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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정연구원] 시민의 정부 원년제진수 수원시 시민소통기획관

"저는 오직 주권자인 시민의 뜻에 따라, 탄생할 정부의 이름은 마땅히 '시민의 정부'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모든 지방자치단체와 의회도 마찬가지로 '시민의 지방정부', '시민의 지방의회'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새로운 사회를 여는 첫 걸음이 될 것입니다"

위 글은 올해 수원시장 신년사의 일부이다. 이전의 신년사와 비교하면 내용과 형식이 확연하게 달랐다. 시청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시민들의 마당인 수원역 대합실이 발표의 무대가 되었다. 주제는 시정의 성과와 계획에서 시대적 과제와 수원시의 역할로 바뀌었다. 발표자 역시 달랐다. 평범한 7명의 시민이 시장과 함께 신년사를 발표했다.

신년사의 요지는 '수원 시민의 정부' 선언이다. '시민의 권리가 살아 숨 쉬는 정부'를 비전으로 설정하고, 참여와 협동 그리고 포용을 핵심 가치로 제시했다. 수원시가 시민의 정부를 선언한 계기는 두 가지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첫째, 수원시가 지난 7년 간 추진해왔던 시민 참여와 자치 그리고 거버넌스의 일보 전진을 위한 디딤돌을 마련한 것이다. 둘째, 시민민주주의의 진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적극적 호응이다. 민주주의 성장에 대한 우리 사회 전반의 요구와 기대 그리고 수원시 차원의 노력과 고민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이다.

'수원 시민의 정부'를 선언한 염태영 수원시장이 올 초 신년사를 미치고 평범한 시민들과 인사를 하고 있다.

시민이 주인인 휴먼시티 수원

먼저 수원시의 도전 과정을 살펴보자. 수원시는 지난 2010년 출범한 민선5기를 '휴먼시티 수원'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시작했다. 이는 행정의 대상으로 존재했던 시민들을 행정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상징적 시도였다. 이런 문제의식에 기초해 '자치1번지'로 전환하기 위한 역점 과제들이 추진됐다.

대표 사례들은 시민들의 시정 참여를 확대하는 좋은시정위원회, 시민들이 예산 편성과 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주민참여예산제, 주민 주도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마을르네상스, 시민 눈높이에서 도시의 미래를 설계하는 도시정책 시민계획단, 주요 갈등 사안을 시민들의 숙의를 거쳐 결정하는 시민배심원제도, 도시재생관련 갈등을 시민단체와 협력하여 해법을 찾아가는 도시재생분쟁상담센터 등이다.

2014년 '사람 중심, 더 큰 수원'을 지향하며 시작한 민선6기에도 시민 참여와 자치(自治)의 확장을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졌다. 기존 사업을 양과 질의 측면에서 보완하는 동시에 수원시인권센터와 시민자치대학 설립, 시장과 시의원이 시민의 의견을 직접 듣고 함께 해답을 찾아보는 참시민토론회, 어린이들이 직접 설계에 참여하는 꿈꾸는 놀이터 등 새로운 사업을 통해 시민들이 시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이 넓어졌다. 한 전문가는 이런 수원시의 모습을 보고 시민 참여사업의 실험장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

수원시 도시정책 시민계획단의 활동이 초등학교 4학년 사회교과서에 시민참여의 모델사업으로 소개되고 2013년에는 UN해비타트 대상을 수상했다. 주민참여예산제는 2011년 청소년위원회와 2015년 대학생위원회 구성 등 전국 최초의 시도들로 주목을 받았다. 500인 원탁토론과 시민배심원제도 또한 시민참여의 모델로서 수원의 브랜드가 되었다.

마을르네상스 사업에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1만2312명이 공모사업에 참여했고, 주민교육에 3,224명에 이르는 주민이 참여했다. 일반적으로 제도 혁신의 성과를 좌우하는 요인으로 새로운 제도의 참신성과 지속성을 꼽는다. 외부 기관들이 수원시의 시민 참여 사업을 평가하면서 가장 큰 강점으로 바로 이 꾸준함을 꼽는다.

하지만 새로운 고민과 과제가 뒤를 이었다. 첫째, 다양한 주제와 방식으로 진행되는 시민 참여 사업들을 공통의 지향점을 담은 하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둘째, 시민 참여 사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추진할 방안은 무엇인가? 셋째, 새롭게 발굴해야할 시민 참여의 영역과 분야는 무엇인가? 넷째, 다양한 시민 참여제도와 사업들은 수원시 시민민주주의 발전에 양적으로 그리고 질적으로 얼마나 기여했는가?

'시민의 정부'는 첫째 과제에 대한 수원시의 해답이다. '시민의 정부'는 시민의 권리를 더욱 강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사업들을 포괄하는 개념이자 지향점이다. 둘째 과제는 시민의 정부 기본계획 수립, 시민자치헌장인 자치기본조례 제정, 민주시민교육체계 구축, 인권영향평가제도 도입, 온라인플랫폼 구축, 시민의 정부 전담팀 신설 등을 통해 보완 과정을 진행 중이다. 셋째 과제는 주민자치회의 혁신 추진, 아파트민주주의 활성화, 개방형 공직공모제 도입, 시민가디언제 등을 주요 실행 과제로 추가했다. 넷째 과제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해보려는 시도이다. 시민 인식조사와 행태 변화 측정, 시민정치 활성화 등에 대한 타 지역과의 비교연구를 통해 기초적인 분석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촛불혁명의 시대

사실 '시민의 정부'라는 용어는 서구 정치사에서 민주공화국의 개념이 형성되어 온 역사를 보면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이름이다. 하지만 수입된 민주주의라는 태생적 한계에 더해 독재정권이 만들어놓은 퇴행적 민주주의, 무늬만 민주주의였던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우리에게는 미래 과제에 해당한다. '시민의 정부'는 우리 사회 전체의 고민 혹은 시대 정신과 분리될 수 없다는 수원시의 선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에 불공정과 불평등 구조가 심화되면서 청년세대와 사회적 약자들을 '희망 없는 세상'으로 떠밀어 넣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각해진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헬조선'과 '탈조선'은 점점 굳어져가는 듯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최순실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하여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자 주권자들의 인내는 한계를 드러내게 되었다.

최순실사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이 하나둘 광장에 등장했다. 시작은 이전에 보았던 광장 집회의 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봇물 터지듯 참가자가 늘어났다. 자발적으로 손에 손을 잡은 참가자들은 시나브로 광장의 일부가 되었다.

부지불식간에 시민적 연대가 거대한 삼각파도로 변했다. 그들의 행동과 주장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에 보장된 나의 권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연인원 2천만 명의 목소리는 결국 대통령의 위헌적 일탈행위를 단죄했다. 민주주의 역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평화적 시민혁명의 모델이 된 것이다. 1987년 민주화투쟁의 상징물이었던 최루탄과 짱돌을 2016년에는 광장의 촛불이 대신했다.

시민, 오래된 미래

촛불혁명의 주체는 시민(市民, citizen)이다. 이것은 정치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국민이라는 용어와 대비해보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국민은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을 가리키고, 책임과 의무의 담당자를 의미한다. 이 용어에서 권리의 원천이자 주체라는 의미를 찾아내기는 어렵다. 심지어 국민은 일제가 만든 황국신민의 줄임말이기도 하다. 국민은 통치기구로서의 국가에 조응하는 통치의 대상을 지칭하기 위해 고안된 개념인 것이다. 서울대학교 송호근 교수의 지적은 이런 진단과 맥을 같이한다.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산다. 미숙한 시민은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반세기 넘게 동원되었다....국민에서 탈피해 진짜 시민으로 거듭나야 한다. 시민적 가치에 입각한 시민적 동의와 참여를 존중하는 시민민주주의로서의 정치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의 산물로 탄생한 선언문이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이다. 자연 속에서 태어난 인간과 구별되어 공동체의 새로운 정치적 구성원으로서 역사의 전면에 나선 계층이 스스로를 '시민'이라고 이름 붙인 것이다. 서구 민주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시민이라는 개념은 "개인의 자유와 해방에 대한 책임과 공동체의 힘과 번영에 대한 책임을 함께 가진 사람"을 뜻한다. 따라서 국민이 아닌 '시민' 개념을 내세움으로써 우리 민주주의의 현재를 가늠하는 동시에 미래의 과제를 제시하려는 것이다.

촛불혁명은 시민들이 정치권력의 원천이며, 정부가 시민을 배신하면 언제든 새로운 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을 새롭게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또한 시민이 권리의 주체인 동시에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에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점에서 이후 시민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청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영국의 시민혁명, 프랑스혁명, 미국독립혁명, 우리나라의 동학농민혁명, 4.19민주혁명, 6월민주항쟁 등 시대를 뒤흔든 격렬한 풍파와 산고의 진통을 거치며 큰 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또 다른 진실은 일상에서, 마을에서 그리고 교육의 장에서 토론과 학습 그리고 작은 실천들의 축적을 통해 진화해왔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촛불과 광장의 민주주의가 지역과 생활 그리고 현장민주주의로 확산되어야 하며, 이것이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성숙을 위한 핵심 과제라고 판단한다.

지방분권, '시민의 정부'의 필수조건

시민의 정부는 국가보다는 지역에서 더욱 중요하다. 민주주의란 자치라는 기둥 위에 세워진 집이며, 자기통치(self-governing)의 체험에서 시작한다. 지방자치가 민주주주의 학교라 불리는 것은 민주주의의 싹이 가정에서 움트기 시작되며, 지역과 생활세계라는 마당을 통해 성숙되고, 확장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지방의 상황은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없는 황무지다. 시민들이 권력을 부여한 정부임에도 자치단체로 불리며, 중앙정부에 예산, 조직, 사무 등이 구조적으로 종속되어 있다. 8:2 구조로 불리는 예산의 불균형은 지방자치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시민들이 선출한 지방의회가 만든 규칙은 법률이 아니라 조례라 불린다. 중앙정부의 시행령에 끌려 다니는 초라한 존재다.

현재의 선진국들이 선진국이 되어서 지방분권을 실천한 것이 아니라 과감한 지방분권을 통해 선진국이 되었다는 엄연한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공동체에 책임을 지는 건전한 시민은 국가의 훈육이 아닌 지역사회가 조성한 민주주의의 텃밭에서 성장한다. 민주주의 선진국인 스위스 중앙정부에는 교육부가 없다. 교육은 애초부터 지역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경찰과 소방서 또한 지역의 소관이다. 중앙정부가 권력에 미련을 버리는 것이 국가운영의 효율성을 높이고, 정치의 안정과 지역 통합 나아가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하는 지름길이다.

지역분권형국가를 향한 움직임은 이미 시작되었다. 열악한 자치 상황 속에서 재정 개선, 맞춤형 복지, 거버넌스행정 등 혁신의 성과들을 통해 지방정부들은 유권자들로부터 지방자치의 역량을 검증받았다. 촛불시민이 창출한 새 정권 또한 연방제에 준하는 지방분권을 핵심 국정과제로 선정했다.

그리고 내년 6월 지방선거와 함께 지방분권형국가를 포함하는 개헌투표가 예정되어 있다. 지난 7월 17일 실시된 한국일보의 조사에 따르면 지방분권을 지지하는 여론이 60%에 이르고 있다. 2018년은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한 단계 도약하는 해가 될 것이다.

'시민의 정부'는 현재진행형

'시민의 정부'로 나아가는데 있어 수원시 행정의 역할은 마당을 만드는 것이다. 시민 의견에 따라 제도를 만들고 참여의 장을 펼치고, 공론이 확대되도록 촉진자의 소임을 담당해야 한다. 시민을 손님으로 인식하는 기존의 행정관행으로는 실현할 수 없다.

시민의 참여는 행정의 효율성이라는 단기적 차원이 아닌, 시민들과 협력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체제를 구축한다는 의미에서 장기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기획되고 설계된 시민참여의 방식 혹은 제도는 공적 참여의 활성화를 촉진하고 정책 집행의 정당성을 높이는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다.

'시민의 정부'는 국민들이 시민으로서 공적 영역에 일상적으로 참여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시민을 광장에 한 데 모으는 형식논리의 산물이 아니라 시민의 삶과 생활 터전 곳곳에 모세혈관처럼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방법과 절차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항상적으로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을 때, 그리고 수원시가 이에 응답할 때 최소한의 민주주의, 최소한의 시민권이 보장되어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수원의 민주주의는 지금도 쉼 없이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시민자치대학의 강의실에서, 500인 원탁토론의 테이블에서, 참시민토론회의 마이크 앞에서, 아파트민주주의 토론회에서, 마을르네상스의 현장에서 각자 자신만의 속도와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다.

민주주의에 완성은 없다. 오늘보다 나은 민주주의는 오직 그것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민주주의의 일보 전진에 기여하는 수원의 도전에 더 많은 기대를 걸어본다.

KNS뉴스통신  kns@kns.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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