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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거리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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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거리다리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17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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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간에 영어수업으로 인하여 강하게 인상을 받게 되어 학교생활이 나날이 열심히 하는 공부하는 쪽으로 변화를 갖게 되었고 차츰 어린 시절의 놀이를 단절하고 학교생활에 전념하게 되었다. 동성 리에서 학교까지 도보로 대략 5km 정도 걸렸으며 그 중간에 사주거리 다리가 있는데 트럭 한 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좁은 교량이었다.

가끔 군인트럭이 급커브 좌회전할 때 느린 속도를 이용하여 우리는 누가 먼저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먼저 가방을 차에 던져 넣고 한손으로 트럭 뒷문 손잡이 끝을 단단히 붙잡음과 동시에 먼저 차에 오른 친구가 손을 붙잡게 하고, 다른 손은 차의 손잡이 위턱을 붙들고 다리 하나는 차의 턱받이에 대고 다른 다리는 교량 난간을 디디며 50m 정도의 곡예를 하면서 무임승차로 등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사를 건 아찔한 모험이었던 것 같다.

가을 햇살에 황금물결로 가득한 도로를 걸으며 적어놓은 단어장을 꺼내어 하나씩 중얼거리며 길을 걷는다. 들판을 쳐다보면 무수한 조그만 게(갈게)들이 수시로 제집을 들락거리며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당시에는 청정공기라서 도랑에 흐르고 있는 물을 그냥 퍼서 먹어도 괜찮을 정도로 쾌적하였고 거의 다 비포장 도로였다. 우리는 자동차가 아주 귀한 때라 그랬는지 몰라도 휘발유 냄새가 왠지 구수한 것 같아 오히려 더 맡으려고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차의 뒤를 쫓아 간 적도 있었다.

연무대에서 강경으로 기차통학을 할 때 새벽 4시에 기상하여 아침밥을 먹고 5시 출발하는 통근열차에 몸을 싣는다. 객차도 없이 화물칸만 마련되어 있어서 우리는 문짝을 열고 입구에 10명 정도로 병아리처럼 앉아 몸을 찰싹 붙인 채 도란도란 얘기하며 아침이슬을 맞아가면서 1시간 정도 걸려서 학교에 등교한다. 또 하교 시에는 열차가 고개 마루를 오를 때 저속으로 달리는 것을 이용하여 어떤 아이들은 다람쥐 모양을 하고 열차에서 뛰어내려 희열을 만끽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금 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그랬지만 나는 무서워서 감히 흉내도 못 낼 정도였으며 그들은 분명 당시의 스턴트맨들이었다. 그 당시 화물열차의 화통 이름은 거의 마하xxxx의 이름을 가졌었고 우리는 이름이 바뀔 때마다 기억했다가 나중에 서로 기억력 테스트를 하곤 했다.

이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영상영어겨자씨(MSE)로 명명한 영어친구마을학교의 책임자로서 거의 반세기를 뛰어넘어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고 있으니 얼마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지 그 감회를 이루 다 말로 할 수 없다. 무려 산천이 너 댓 번 변한 지금 나는 이제 많은 우리 자녀들로 하여금 ‘겨자씨’에 싹이 나서 자라게 하고 줄기 가지가 힘차게 뻗어나가 저들 가지에 새들이 둥지를 틀고 더운 여름에 그늘이 되어 나그네의 더위를 시원케 해주는 거목으로 또 기도하는 인재로 키워내기 위해서 계속 학교발전 연구에 매진할 따름이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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