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4:44 (수)
[인터뷰] 마빈 햄리시 국제 영화음악 작곡 컨테스트 아시아 최초 수상자 작곡가 윤미화씨와 영화음악 컴퍼니 'DSL' 설립 작곡가 한세용씨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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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마빈 햄리시 국제 영화음악 작곡 컨테스트 아시아 최초 수상자 작곡가 윤미화씨와 영화음악 컴퍼니 'DSL' 설립 작곡가 한세용씨를 만나다.
  • 김혜성 기자
  • 승인 2017.07.02 2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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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 컴퍼니 DSL을 공동 설립한 작곡가 한세용씨(좌측)와 작곡가 윤미화씨. 윤미화씨는 마빈 햄리시 국제 영화음악 작곡 컨테스트 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입상의 영예를 안은 작곡가 이다.<사진=김영심 기자>

[KNS뉴스통신=김혜성 기자] 아카데미, 토니, 골든글러브, 그래미 작곡상, 그리고 퓰리처상 음악상을 모두 거머쥔 헐리웃의 전설적인 영화음악 작곡가 마빈 햄리시(1944~2012)를 기리기 위해 재정된 마빈 햄리시 국제 영화음악 작곡 컨테스트 에서 작년 가을, 전 세계에서 참여한 수천명의 작곡가들과 경쟁 끝에 아시아인 최초로 입상의 영예를 안은 작곡가 윤미화(27) 씨와 그와 함께 영화음악 컴퍼니 ‘DSL’ 을 함께 설립한 작곡가 한세용(30)씨를 만났다. 윤미화씨는 중앙대에서 작곡과 영화연출을 공부하고 도미하여 뉴욕대 (NYU) 에서 영화음악 작곡 석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다.

편집자 주 

Q. 영화음악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

윤미화 (이하 ‘윤’) :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와 첼로를 배우며 음악에 심취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영화 보기를 즐겨했습니다. 당연히 토마스 뉴먼(Thomas Newman) 같은 뛰어난 영화음악가의 음악들에 깊은 감명과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후 유튜브 등을 통해 당대 최고의 영화음악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공부를 했다. 중앙대학교에 진학 후 자연스레 작곡과 더불어 영화를 함께 공부하게 됐다.

한세용 (이하 ‘한’) : 음악을 시작한 이래로 보컬이 들어간 음악들보단 재즈나 오케스트라 등의 연주곡 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다. 다양한 악기들의 조화, 색채감, 그리고 솔리스트들이 만들어내는 프레이즈에 매료되었고, 피아노에서부터 밴드, 나아가 오케스트라 편성까지의 음악들을 공부했다. 또한 초등학교때부터 플레이스테이션 등의 콘솔게임에 빠져들었는데, 파이널 판타지 같은 RPG 게임 등이 주를 이뤘다. 덕분에 다양한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게임 속 스토리텔링 구조에 눈을 뜨게 된 셈이다. 영화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간과해서는 안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Q. 윤미화씨가 입상한 마빈 햄리시 국제 영화음악 컨테스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

윤: 2012년 타계한 영화음악가 마빈 햄리시 (MARVIN HAMLISCH)를 기리기 위해 그해에 창설된 국제 필름뮤직 작곡 콩클 이며 매년 개최된다. 주최측으로부터 미리 주어진 공통의 ‘단편영화’에 참가한 작곡가들이 각자의 음악을 만든 후 영상에 입혀 출품하는 형식이다.  영화음악 작곡가의 등용문 격으로 해마다 전세계에서 참여한 수천명의 작곡가들이 지원하고 있다. 마빈 햄리시 (1944-2012) 라는 이름은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일 텐데, 생전에 50여편에 달하는 헐리웃 영화와 브로드웨이 뮤지컬, 그리고 재즈에서 팝뮤직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다양한 장르에 걸쳐서 수많은 히트작을 남긴 전설적인 작곡가이다. 아카데미상 작곡상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토니상 작곡상 (브로드웨이 뮤지컬 '코러스 라인') 그리고 골든 글러브상 작곡상 ('The Sting'), 그래미상을 모두 석권한 전세계 몇 안되는 작곡가 였다.  작품의 면면을 보면 누구나 아는 명작들이 많다. 우디앨런과 스티븐 소더버그 등 소위 ‘영화천재’ 들이 선호하는 작곡가 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가 아시아인 중 최초의 입상자이자, NYU 영화음악 작곡 졸업생 중 최초로 입상한 덕에 NYU 학과장님과 나를 가르친 스승님 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많은 칭찬을 받았다.

Q. NYU 영화음악 석사과정으로 유학을 가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윤 : 맨해튼은 작은 섬이지만, 그 작은 섬 안에 산업적 예술적 인프라가 모두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인적 네트워킹을 구사하기에 그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NYU 가 서부의 USC 와 더불어 최고의 필름스쿨을 보유한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고, 그 덕에 많은 예술가들 즉 작가, 필름메이커, 뮤지션과의 교류도 쌓을 수 있었다.

Q. 영화음악가가 되기 위해선 어떤 것들이 갖춰야 한다고 생각하나?

윤 : 극에 대한 이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본다. 물론 작곡과 화성, 그리고 편곡과 프로덕션에 대한 실력이 충분히 있어야 하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영화음악을 작곡하는 사람은 대본을 쓴 작가와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먼저 분명하게 파악한 후, 그 메시지를 관객들에게 음악을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다.

한 : 음악적인 기본기가 없이 영화음악을 하려는 분들은 없다고 본다. 저는 여기에 더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지식, 사람에 대한 이해, 즉 철학과 인문학에 관한 기본적 소양이 아닐 까 한다. 그것이 없다면 작곡가는 오로지 멜러디 작곡이나 DAW 프로덕션 같은 기능적인 면에 함몰되기가 쉽다. ‘영화음악가’ 는 싱글챠트에 올라가는 탑텐 히트곡을 쓰는 작곡가 분들과는 영역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종합예술이라고 하지만 핵심은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앞서 미화씨가 이야기 했듯 감독과 작가가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음악을 통해 효과적으로 잘 뒷바침 해야 하기 때문이다.

Q. 좋아하는 영화음악가는 누구인가?

윤: 영향을 준 분들이 많다. 그래도 굳이 한 분만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토마스 뉴먼 이라고 할 수 있다. 아메리칸 뷰티, 니모를 찾아서, 쇼생크 탈출 등 많은 장르에 걸쳐 걸작을 만든 분이다. 그분이 작곡한 영화음악들은 음악 자체로도 예술성과 상업성을 모두 겸비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먼저 영화 자체와 너무나도 잘 녹아드는 조화가 일품이라고 생각한다. 즉, 관객의 입장에서 볼 때 음악이 영화보다 먼저 튀지않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이 세가지를 모두 이뤄낼 수 있는 탁월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아는 존 윌리엄스, 엔니오 모리꼬네 등의 작곡가들을 흠모하며 점차 영역을 넓혀 나갔다. 최근에는 음악 장르의 구분없이 최대한 많은 곡들을 듣고 모방하고 분석하고 있다. 영화의 장르가 제각각 이어서 음악 역시 장르의 구분이 없이 쓰일 수 있는 만큼, 작곡 역시 편식을 하지않고 최대한 다양한 음악을 접하면서 공부하고 있다.

Q. 두 분이 영화음악회사인 DSL을 함께 설립한 이유는? 다른 영화음악 제작사와 차별화되는 점이 있다면?

윤 : DSL은 Digital Storytelling Lab 의 약자이다. 따라서 기능적으로 단지 후반작업 (포스트 프로덕션) 에서 영상에 어울리는 음악을 만들어내는데 그 목표를 두는 것이 아닌, 좀 더 극의 본질적인 면에 부합되는 음악을 만들어 내고 싶다. 최근에는 테크널러지의 눈부신 발달덕에, 여러가지가 이미 프리셋 된 장비만 가지고도 꽤 괜찮은 음악들을 뚝딱 만들어 내기가 쉬워졌다. 때문에 웬만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객분들은 어느 것이 좀 더 공을 들인 창작물인가를 알아내기가 힘들게 되었다. 하지만 DSL 은 그보다는 좀 더 본질적인, 감독과 대본을 쓴 작가가 하려는 말을 좀 더 진지하고 깊이 있게 음악을 통해 전달하고 싶다. 대학에서 영화를 공부하면서 장편 시나리오 습작들을 쓴 적이 있다.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읽는 사람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점에서 작곡을 하는 것과 유사함이 많다는 것을 느꼇다.  탄탄한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하듯, 저희도 음악을 통해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다.  또한 프러덕션 업무 외에도, 필름 스코어링 교육을 통해서 예술과 인문학, 테크널러지가 융합된 STEAM 교육 (( 과학(S), 기술 (T), 공학 (E), 예술 (A), 수학 (M)) 분야로도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분야인지라 뉴욕의 교수님들, 현지 업계 지인들 과도 많은 토론을 하고 있다.

한: 윤미화씨와는 대학 2년 선후배 사이지만, 제가 군 제대 후 복학한 시점부터 쭈욱 수업을 같이 들었다. 음악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이 많았고, 무엇보다 이런저런 프로덕션 작업을 함께하며 실제 일 적인 측면에서도 각자의 모자라는 부분을 조화롭게 채워주는 것 같다. 때문에 미화씨가 NYU 에 유학중에도 항상 여러가지를 함께 토론하고 의논하곤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함께 DSL 을 설립하게 된 것이다. 현재 DSL 은 미국 독립영화 제작자들의 작품에 참여하고 있다. 이외에도 블로그와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훌륭한 영화음악이나 영화음악가, 그리고 영화음악이 만들어 지는 과정들을 소개하는 일들도 활발히 하고 있다.

김혜성 기자 knstv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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