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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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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문
  • 윤석구 칼럼니스트
  • 승인 2011.10.1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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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직전에 온 가족이 전부 장사를 하려고 논산역에서 만주행 열차를 타고 이사를 했는데 당시 어머니는 나를 임신하여 만삭의 몸으로 열차에 몸을 실었다고 한다. 조부모와 두 삼촌 가족들 그리고 부모님이 합력하여 거기에서 장사를 하였고 많은 돈을 벌어가지고 귀향하는 도중에 큰 도시에 정착할 것인가 아니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의 문제를 놓고 부친과 조부님 사이에 의견절충이 통일되지 않아 결국 조부의 결심을 따라 시골로 낙향해서 농사에 전념토록 결정이 났다.

삼전 리로 정착하자마자 어머니는 나를 해산하여 세상에 태어나게 하셨다. 만주에서 벌어드린 남은 돈은 집에서 10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야산을 매입하여 가족명의의 재산으로 등록하였다. 이러한 정착 문제를 두고서 대도시에 투자하려는 부친의 계획이 조부님에 의하여 무산된 이후 사실 우리 집은 가족의 보 혁 갈등에 많은 몸살을 앓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가족의 재산목록 1호인 야산(약 10만평)이 하루아침에 정부에 의하여 징발당하여 논산훈련소 부지가 되었다. 이 일은 결국 이후 지속되는 가정불화의 화근이 되고 말았다.

농사를 해서는 자식을 교육시키는데 역부족임을 깨달은 부친은 삼전 리의 농사 채 얼마를 처분하시고 마산으로 이사하여 조그만 방이 달린 빈지문 가게를 얻어 장사를 시작하셨다. 빈지문( 짝씩 끼웠다 떼었다 하게 만든 문.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덧댄다.) 가게는 양쪽에 거의 10여 짝이 되어 매일 밤낮으로 문단속을 해야 했으며 비바람이 치는 날이면 문짝이 흔들리는 소리에 잠을 설칠 정도로 삐거덕 거렸다.

가게는 10여 평 되었지만 방은 불과 네 평 정도밖에 안 되는 판자 집에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는 형님을 빼고 부모님 그리고 동생 둘 모두 다섯 식구가 앉아 있기도 벅찬데 밤마다 누워서 새우잠을 자야 했으며 기차통학을 위하여 어지간히도 새벽부터 부산을 떨었다. 판자에 짚을 엮어 덮은 지붕이라 여름에 비가 오면 빗물이 방안에 들어와 그 옹색한 곳에 여러 모양의 식기들을 받쳐놓고 생활해야 했으니 제대로 발육이 되었을 리가 있겠는가. 그래도 지금처럼 남보다 빠지지 않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당시는 몰랐지만 하나님의 그 큰 은혜였으리라.

당시는 자식을 고등학교에 보낸다는 것이 극히 어려운 시절이라 아들을 고등학교에 보내놓고 여기저기 자랑하시던 아버지, 심지어 학교에서 통지표가 오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보여주며 의기양양하시던 아버지, 아무리 장사를 하며 힘들어도 자식교육에 매진하며 늘 즐거움으로 자부심을 가지시던 아버지, 내가 교사가 되어 교단에 서기를 그렇게도 간절히 바라시던 아버지…….

그러나 내가 고2 여름방학 때 한 달여 투병하시다 지금 나보다도 훨씬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당시에는 하늘이 무너지고 청천병력 같은 벼락으로 두드려 맞은 양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심지어 아무런 공부도 다 무의해져 버려서 삶의 의욕조차 잃게 되었다. 객지에서 하숙하며 생활하는 중에도 밤에 잠자리에 들면 여지없이 아버지가 꿈에 보이고 자고나서 지금 집에 가면 아버지가 계시겠지 하는 환영을 늘 느끼다가 막상 집에 가면 아버지의 유물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한 달여가 지난 다음에야 간신히 몸을 가누고 책을 들여다보며 정상으로 회복시키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리고 “둘째는 교단에 서라”고 유언하신 아버지의 말씀을 이루어드리려고 참으로 밤을 낮 삼아 억척스럽게 학업에 매진했다. 그러나 공부하는 중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은 대학 영문과에 들어가서 외교관이 되는 꿈을 꾸기 시작하여 그곳으로 진학하려고 응시를 했지만 내 욕심을 꺾으시고 사립대 영문과에 우수한 성적으로 장학생 입학의 문을 열어 주시고 결국 교사가 되는 길을 터주셨으니 이 역시도 삶의 중심을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였음을 지금에 와서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부친의 유언대로 교단에 서서 일생을 보내리라 작정하고 앞만 보고 달리며 평생을 교육일선에서 보내고 은퇴하였더니 지금은 영어친구마을(E-times College)학교 교장으로 세워 일하게 하시니 견마지로를 다 할 뿐이다.

 ysk0848@hanmail.net

윤석구 칼럼니스트 ysk084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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