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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 골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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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 골의 기적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24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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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실패의 응어리로 인하여 1주일여의 두문불출의 고집을 꺾은 다음에 이번에는 법대를 목표로 어금니를 깨물고 머리에 두건을 두른 채 독학으로 재수의 길에 접어들었다. 1년을 까먹었으니 2학년 때에 고시에 패스하겠다는 마음으로 각오를 다잡았다. 입시준비를 다하고 독일어만 공부할 계획을 남기고 잠시 가을바람을 쏘이려고 주위를 산책하는 길이었다.

당시에는 신문이 귀한 때라 입시정보를 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길을 걷다가 발걸음을 멈추고 종이장사 앞에 놓여 있는 신문지에 눈길이 갔다. 바짝 다가서서 광고를 보다가 모 사립대의 특대장학생 모집 기사가 눈에 들어와 자세히 살펴보고 응시결심을 하게 뙤었다. 왜냐면 장학생 시험이니까 전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자들이 모여들 것이기 때문에 이런 기회에 저들과 한 번 자웅을 겨루어 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겨나서였다.

그 해 9월……. 참 날씨도 좋고 널 푸름을 자랑하는 파란 하늘을 모처럼 볼 수 있었다. 거의 시간의 전부를 책과 시름하다보니 햇볕을 쪼일 날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아주 공기가 시원하고 가슴이 탁 트임을 느꼈다. 그 판자 집의 좁디좁은 방안에 여름에는 모기장 속에 책상을 집어넣고 마치 두더지처럼 책에 파묻혀 있어야 했으니까.

그런데 입시요강에 내가 지원하기에 무리한 내용이 있었다. 당시 이 대학은 미션스쿨로 지원서에 교회에서 발행하는 학습이나 세례증명서를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궁리한 끝에 집 근처에 있는 교회에 찾아가 교회에 다니기로 약정을 해드린 후에 가까스로 서류를 준비하여 대학으로 발길을 옮겼다. 버스를 타고 한참 달린 후에 현장에 도착하여 서류를 접수시키고 본 대학 탐방에 나서 내용을 다방면으로 탐구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내가 예수 이름을 듣게 된 첫 번째 경험이었으며 장로가 된 지금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하나님의 섭리였다고 생각된다.

마침 영문과로서는 전국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 현장에 있던 재학생이 살짝 귀띔을 해주었다. 미국 교회의 지원을 받고 있어서 선교사들이 주 교수가 되어 거의 전 과목을 영어로 강의하는 대학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했다. 서울대를 목표로 했던 나로서는 다소 의아심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막연히 먼 산에 있는 장미가 집의 것보다 더 아름답겠지 하는 상념 때문에…….

그때는 입시정보가 별도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당일 모여든 숫자를 보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아침에 모여 지시사항을 듣는 수험생들이 운동장을 가득 메웠다. 특대장학생 모집이라 예상한 대로 많은 실력자들이 운집했다고 생각하고 한편으로는 잔뜩 겁을 먹고 단단히 긴장의 끈을 졸라매었다. 어떻게 하든 간에 여기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절박감을 절실히 느끼고 인솔행렬을 따라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오전 내내 시험을 보는데 전 과목의 가채점 결과 틀린 것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아주 만족한 성적을 달성한 생각이 들어 안심을 한 다음에 오후에 발표하는 결과를 기다리면서 농구장으로 나가 계속해서 골인 연습을 했다. 땀이 범벅이 되어 진정한 다음에 발표장으로 갔는데 합격자 5 명중 두 번째로 내 이름이 적혀 있었다. 합격의 기쁨보다는 순간 나는 모든 것을 다 포기하고 이 대학에 몸을 담아야 할지를 놓고 망설이다가 집을 향해 걱정스런 마음으로 돌아갔다.

한편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시던 어머니는 편찬하신 몸으로 계시다가 “네가 용을 타고 올라가는 꿈”을 꾸셨다고 하시면서 합격을 미리 예견하시고 아들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계셨다. 그러시면서 장학생이 되었으니 이 대학에 한번 다녀보고 1년 후에 결정을 다시 해보자고 의중을 보여주셔서 순종하기로 하고 학점유지를 위하여 열심히 학업에 충실했다.

듣던 대로 모든 과목이 영어로 수업을 하며 심지어 대학국어도 미국 유명대학의 출신이라는 한국인 교수가 우리말과 영어를 반반으로 수업을 하는 실정이었다. 또 미국식 교육원칙에 의한 것인지는 몰라도 인문계인 영문과생들에게도 기초과학 습득을 교양필수로 했다. 화학실험을 위해서 영문으로 된 큰 실험서의 해당실험 자료를 사전에 번역하여 조교로부터 인정받은 자만 실험입실이 허용되기도 했다. 실험실에는 테이블을 비롯하여 처음 보는 수 십 가지의 실험기자재들이 항상 실험을 위해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에 ‘spatular'라는 단어가 있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주걱‘이라는 뜻이었다. 용도를 잘 몰라 그대로 써서 실험 내용을 제출하고 조교에게 갖은 아양을 떤 적이 있었다. 나중에 실험을 통하여 알고 보니 가느다란 철사 끝을 망치로 두들겨 납작하게 만들어 시약용 수저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만드는 자에게만 시약을 주고 실험을 할 수 있게 했으니……. 또 물을 비커에 넣고 알코올램프로 가열했을 때 지금 수소가스가 나오고 있다고 해서 튜브를 갖다 대고 불을 붙였더니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것이 수소폭탄의 원리가 된다고 교수는 설명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소를 귀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물론 어학실험실에 들여놓고 사정없이 영어의 귀를 만드는 일은 필수코스였다.

베드로가 주님을 모시고 여기가 좋사오니 했던 것처럼 그 이후 여기가 내 영어전공의 산실이 되게 하겠다는 굳은 의자가 활화산처럼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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