여 가지를 만들어 놓으시고 모든 시험 참고자료는 다 가지고 오게 해서 오전 내내 시험을 보면서 음식을 먹는 즐거움, 두 가지 동작을 동시에 하느라고 나는 꽤나 바빴다. 그때 가장 좋아한 음식은 불고기로 두세 번 정도로 접시를 바꿔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 결과로 불고기는 지금도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 된 계기가 되었다. 너무 배고픈 시절이라 차려놓은 음식을 다 해치울 것이라고 마음을 두지만 밥통이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때도 있었다. 고기를 주식으로 하는 미국인의 집에서는 언제나 구수한 냄새가 나는데 불고기를 요리할 때는 냄새가 곱빼기가 되어 식욕을 계속 갑절로 자극한다.

한 번은 William Wordsworth의 수선화(Daffodils)에서 출제를 하셨는데 내용인 즉 “A host of golden daffodils; Beside the lake and beneath the trees, Fluttering and dancing in the breeze ; 한 무리 모여 있는 황금 수선화; 호숫가 수목이 우거진 그늘 미풍에 나부끼며 춤을 추었소"의 한 구절이었다. 이것에 대한 느낌을 8절지에 가득 차게 영어로 써내는 시험이었다. 논술처럼 서론, 본론, 결론도 없이 감정 그대로를 적는 것이다. 옛날에 과거시험 보는 사람이 그랬을까? 시험시간 절반은 멍하니 생각 하다가 느낌을 간헐적으로 적고 또 불고기 먹으며 한 구절, 과일 먹으며 한 구절, 차를 마시며 한 구절, 디저트를 먹으며 한 구절씩 써내려가 어느 정도 되면 답안지를 제출한다. 참 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복 받은 학생이었으며 스승의 사랑을 독차지한 행운아였다.

나도 우리 것을 알려 드리려고 일연(승려)의 작품인 ‘이차돈의 죽음’을 시리즈로 소개해 드려서 우리나라를 이해하시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했다. 혼자 사시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하는 것을 꽤나 즐거워하시던 교수님이셨다. 나는 우리말로 된 소설이지만 동시통역으로 드라마처럼 읽어 드리고 결정적인 장면이 나오면 다음 시간에 읽어 드리겠다고 약속하고 집을 나섰다. 그러면 교수님은 현관 밖까지 나를 배웅하시며 꼭 약속을 지키라고 채근하셨다.

Austin이 고향이신 교수님은 우리를 졸업시키시고 아무런 작별인사도 없이 훌쩍 고향으로 들어가셨다. 이제는 많이 늙으셨을 것을 생각하면 세월을 붙잡아 멈추게 하고 그 부드러운 목소리를 다시 한 번 듣고 싶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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