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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이타(自利利他) 행(行)을 실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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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이타(自利利他) 행(行)을 실천하자
  • 박동웅 기자
  • 승인 2017.06.29 12: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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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 나눔과 불교복지 실현 위해 힘쓸 터
불굴사 덕조 주지스님

[KNS뉴스통신=박동웅 기자] 원효대사와 김유신 장군의 설화가 담긴 신라 고찰인 대한 불교조계종 불굴사(주지 덕조스님,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는 신라 신문왕 10년에 창건된 것으로, 융성기에는 대사찰이었으나 영조 12년 홍수로 인해 크게 파손된 후, 순천 송광사의 한 노승이 현몽해 현재 위치에서 중건했다고 전해 진다. 현재 불굴사 경내에는 통일신라 9세기 작품으로 높이 7.43m인 불굴사삼층석탑(보물 제429호)과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굴사 석조 입불상(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401호)이 보존되고 있다.

불굴사 입구에서 우측으로 돌아 암벽에 설치된 계단을 오르면 석굴로 된 홍주암이 나온다. 원효굴로 알려진 이 석굴은 불굴사가 창건되기 이전에 원효대사가 수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김유신 장군이 17세 때 홀로 중악의 석굴에 들어가 삼국통일을 기원하며 기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천년고찰에는 산수를 찾아서 마음을 닦으려고 했던 많은 선인들의 입김이 서려 있다. 이처럼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모든 만남이 씨앗이 되어, 그로 인하여 인과 연의 씨줄과 날줄이 교차하여 다시금 새 인연을 맺게 되는 불교의 철칙 속 에서 어느 누구를 함부로 대할 수 있으며, 또 누구라도 삶을 무성의하게 살 수 있겠는가. 불가(佛家)에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지혜까지도 인연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본지에서는 佛紀 2561년을 맞아 천년고찰 주지 덕조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불굴사 덕조스님은 “생멸법에 놓여 있는 모든 존재는 번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불교는 삶의 실존적 실상이 ‘고 (苦)’라고 본다. 그러므로 괴로움에서 벗어나 내면의 평화와 진정한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있다”며, “우리는 먼저 ‘나를 살피면서 남을 이롭게 해주겠 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원 속에서 살아가는 불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참된 불자가 되어 참된 향상의 길, 더나아가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불교는 스스로 깨우쳐가는 자력적인 종교로 연기(緣起)적인 삶을 지향하는 종교이다. 그래서 타인과 세상을 바꾸려하기 전에 자신부터 변화해야 해서, 서로 돕고 웃고 나누다보면 우리의 의식은 점점 높아져 가고 신성한 존재로 바뀌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신의 오염을 씻고 어두운 마음을 밝히자
끝 모를 무한경쟁의 시대, 우리의 삶은 한없이 고단하고 행복은 멀어져만 보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좀처럼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평온하고 지혜로운 삶을 찾아, 불교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만 간다. 특히 현대 인들이 천년고찰을 찾아 안정감을 얻는 것은, 어쩌면 자기 자신이 지금 어떤 지표를 어떻게 설정하고 걷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기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 또한 정신의 오염을 씻어 내리고 어두운 마음을 밝히기 위해 관문을 두드려보고자 함일 것이다.
덕조스님은 “사람들이 발길을 멈추지 않고 고즈넉한 산사를 찾는 것은 진실로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 가를 생각해보고, 부처님 곁에 잠시나마 앉아서 자기 성찰과 함께 편안한 마음을 간직하고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덧붙여 “불교에서는 깨달음 이전에 먼저 사람이 훌륭히 살아가는 일 그 자체로서, 불자님들도 질 높은 삶을 살아가며 행복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붓다가 이 세상에 출현한 큰 뜻은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불성(佛性)을 깨달아 부처가 되게 하려는데 있다. 비록 모든 생명체가 제 스스로 이 세상의 주인이고 자신의 행위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진리의 실상이지만 이런 진실은 불성을 깨달음으로써만 가능한 것이지, 이를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면 주인 노릇도 행복한 삶도 성취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
‘구도의 길은 이런 것이다’라고 몸소 2500년 전에 인류를 위해 온 몸을 던져 가면서 붓다가 얻은 결론은 한마디로 서로 돕는 것이다. 서로 돕고,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고, 또 웃고 나누다보면 그런 사회가 바로 광명세계가 아닐까 생각된다.

갈 곳 없는 노스님들 위한 요양터전 절실해
불굴사 덕조스님은 부처님의 자비를 몸소 실천하고자 매년 신도들의 후원금을 모아 어려운 지역민들에게 사랑의 쌀을 기탁하고 있으며, 평소에도 나눔으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어 주위의 귀감이 되고 있다.

덕조 주지스님은 “예전부터 사찰에서는 어려운 사람들을 음으로 많이 도와주었다”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불교인이 가져야 하는 덕목”이라고 전했다. 또한 “우리의 모든 것을 결국은 자연에 되돌려줘야 하듯 이,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은 결국 누군가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며, “복지의 사각에서 고통 받는 어려운 분을 돕는 것도깐 동안 내가 점유하고 있는 것들을 더 필요한 사람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그러나 “정작 한평생 수행과 전법에 매진하던 노스님들의 안타까운 사연은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며, “사중에 거주하지 않는 상당수의 노스님들이 치매·중풍으로 거동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복지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특히 “선방에서 평생을 수행에 정진한 노스님들이 병마에 시달릴 때 아무런 보살핌이 없는 것이 현실로서 이들을 뒷받침하는데 미약하나마 힘이 되고 싶다”면서, “그 분들을 보살피기 위해 얼마 전 신도회장의 도움으로 대출을 받아 조그마한 부지를 마련해 터를 닦고 있다. 그런데 살림이 넉넉지 않아 언제 완공이 될지 모르지만, 그 분들이 쉬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 노후 거주도량 건립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 밝혔다.
덕조스님이 쉼터를 마련하게 된 계기는 4년 전 겨울로 거슬러 올라간다. 스님이 영천 은해사내 중암암에 주지로 있을 당시,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남루한 가을 승복을 입은 남루한 차림의 노스님이 방문했다. 덕조스님은 노스님을 밖으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여기서 같이 지내자”고 당부했지만, 한 달 정도 기거했던 노스님이 어느 날 “잠시 삼척에 다녀오신다”는 말을 남긴 채 돌아오지 않았다.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고 나서 서울의 어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와서 동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고자도 없이 떠돌던 스님의 수첩에 덕조스님의 전화번호만 크게 적혀있 었다. 덕조스님은 “불교계의 발전이 그런데서 더뎌진다”며, “노스님의 쉼터를 시작으로 미혼모, 다문화가정 등, 복지사 각시대에 놓인 어려운 분들을 돌볼 수 있는 바탕을 조금씩 마련하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승단의 고령화시대를 앞두고 승려노후복지에 대한 근본 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심지어 덕망 높은 큰스님도 노후 불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덕조스님은 앞으로 노후 거 주도량을 조성하고, 거동이 불편한 노스님들을 위해 간호시 스템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포교와 수행에 전념하는 스님들은 병마로 인한 고통, 경제적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지만 가장 큰 문제는 사실상 수행 자로서의 본분을 지키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병마에 시달리면서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스스로 감내하는 경우도 많다. 수행자로서 스스로 건강을 지키지 못했다는 주변의 시선으로 인해 투병사실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이다.

앞으로 덕조스님의 노후 거주도량이 잘 조성되어 몸이 불편한 노스님들이 여생을 불편함 없이 보낼 수 있는 노후수 행도량으로 자리매김 할 것으로 기대해본다. 또한 불굴사는천 년 전 과거에도 정법이 꽃 피어났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정법이 피어나, 진실을 기반으로 안녕과 평화가 넘치는 불국토가 이루어지기를 염원해본다.

박동웅 기자 v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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